원문보기 PDF 박물관 바로가기

박물관에서는 #1 | 길상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징조, 길상

무탈할 뿐 아니라 행복하게 한평생을 사는 것은 남녀노소, 지위고하와 관계없이 누구나 바라는 삶이다. 그렇게 살기 위해 각자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우리의 생활과 주변을 돌아보면 이런 노력이 가득하다. 어떤 이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잠들 때까지 순서를 맞춰 행동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자칫 행동의 순서가 바뀌기만 해도 혹시 오늘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한다. 뜻하지 않게 일어나는 주변의 작은 일에도 이 일이 나에게 좋은 징조일까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먹고살기 위해 농사가 잘되어야 했다. 그래서 일년 농사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무엇보다도 강했다. 그 불안함을 없애보려고 사람들은 자연의 작은 변화에도 관심을 쏟았고, 그 변화를 읽고자 했다. 기후의 변화나 생태 원리로 인해 벌어지는 현상을 어떤 징조로 해석했고 예의주시하며 좋은 징조가 나타나길 바랐다.

길사유상吉事有祥; 좋은 기운에 대한 징조
“길사유상吉事有祥(길하고 이로운 모든 것에는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있다.)1)”에서 나온 말인 ‘길상’은 운수가 좋을 징조, 좋은 일이 있을 조짐을 뜻한다. 풀이로는 간단한 듯 하지만 실용례를 보면 그 범위가 넓어서 몇 개 단어나 문장으로 정의하기 쉽지 않다. 대자연을 극복하고 적응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인류가 자연의 징조에 예민하게 반응해왔지만 여러 현상에 대처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극복할 수 있는 것에는 대처 방법을 마련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대로 운명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았고 징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좋은 일을 불러올 것 같은 생각이나 형상 등을 시각화해 표식으로 사용하거나 장식함으로써 좋은 기운이 주변에 머물길 기원했다. 그러다 보니 동식물, 사물, 언어, 현상등에 ‘좋은 기운에 대한 징조, 즉 길상’의 의미를 부여해 길상동물吉祥動物, 길상문자吉祥問字, 길상기물吉祥器物, 길상색吉祥色, 길상기호吉祥記號, 덕담德談 등이 생겨났다.

·녹祿·수·희·재
(모든 소망이 이뤄지고), 녹祿(관직에 나가 출세하고), 수(오래 살며), 희(일생 동안 기쁜 일이 계속되고), 재(재물이 풍족해져서 부유한 삶을 누리는) 다섯 가지는 모든 인류가 추구하고 바랐던 삶으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한자 문화권에 오랜 기간 널리 퍼져있는,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길상의 주된 개념이다. 이외에도 부(부유하며), 강녕康寧(건강하고 평안하게), 유호덕攸好德(선을 행해 덕을 쌓고), 고종명考終命(생을 편안하게 마치길), 다남자多男子(남자(자손)을 많이 낳길)등도 사람들이 많이 바라던 길상어吉祥語이다. 이러한 말들은 직접적으로 문자로 표현되어 각기 용도에 알맞은 기물에 장식하였다. 그룻, 수저, 소반 등 생활 용구에서부터 예물에 이르기까지 길상어를 새기고, 그리고 수놓았다. 시집가는 신부의 예물에 부귀富貴, 다남자多男子 등을 수놓아 장식하거나 노인들의 기물에 장수長壽, 강녕康寧 등을 써서 장식하는 것도 모두 이런 예이다. ‘천추만세千秋萬歲(국가가 천년 만년 계속되기를)’, ‘연수장구延壽長久(수명이 오래 이어지길)’, ‘장락미앙長樂未央(즐거움이 길게 이어져 끝나지 않기를)’ 등 어구로 된 길상문자도 많이 사용하였다.

상서로운 동물動物과 식물植物
신수神獸(신령스런 동물)와 서수瑞獸(상서로운 동물)는 대표적인 상서로운 동물이다. 길상을 의미하는 상상 속의 동물인 사신四神[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과 사령四靈[기린麒麟, 봉황鳳凰, 영귀靈龜, 응룡應龍], 해태, 사자 등을 비롯해 호랑이, 곰, 사슴, 거북, 닭, 뱀, 두꺼비, 학, 물고기 등은 모두 좋은 일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 예물禮物, 제례기祭禮器, 무기武器 등에 나쁜 것을 물리쳐 주는 의미로 장식되거나 상형에 사용되었다. 또한 식물에도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것들이 있는데, 장수를 상징하는 복숭아天桃, 자손이 많음을 의미하는 석류와 참외, 가지 등 씨가 많은 식물이나 넝쿨 식물, 다복을 의미하는 불수감佛手柑, 신선의 선약仙藥이 들어있다고 여긴 조롱박 등도 길상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것들로 주전자, 술잔과 같은 기물에 자주 등장한다. 길상을 의미하는 상징물들은 단독으로 또는 집단으로 표현되는데 자연과 동물, 식물을 총망라해 온갖 수명이 긴 것들을 조합해 놓은 십장생十長生처럼 온갖 좋은 것을 모아 종합선물세트처럼 표현하기도 한다.

벽사辟邪와 진경進慶 그리고 길상
길상은 벽사진경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나쁜 것을 물리쳐서 그 결과로 좋은 것이 오게 되고 좋은 것이 오려는 징조는 나쁜 것을 애초에 막아 오지 못하게 하므로써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래서 무엇이 먼저랄 것도 없이 섞여 돌아가며 온갖 해악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기재로 작용한다. 길상이 다소 추상적이어서 간접적으로 표현된다면 벽사는 매우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타나는 길상을 위한 행위로 민간의 풍속에 많이 나타난다. 연초에 대문에 내다 붙이는 세화歲畫나 울루부鬱壘府2)를 시작으로 무사, 안녕, 풍요를 기원하는 연말연시, 대보름, 명절 등에 행해지는 벽사 풍습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민간 신앙에 등장하는 벽사행위 또한 넓게는 복을 구하기 위한 것으로 모든 벽사적 행위와 관련된 것들은 길상물이 된다. 생활공간을 치장하는 민화와 같은 그림 역시 벽사와 진경의 염원을 의미하는 주제로 생활 속 안정과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길상물이다.

과학의 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벽사, 진경, 길상
벽사, 진경, 길상은 형태만 다를 뿐 현대의 생활속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민간 신앙의 부적 같은 액막이 이외에도 연초에 토정비결과 같이 한 해의 운수를 점쳐보는 것도 모두 진경을 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사날을 고르고, 시험날 기름진 것을 먹지 않고, 경기에 나가기 전 선수들이 지키는 루틴routine에 이르기까지 ‘금기’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 역시 해로운 것을 피해 결국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소녀의 모습과 함께 경건한 서체로 ‘오늘도 무사히….’ 라고 적힌 그림을 본적이 있을 것이다. 무사고를 바라며 버스나 택시 안의 룸미러에 걸어 두던 이 소녀 그림이 지금 과학발달 최첨단의 상징인 자율주행차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한다. 코로나19와 같은 큰 재난을 함께 겪은 우리에게 무탈과 평안은 그 어느때 보다 삶의 핵심어가 되었고, 좋은 일에 대한 징조에도 더욱 민감해 졌다. AI의 시대에도 여전히 중심은 인간의 무탈하고 행복한 삶에 있다. 그것을 기원하며 주변에 나쁜 일을 막아주고 좋은 일을 불러오는 벽사진경의 행위와 길상물은 여전히 유효하다.

조슈아 레이(Joshua Reynolds, 1723~1792)의 「기도하는 어린 사무엘」을 차용한 그림 「오늘도 무사히… 」

1) 是故變化云爲 吉事有祥 象事知器 占事知來『易經·繫辞下』
2) 울루는 악귀를 쭞는 문신(門神)으로 형상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문에 붙인다.


글 | 김윤정_유물과학과 학예연구관

더 알아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