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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의 즐거움 | 쌍륙

조상들이 천년 넘게 즐겨왔던 쌍륙놀이

삼국시대에도 놀았던 쌍륙놀이
쌍륙놀이란 쌍륙판雙六板에 두 사람 또는 두 편이 15개씩의 말을 가지고 2개의 주사위를 굴려 사위대로 판 위에 말을 써서 먼저 나가면 이기는 놀이이다. 그 숫자에 따라 말을 전진시키는 놀이로 남성은 물론 여성들 사이에서도 성행했다. 한자로 ‘雙六’, 또는 ‘雙陸’으로 쓰기도 하는데 다듬은 나무를 쥐고 논다하여 ‘악삭握槊’이라고도 한다. 쌍륙 놀이의 기원이나 유래에 대하여 정확한 연대를 밝힐 수는 없으나 문헌을 통해 대단히 오래된 놀이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무제漢武帝 때 서역에서 중국으로 전래되었다는 이 놀이는 삼국시대 백제에 들어와 널리 전파되었으며 다시 일본에 전래되어 ‘스고로쿠’双六가 되었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시, 조선 중기의 문인 심수경의 수필집 『견한잡록』을 비롯하여 『조선왕조실록』, 『오주연문장전산고』, 『성호사설』 등에도 ‘쌍륙’이 나타난다. 조선 초기 천재 문인 김시습은 일찍이 ‘쌍륙’이라는 시를 지었으며, 조선 후기 혜원 신윤복의 『혜원풍속도첩』에는 ‘쌍륙삼매’란 그림이 있다. 개항기 때의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의 풍속도에 한량과 기생이 함께 노는 ‘도쌍륙’이란 그림이 있는 걸 보더라도 이 놀이가 민간에 널리 보급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쌍륙놀이는 남녀 모두 즐기지만, 조선 시대 바깥출입이 쉽지 않았던 상류층 부인들에게는 집안에서 했던 더없이 즐거운 실내놀이의 하나였다. 연중 언제든 할 수 있었지만 대체로 정초에 많이 놀았으며 겨울철의 한가한 때에 즐기기도 하였다.

 

단잠을 깨운 쌍륙놀이
쌍륙놀이가 조선 시대에는 일종의 유행놀이였다. 김시습의 『매월당집』에 수록된 시 ‘쌍륙’의 첫 구절을 통해 이미 조선 초기부터 신바람나는 놀이였음을 알 수 있다.
“육이야 하고 부르는 소리에 달게 자던 낮잠이 깨었다.” 육대호래오몽성六大呼來午夢醒이라는 것이 첫 구절인데, 쌍륙을 놀던 한 친구가 어찌나 요란스럽게 “줄륙쌍륙을 말함”하고 고함을 쳤는지 그 옆에서 자고 있던 김시습이 그만 놀라서 깨고 말았다는 것이다. 쌍륙의 놀이 도구로는 쌍륙판말판과 말 서른 개, 그리고 주사위 두 개가 필요하다. 말판 안에는 검은 선으로 24칸의 밭을 그려 넣는데, 가운데 두 개의 큰 칸은 놀이에 사용되는 밭이 아니고 쫓겨난 말들이 쉬는 곳이다. 밭은 안육內陸과 바깥육外陸으로 구별된다. 쌍륙용 주사위는 ‘투자骰子’라고도 하며 상아나 기타 여러 동물의 뼈로 만들어졌다. 호랑이 뼈로 만든 주사위는 놀 때 원하는 숫자가 그대로 나온다는 믿음이 있어서 이를 대체로 선호하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 선조들은 호환虎患을 두려워하면서도 호랑이를 신성하게 생각하여 산신山神으로 섬겼는데, 놀이에서도 그 위엄을 발휘하여 이기게 한다는 믿음을 깊이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말은 각자 15개씩 필요한데 16개를 사용하기도 한다. 놀이 방법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며 쓰는 말도 일정하지는 않다. 놀이는 윷놀이처럼 두 사람이 하거나 여럿이 편을 갈라서도 하는데, 대체로 쌍륙판에 흑편의 말과 백편의 말을 형식에 따라 벌여놓고 두 개의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수만큼 말을 전진시킨다. 먼저 두 사람이 쌍륙판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자기 말의 색깔을 정하여 흰 말과 검은 말을 각각 15개씩 배치한다. 쌍륙을 놀기 위해서는 우선 누가 먼저 할 것인가를 순서를 정해야 하니 이를 쟁두爭頭라고 한다. 본격적인 놀이는 주사위를 던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2개의 주사위를 죽통竹筒에 넣거나 손으로 흔들어 굴려서 두 주사위가 나온 대로 말을 써 나간다. 이때 한꺼번에 던질 수도 있고 따로따로 2회에 걸쳐 던지면서 주사위끼리 부딪치게 하여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주사위를 던지는 구역을 일정하게 정해놓고 그 밖으로 나가면 ‘낙’이라 하여 무효 처리되기도 한다. 말은 주사위를 던져서 나온 끝수에 따라 전진시켜야 한다. 만약 두 주사위의 숫자가 6과 3이 나왔다 하면 하나의 말로 여섯 밭을 간 후 계속해서 세 밭을 움직여 총 아홉 밭을 가거나, 두 개의 말 중 한 개는 여섯, 다른 한 개는 세 밭을 갈 수도 있다. 그러나 6과 3의 합이 아홉 밭이라 하여 임의로 다섯 밭, 네 밭 등으로 말을 쪼개서 쓸 수는 없다. 이때 숫자에 맞춰 말을 전진하는 도중 자리에 상대의 말이 한 개 있을 경우1) 그 말을 잡아내고 자신의 말을 놓을 수 있다. 잡힌 말은 반드시 판밖으로 나가야 한다. 말을 놓을 자리에 상대의 말이 둘 이상 있을 때는 그 밭에 들어가지 못한다.

주사위가 김시습을 단잠에서 깨웠다는 6, 6으로 쌍륙이른바 줄륙이 나오면 으뜸의 행운이다. 이때에는 큰 소리로 ‘쌍륙’을 외치며 상대방 말 하나를 시작 이전으로 내보내고, 다시 한번 주사위를 굴릴 기회를 얻게 된다. 한편, 잡혀 나온 말이 있을 때는 그 말이 다시 밭으로 들어갈 때까지 다른 말을 움직일 수 없다. 잡혀 나온 말은 반드시 처음부터 다시 들어가야 하는데 이를 ‘새동 들어가기’라 한다. 주사위를 던지는 일도 중요하지만, 말을 잘 써야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으므로 놀이는 긴장이 계속된다. 이밖에도 다양하고 엄한 규칙에 따라 놀이가 진행되는데 조상들은 까다로운 규칙과 두뇌를 필요로 하는 이 놀이를 훗날까지 자연스럽게 즐겨 했다. 승부의 결정 여부는, 자기 밭 안육에 15개의 말이 모두 모이거나, 모인 말을 판 바깥으로 전부 내보내면 이기게 된다. 이때 자기 밭의 모든 말을 판밖으로 내보내면 ‘한 동’났다고 하는데 보통 세 번 겨루어서 두 동 이상이 나면 최종으로 승리하게 된다.

조상의 지혜가 모아진 쌍륙놀이
쌍륙놀이는 외국에서 전래되었지만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전승되어 천년 넘게 우리 조상들이 즐겨왔던 전통놀이이다. 장기와 마찬가지로 쌍륙놀이는 군사들을 움직여서 싸우는 전술이라고도 하였다. 일찍이 심수경은 『견한잡록』에서 바둑과 장기, 쌍륙을 잡기雜技라고 부른다고 했다. 잡기는 투전이나 골패 따위의 잡스러운 여러 가지 노름을 일컫기도 하지만, 중국 고대와 중세에 행하여진 각종 예능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쌍륙은 후자의 의미가 강했으나 점차 ‘노름화’ 된 것은 아닐까. 바둑이나 장기가 말을 놓는 두뇌게임이라고 한다면 쌍륙놀이는 윷놀이를 닮아, 던진 주사위에 따라 행운이 따르는 반전의 묘미가 더해진 놀이라 할 수 있다. 주사위에 어떤 수가 나오는가는 운이 따르겠으나 15개의 말을 어떻게 적절하게 움직이는가는 승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니 이 역시 두뇌가 요구되는 놀이임이 틀림없다. 주사위를 던지는 방법에서도 재간이 작용할 수 있으며 주의를 집중하여 전체적인 판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므로 가히 전술이라 할만하다.

승부가 운과 기술 모두를 따랐으니 인생과 비슷하다 했을 법한 놀이로 즐기지 않았을까. 또한, 우리네 인생에도 승부를 뒤집는 반전의 기회가 오기를 희망했으리라.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당시 유행하고 있는 바둑, 장기, 쌍륙, 투패투전, 강패골패, 척사윷놀이 등을 도박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투전, 골패, 쌍륙이 가장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기산의 풍속화 제목 ‘도쌍륙賭雙六’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마도 조선 시대 후기부터는 쌍륙이 내기놀이의 성격이 강해져서 도박의 대상으로까지 되었던 모양이다. 어떻든 쌍륙은 바둑과 장기, 승경도, 그리고 윷놀이와 함께 조상들의 지혜가 모여 우리 역사와 함께하며 전승된 전통 민속놀이인 것이 분명하다.

1) 혼자 있는 말을 ‘바리’라 한다

참고문헌
1) 최상수, 한국민속놀이의 연구, 성문각, 1985
2) 김광언, 한국의 민속놀이, 인하대학교 출판부, 1982
3) 최명의, 조선의 민속놀이, 과학원 및 민속학연구소 민속학연구실, 1964년 북한 판, 1988년 푸른숲 재출판.
4) 강명관, 조선의 뒷골목 풍경, 푸른역사, 2003


글 | 김명자_안동대학교 민속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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