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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쪽 문화사 | 여름 간식

‘빙과류’ 변천사

냉동 기술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아이스크림은 그 역사가 짧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빙과류’라는 큰 카테고리로 보자면 그 역사는 생각보다 깊고 오래되었다. 우리가 현재 즐겨먹는 아이스크림도 최초의 형태는 얼음에 약간의 향신료를 곁들여 먹는 빙과류에서 출발하였다. 시대적 흐름을 자연스럽게 반영하며, 꾸준히 변화를 이어온 빙과류의 변천사를 알아보자.

최초의 ‘얼음’ 기록
우리 조상들은 언제부터 얼음을 먹기 시작했을까?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 시대부터 얼음 창고인 장빙고를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백제 유적지에는 빙고를 놓았던 빙고터가 발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얼음이 무척 귀했을 뿐더러, 아직 얼음을 다과로 즐기지는 못했다. 이후, 고려시대에 들어서야 여름에 얼음 꿀물을 만들어 먹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얼음을 잘게 부수어 화채로 즐겼다. 빙과류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건 일제강점기 시대부터다. 1900년대부터 일본인의 주도 하에 경성 시내에는 ‘빙수점’이라는 생소한 간판을 단 가게가 속속 등장했다. 빙수라고 해봤자 얼음을 갈아 설탕, 우유를 넣은 단순한 간식이었다. 빙수점은 빙수기, 냉동고만 있으면 창업이 가능했다. 이런 소자본의 이점을 살려 많은 조선인들이 빙수 사업에 뛰어들었다. 1940년대에 일본의 태평양 전쟁으로 설탕, 향신료 구입이 어려워지면서 장사가 힘들어지긴 했지만, 배고픈 시기에 일자리를 창출해 준 빙수가 참으로 고맙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가라앉을 즈음, 1960년대부터 길거리에 새로운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스께끼’ 장수가 등장한 것이다. 바로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빙과시장의 시대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아이스께끼’는 아이스케이크ice-cake의 일본식 발음에서 유래된 말이다. 우리말로는 ‘얼음과자’ 또는 ‘물뼈다귀’라고 불렸다. 색소를 탄 물에 설탕만 넣고 얼린 이 단맛 나는 얼음 덩어리가 뭐가 그리 맛있었을까 싶다. 하지만 동네에 리어카를 끈 ‘께끼 장수’가 나타나면, 아이들은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 들어가 고무신, 녹슨 그릇 등을 갖고 나와 아이스께끼와 바꿔 먹었다. 아이스께끼 수요가 늘어나면서, 빙과통을 어깨에 짊어 메고 다녔던 영세업자들은 아예 소규모 공장을 차리기 시작했다. 색소, 설탕으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아이스께끼 조합에 단팥, 우유 등을 혼합하며 맛의 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62년에 공표된 식품위생법에 따라 무허가 아이스께끼 공장은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된다.

 

전설적인 제품 탄생, 하드 역사의 시작
1963년 삼강은 국내 최초로 위생 설비 시스템을 갖춘 자동화 아이스크림 공장을 설립한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전설이라 불리는 ‘삼강 하드’를 출시한다. 이전까지 막대기 하나만 꽂은 단순한 아이스께끼만 봐오던 사람들은 세련된 패키지와 풍성한 맛의 삼강 하드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오죽하면 ‘하드’라는 단어가 얼음이 많이 들어간 막대 아이스크림을 지칭하는 보통 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이후, 삼강 업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던 아이스크림 시장에 제과업으로 성공한 해태가 새롭게 진입한다. 해태는 아이스크림 제조기, 포장기를 들여놓은 대대적인 공장을 설립하며 공격적으로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때 출시된 아이스크림이 ‘부라보콘’, ‘훼미리 아이스크림’, ‘누가바’다. 특히, 부라보콘은 2021년 기준으로 51살이 넘어가는 대표적인 장수 아이스크림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해태가 아이스크림 시장을 주름잡을 때, 또다시 새로운 업체가 시장에 진입한다. 바로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앞세운 대일유업이다. 대일유업은 생우유를 넣은 고급 아이스크림인 ‘투게더’와 ‘비비빅’을 출시했다. 지금도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국민 아이스크림을 연달아 출시하며, 그 당시 시장 점유율 1위였던 해태를 바싹 추격하기 시작한다. 한편, 시장의 선발주자였던 삼강 역시 ‘아 맛난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는 ‘아맛나’를 출시했다. 경제 성장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면서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었던 1970년. 식품업계에도 이전에 보지 못했던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때 출시된 제품들은 아직까지도 소비자들의 곁을 지키고 있는 롱런 히트Long-run Hit 제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쭈쭈바의 3단 진화
1974년, 호빵으로 유명한 삼립에서 국내 최초의 쭈쭈바비닐 튜브형 아이스크림인 ‘아이차’를 출시한다. 많은 사람들이 롯데삼강에서 출시한 ‘쭈쭈바’를 최초의 쭈쭈바로 알고 있다. 하지만 쭈쭈바는 아이차 출시 후 2년 뒤인 76년도에 나왔으며, 엄밀히 따지면 아이차의 카피 제품이다.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간식으로 사랑받는 쭈쭈바는 패키지 부분에서 진화를 거듭한다. 비닐 용기 대신에 종이 용기로 바꿨으며, 패키지의 밑부분을 눌러 안의 내용물을 올려 먹는 이색 디자인으로 새롭게 출시됐다. 먹고 나면 입술까지 보라색으로 물드는 포도맛 ‘폴라포’, 용기의 독특한 모양이 인상적인 ‘더위사냥’이 대표적인 쭈쭈바 2세대 제품들이다. 특히 진한 커피맛의 더위사냥은 녹여서 냉커피로 먹어도 그만이다. 그 당시 어떤 PC방에서 아주 맛 좋은 냉커피를 팔았는데, 그 비결을 물으니 더위사냥을 녹여 우유와 섞었다고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이후, 친숙한 간식 쭈쭈바의 고급 버전이 등장한다. 쭈쭈바의 최종 버전, 3세대 제품인 ‘설레임’이 그 주인공이다. 달콤한 셔벗 타입인 설레임은 아이스크림 제품 중에서 최초로 치어팩Cheer Pack을 적용했다. 치어팩은 음료의 휴대성을 높이기 위한 포장방법으로 비닐주머니에 마개를 달은 것이다. 여기에 고급스러운 직사각형 디자인, 눈이 내리는 듯한 세련된 패키지의 설레임은 어린아이 젖병이 연상되던 기존의 쭈쭈바들과 확연한 차별성을 띄었다. 덕분에 사회적 체면 때문에 마음껏 쭈쭈바를 빨고 다니지 못했던 어른들은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선물 받았다. 이처럼 설레임은 쭈쭈바를 이용하는 연령대의 폭이 넓어진 상징적인 제품이다.

우리의 어려웠던 시대와 함께 성장한 아이스크림 시장
업계의 메이저 회사인 삼강, 해태, 대일 삼사의 경쟁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뜨겁게 과열된다. 이들은 서로 앞다투어 소매점에 간판, 보냉기, 냉장고 등을 달아줬다. 어릴 때 동네 슈퍼마켓에서 특정 아이스크림 로고가 박힌 냉장고만 아이들의 때 묻은 손에 꼬질꼬질해진 것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치열한 경쟁은 1975년부터 대대적인 광고전으로 이어진다.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신제품이 연이어 나오고 아이스크림 인기가 치솟던 그 시절, 아이스크림 광고는 당대 가장 주가를 올리던 스타들의 차지였다. 지금도 아이스크림 회사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각 브랜드 장수 제품의 추억의 광고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보면 다소 유치할 수 있으나 이제는 중년 배우가 된 스타의 풋풋한 어린 시절을 찾는 재미가 있다. 이렇게 경쟁이 과열된 데는 비약적으로 발전한 아이스크림 시장 규모도 한몫을 했다. 1972년에 10억 원에 불과했던 아이스크림 시장 규모가 1977년에는 무려 500억 원을 넘어갔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0년대부터 한국 아이스크림 업계는 해외로 뻗어나간다. 중국, 브라질, 미국 등으로 수출을 시작하며 무섭게 성장하는 아이스크림 시장 규모는 2015년 2조 원에 달하여 정점을 찍는 기염을 토해낸다. 아이스크림 시장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 삶과 함께 성장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대
2000년대부터는 아이스크림 시장에 해외 브랜드가 진입하여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독특한 이름으로 1986년 명동에 제 1호점을 개업한 ‘배스킨라빈스’가 바로 첫 주자다. ‘엄마는 외계인’ 등의 별난 메뉴 이름과 민트, 치즈 등 그 당시 전혀 예측할 수 없던 혁신적인 아이스크림 재료를 사용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 후 고풍스러운 브랜드 이름의 ‘하겐다즈’와 롯데제과에서 만든 토종 브랜드 ‘나뚜루’가 편의점 아이스크림 코너에 진입한다. 특히 하겐다즈의 경우 기존 하드 아이스크림의 서너 배에 달하는 비싼 가격을 달고 나왔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요거트 아이스크림의 열풍이 불었다. 저지방, 저칼로리의 이점을 강조하여 젊은 여성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이를 계기로 아이스크림을 즐기는 소비자층이 대폭 넓어졌다. 이 외에도 쫀득쫀득한 질감을 가진 젤라또 아이스크림이 등장했다. 매장에서 신선한 과일, 우유, 초콜릿 등을 직접 배합해 만들어주는 방식을 선보여 수제 아이스크림의 매력을 전파했다. 이제는 아이스크림이 맛과 건강을 모두 만족시킨 웰빙 디저트로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급변하는 시대에 따라 아이스크림 역시 눈이 돌아가게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빙과류 시장은 가파른 속도로 성장해왔다. 집안의 살림살이와 맞바꿔 먹었던 얼음과자부터 시작하여 자동화 공정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진 하드, 무려 3단 진화를 거친 쭈쭈바, 고급 수제 아이스크림까지. 수많은 제품들이 출시되었고, 그만큼 빠르게 소비자들로부터 잊혀졌다. 이 거센 변화의 흐름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추억의 아이스크림은 맛 이상의 특별한 의미를 품고 있다. 먹을거리는 사람들의 추억과 그 시대의 문화를 대변한다. 아마도 사람들은 가슴 한편에 간직하고 있는 그리운 시절을 아이스크림을 통해 만나고 있는 건 아닐까. 앞으로도 빙과 시장은 시대적 문화를 반영하면서,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맛과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글 | 이주현_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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