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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 대담 | 실로 새긴 예술의 세계

실로 새긴 예술의 세계 전통자수 명장과 프랑스자수 작가

자수는 옷감이나 헝겊 따위에 색색의 실로 글과 무늬를 수놓아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자수는 옷과 가구는 물론 향갑처럼 몸에 지니는 자그마한 소품까지 다양한 영역을 디자인하고 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자수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 짓는데,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전통자수와 유럽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유럽자수이다. 최근 기계화로 양산되는 자수생산품에서 자수 본질의 아름다움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수작가들이 수놓은 작품은 자수가 품은 아름다움에 대한 본질을 여과 없이 투영한다. ‘자수’를 통해 동서양의 예술세계를 표현하는 조미진 전통자수 명장과 류승희 프랑스자수 작가. 실과 바늘로 수놓는 예술의 세계 속 같지만 다른 그들의 세계를 만나보았다.

‘전통자수’와 ‘프랑스자수’ 무엇인가요?
전통자수 명장 전통자수는 크게 궁중·민가·불교자수로 나뉩니다. 궁중에서는 계급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문양과 색을 지정할 만큼 자수를 엄격하게 관리했습니다. 또 오방색을 곁들여 수에 의미를 부여하였는데요. 선악과 시비를 정확하게 구별하라는 뜻으로 대사헌의 흉배에 해치獬豸를 새긴 것도 이 때문이죠. 이와 반대로 민가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수를 두었습니다. 민화에 자주 등장하는 동·식물이 자주 수 놓였죠. 손길이 닿는 곳곳에 염원을 담아 문양을 새긴 것들이 많았습니다. 수를 놓을 때 사용하는 실로는 명주실을 꼬아 만든 꼰사, 금사 등이 있는데요. 주로 꼰사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프랑스자수 작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프랑스자수는 프랑스에서만 사용하는 자수가 아닌 유럽 전역에서 사용하는 자수를 의미합니다. 유럽에 영국, 스웨덴 등 수많은 나라가 있지만 프랑스자수로 불리는 이유는 10세기경부터 프랑스에서 자수가 주요산업으로 발전하였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자수에서는 기본적으로 6줄이 꼬인 실을 사용합니다. 이 실의 6줄을 그대로 쓰기도 하지만 몇 가닥을 빼 얇게 만들어 사용하기도 해요. 6줄은 풍성한 느낌의 자수를 표현하기 좋고, 1~2줄의 얇은 실로는 세밀함을 표현하기에 좋아요.

자수에 대한 나만의 생각은?
전통자수 명장 수를 놓는다는 것은 마음의 안식처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언제나 수를 놓을 때면 행복하거든요. 제가 느끼는 이 행복을 다른 이들도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전통자수를 지키는 것에 머무르지 말고 현대화시켜서 더욱 발전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대중에게 전통자수는 사라져가는 전통 중 하나입니다.

 

프랑스자수 작가 저 역시도 제가 전통자수를 잇는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젊은 청년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전통자수의 현대화도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수의 매력은 내가 원하는 그림을 내가 원하는 곳에 직접 새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사람마다 수를 놓는 방향이나 사용하는 실의 색상이 틀리기 때문에 같은 원단을 사용하더라도 세상에서 하나뿐인 결과물이 만들어지죠. 엄청난 재능이 있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조그마한 풀꽃 그리기부터 시작할 수 있기에 요즘처럼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는 시기에는 더없이 좋은 취미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나요?
전통자수 명장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전통자수를 익히면서 섬유공예, 산업디자인, 목공예 등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다양한 것들을 배우며 예술적인 식견을 넓혔죠. 그러면서 전통자수에 현대적인 스타일을 가미해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초를 이용해 염색하는 바틱기법을 활용하여 섬유를 염색하고, 그 위에 전통 자수를 접목시켜 회화적 요소와 전통 자수를 결합하고 있습니다. 또 줌치기법을 활용하여 한지를 여러 겹 겹쳐 가죽처럼 단단하게 만든 후 그 위에 수를 놓아 가방의 형태로 변환시키는 등 새로운 시도를 펼치고 있어요.

프랑스자수 작가 하나의 주제를 정한 후 그 주제를 여러 다른 스타일로 표현하는 방식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릇, 양말, 케이크 등으로 주제를 정해요. 그 후 자료를 수집해 컴퓨터로 도안을 그리죠. 실로 일러스트를 그리듯 작업하기에 사물을 단순화하면서 특징을 최대한 살리는 편입니다. 완성된 도안은 원단먹지를 이용해 옮긴 후 그림을 그리듯 실로 채워나갑니다. 도안의 면들을 실로 밀도를 쌓아 올리면서 작업하는 스타일을 좋아해 실을 켜켜이 쌓아 올리고 있어요. 한 층씩 올려 마무리하면 전체적으로 귀엽고 아기자기한 스타일의 아트가 탄생하죠.

본인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전통자수 명장 3년 전쯤 항암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몸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길상도吉祥圖 8폭 병풍을 만들었습니다. 손발톱이 다 빠지는 정도의 고통 속에서도 바늘만 잡으면 아픔이 가시던 순간은 잊히지 않네요. 그래서인지 그 작품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또 몸이 아픈 상황에서 작업했던 화접도花蝶圖 역시 잊지 못하는 작품 중 하나에요. 이 작품은 지난 4월 마무리한 여섯 번째 개인전에서도 전시되었던 작품인데요. 아픈 상황에서 저와 딸을 상징하는 꽃을 수놓고 그 주변에 나비를 하나하나 채워갔습니다. 개인전 이후 마음 좋은 분이 가져가시기로 해서 저 역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프랑스자수 작가 SNS로 소통하기에, 대중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은 작품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빈센트 반 고흐의 ‘아를의 침실’과 12그루의 트리를 한 면에 담아낸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답니다. ‘아를의 방’은 배경까지 수를 놓은 작품으로 여러 색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한 달 가까이 작업해 명화를 제 손으로 수놓았답니다. 2018년에 작업한 ‘크리스마스트리’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많은 분들께 사랑받은 작품이에요. 사람들의 눈길을 끈 디자인이어서였을까요. 이후에 카피디자인까지 나올 정도였답니다.

작품을 수놓을 때, 어떤 색을 가장 많이 사용하나요?
전통자수 명장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색은 흰색이에요. 기본적으로 전통자수는 꽃과 나비, 풀 등을 많이 수놓아 연한 색채의 실들이 많이 들어가요. 이런 색들은 도화지 위로 펼쳐두고 다음 색을 가미하기도 쉽답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생과 사를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흰색이 특별하게 다가와요. 단청에 오방색을 입히기 전에는 흑과 백색만으로 모든 경계를 구분하다고 해요. 그 말을 들으니 삶과 죽음이 연상되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는 흑과 백색만으로 자수를 놓아보고 싶습니다.

프랑스자수 작가 프랑스자수에서는 쨍한 원색부터 여리여리한 파스텔톤, 톤다운된 색감 등 다양한 색이 사용되고 있어요. 사람에 따라 원색의 발랄함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은은한 느낌을 자아내는 파스텔 계열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톤다운된 색감을 즐겨 찾는 편이에요. 바늘에 꿴 실만 보면 차분한 느낌을 주지만 한 발 떨어져 전체 모습을 살펴보면 동화 속의 삽화처럼 발랄함이 피어나는 게 느껴지거든요.

첫 수를 두기 시작한 사람에게 조언한다면?
전통자수 명장 전통을 흉내내는 사람들은 생겨나는데, 예술로서 전통을 잇는 사람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수와 같은 공예는 몸에 익혀야 보이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무엇보다 습관이 가장 중요해요. 그래서 전통공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기초가 꼼꼼하고 전통에 대해 세세히 알려줄 수 있는 스승을 만나 수의 기초가 되는 실과 원단 관리법부터 익혀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런 분들은 차근히 하나씩 전달해주기 때문에 동시간에 시작한 사람보다 더딘 속도에 답답하게 느낄 지도 몰라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면 수를 배운 누구보다 깊이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자수 작가 여러 수강생들을 만나보니, 자수를 처음 시작할 때 막연한 어려움을 느끼고는 했어요. 잠시 잊고 있었겠지만, 우리는 학창시절 가정 시간에 한 번쯤은 바늘과 실을 잡아보았답니다. 주머니를 만들어보고, 가방을 만들어보는 등 벌써 실과 자수를 경험한 적이 있어요. 어릴 때 배운 건 몸이 기억한다고들 하잖아요. 기본기만 차분히 익힌다면 어느새 나만의 작품이 완성되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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