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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쪽 문화사 | 한복의 변천사

한복의 새로운 얼굴

한민족 고유의 전통복식인 한복韓服은 그 아름다움과 우아함, 신세대의 감각에 맞는 새로운 디자인 제안으로 현재 국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전통의 소중함을 알고 아끼는 사람들의 한복 사랑이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후기에 완성된 조선시대의 한복만을 ‘한복’이라고 인식하고, 다른 시대의 한국인들이 미의식을 담아 착용하던 의복들에 담긴 의미와 디자인 소스로서의 효과를 간과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삶의 방식과 이웃 국가와의 관계가 바뀌는 대로, 한복은 입는 이들의 문화와 미의식을 담아 생명을 지니고 그때그때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한민족의 전통과 얼을 담고 있는 아름다운 한복을 올바로 즐기기 위해, 전통한복과 현대한복 문화의 시대별 연결고리를 알아보기로 한다.

기마형 복식과 현대 한복
고대의 우리 민족은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생활했고, 삼국 및 가야의 기본 의복도 서로 닮아서 좁은 소매의 저고리와 좁은 바지, 즉 착수궁고窄袖窮袴였다. 이는 허리에 대를 맨 무풍적이고 날렵한 이미지로 대표되며 예의를 갖출 때는 포와 상을 덧입었는데, 남녀 기본형 복식이 같은 형태여서 젠더리스 룩genderless look으로도 분류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몸을 많이 감거나 넓게 제작한 복식은 한푸漢服, 즉 한족漢族 및 그들과 직접 접촉한 삼국의 고위층 일부의 복식에서 보이는 특징이었다.1)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무풍적 복식의 경쾌한 이미지를 현대 신한복에 효과적으로 응용한 예로 브랜드 ‘천의무봉’대표: 조영기의 한복을 들 수 있다.
삼국 상류층의 의상 예를 들면 고구려의 왕은 백라관과 오채복五彩服을 입었고2), 백제의 왕은 금꽃을 꽂은 모자와 자주색 포를 입었으며3), 신라의 왕은 샤머니즘 예술의 절정인 금관과 요패腰佩를 몸에 걸쳤다. 이러한 복식들은 달이 뜨는 강KBS2, 서동요SBS, 선덕여왕MBC 등의 사극 드라마와 바람의 나라김진 작, 낮에 뜨는 달혜윰 작: 네이버 웹툰 등의 미디어에서 창작 디자인을 더해 화려하게 표현되었고, 금꽃 관식冠飾과 금관은 박물관 패션 기념품을 위한 훌륭한 문양으로 활용되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에서 형성된 삼국복식 스타일은 도래인들에 의해 일본으로도 전파되었고, 다카마쓰총高松塚 벽화를 포함해 곳곳에 흔적을 남겨 그 시대의 한복 한류다운 면모를 보인다.

발해와 통일신라 복식과 현대 한복
경쟁을 거듭하던 삼국을 하나로 합한 것은 통일신라였다. 고구려의 유민들은 북쪽으로 올라가 발해를 건국했으나, 아쉽게도 현재 발해의 복식유물들은 매우 적다. 통일신라 복식의 특징은 안정된 국가 상황과 친당 정책이 반영된 ‘화려함’과 ‘사치함’이었다. 복식사치가 날로 심해지자 42대 흥덕왕이 진골부터 모든 계급의 남녀 복식재료에 제한을 두고 사치금지령을 내렸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친당 정책으로 인해 당 스타일이 도입되면서, 일반인들은 이전의 무풍적인 복식생활을 이어갔으나 일부 상류층의 한복은 속칭 ‘한푸중국의 전통의상’에 가까운 모습을 지니게 된다. 이로 인해 통일신라의 복식은 신한복 분야보다는 해신KBS2, 선덕여왕MBC 등의 사극 드라마와 하백의 신부윤미경 작 등 미디어 복식 디자인 분야에서 더 활발하게 응용되어왔다.

 

몽골풍, 고려양, 고려 복식과 현대 한복
불교를 국교로 삼아 건설된 고려의 복식유물은 매우 적고 간혹 불상 속에서 의복 파편이 발견되는데, 고려의 특산직물은 얇고 섬세한 세모시였다. 1123년에 고려를 방문한 서긍徐兢의 『선화봉사고려도경』을 보면 고려의 부인들은 남자 옷과 비슷한 흰 모시로 만든 겉옷과 짙고 옅은 황견 치마들을 입었다고 한다.4) 모시옷은 매우 아름답지만 구김이 잘 가서 현대에는 불편할 수 있고 가장 섬세한 모시인 한산모시의 가격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이즈음에는 구김방지 가공을 한 대체 원단을 사용하기도 한다. 수십 년의 항쟁 끝에 원의 부마국이 된 고려에 몽골풍 복식인 요선오자요선철릭, 답호, 여밈이 넓은 의복들이 도입되었다. 이 중에서 허리에 주름을 잡은 포인 철릭은 이즈음의 신한복에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한 퓨전fusion 아이템이다. ‘차이킴’대표:김영진에 의해 신한복으로 변형되어 선보인 이후, 철릭은 오버스커트 유무, 허리띠 유무, 고름 형태, 소매길이, 원단에 다채로운 변화를 보이며 신한복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현대의 원피스와 유사한 형태 및 철릭의 허리주름에 의한 조형미5)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한편 일반적인 교류 외에도 공녀 제도로 인해 많은 고려 여인들이 강제적으로 원의 관리와 맺어졌고, 아랫배를 덮는 길이의 반비소매가 없거나 짧은 옷를 중심으로 고려양 복식이 원 궁중에서 유행하게 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고려양 복식과 본래 원 궁중에 존재했던 몽골풍 복식은 그 이후로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다양한 포와 모자의 조선 복식과 현대 한복
유교를 국교로 삼은 초기의 조선은 철저한 계급국가였고, 고려 후기 공민왕의 친명親明 정책으로 수입된 왕실 관복 제도는 세부변형을 더하며 유지되었다. 따라서 조선왕실의 관복을 현대 한복에 응용하려면 명 복식과 고유 복식의 차이점을 신중하게 구별해 내야 한다. 조선 초기의 왕들은 기강을 잡기 위해 계급에 따른 복식금제령을 지속적으로 내렸다. 그러나 임란과 병란을 겪은 후 힘을 잃은 계급제도는 흔들렸고, 기녀들을 중심으로 한 자유분방한 복식이 유행의 선두로 나섰다. 이는 혜원 신윤복의 회화 및 드라마 황진이KBS2로 대표되는 요염한 이미지로, 저고리는 극도로 짧아지고 치마는 여러 점의 속곳으로 부풀려졌으며, 어마어마한 가체여자의 머리숱을 많아 보이게 하려고 덧넣는 딴 머리가 머리를 장식했다. 조선의 왕실복식 중 가장 활발하게 현대 캐주얼과 한복소품에 응용되는 것은 금박과 향낭 및 흉배의 자수 문양이며, 섬세한 갓을 중심으로 한 조선 모자들의 아름다움은 드라마 킹덤www.netflix.com을 통해 글로벌 인기 콘텐츠가 되었다. 남성들이 입던 직령, 도포, 창의, 철릭, 두루마기 등의 포는 시대별로 세부형태가 변화하며 고아한 품위를 표현해 주었다. 이 포들은 다양한 신한복 브랜드들에 의해 신세대와 K-POP 아이돌의 신한복 디자인 소스로, 인형의상 브랜드들에 의해 키덜트Kidult 상품인 인형용 코트로 응용되어 인기를 얻고 있다.

개항기 이후의 한복과 현대 한복
전통한복의 기본형은 조선 말기와 개항기를 거치면서 완성되었는데, 지나치게 짧았던 저고리가 여성들의 사회활동 때문에 다소 길어지고 포가 간소화되며 단추 등의 서양식 부속이 도입되었다. 그 이후의 한복은 기술의 발전으로 합성섬유와 레이스 등이 더해지고, 변화하는 소비자의 체형과 패션 트렌드를 반영해 조금씩 세부 디자인이 변형되면서 지금의 모양을 갖추었다. 최근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 한복을 입고 세계를 여행하며 현대 한복의 미를 알리는 신세대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였으며, 사태가 진정되는 대로 이러한 현상은 다시 시작될 것이다. 현대 한복은 전통한복에 신세대의 감각이 가미되어 신한복으로서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다. 앞으로도 여러 가지 다양한 한복에 숨은 디자인 소스들이 신세대 한국의 한복문화로 새롭게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1) 최정(2017), 한복을 입은 역사와 미디어, 경춘사, 6.
2) 유희경ㆍ김문자(2004), 개정판 한국복식문화사 (6th Eds.), 교문사, 31.
3) Ibid., 44.
4) 徐兢(2005), 고려도경, 조동원ㆍ김대식ㆍ이경록ㆍ이상국ㆍ홍기표 (공역), 황소자리, 258-259.
5) 최정(2017), 17세기 초 홑철릭 유물의 시대특성과 유아형 인형의 체형특성을 응용한 단계별 복식문화상품 디자인 연구, 한국의류산업학회지 19(4), 385-399. http://dx.doi.org/10.5805/SFTI.2017.19.4.385


글 | 최정_원광대학교 패션디자인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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