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이 소장한 | 인형

삶의 또 다른 모습, 인형

인형은 사전적으로 ‘사람이나 동물 모양으로 만든 장난감 또는 인형극의 표현 매체가 되는 도구’1)로 정의된다. 여기에 기능적 요소가 더해지면, 주술·벽사·의례적인 기물로서 신과 통하는 매개물로 볼 수도 있고,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과 어른들을 위한 장식품으로까지 그 범주가 확대된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나무, 돌, 종이, 천, 금속 등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자신을 닮은 형상들을 만들어왔다. ‘인형人形’이란 단어 속에서 인간을 축소하고 상징화했다는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내용이 전승 신화들에서 산견되는 것을 보면, 인형의 기원은 인간이 도구를 이용하고 예술적인 행위를 시작하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형은 사람의 형태를 닮았기 때문에 그 형상이 만들어질 당시 사람들에 관한 직접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아닌 동물의 조형물 역시 인형 또는 동물인형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의인화의 산물이나 모든 사물에 인격을 부여한 애니미즘의 확장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람과 동물, 귀신, 그리고 삼라만상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형상적 사유를 거쳐 나온 조형물들은 거의 대부분 인형의 범주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형은 유럽과 미국, 일본 등과 비교하여 문화로 자리잡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형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인형을 바라보는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아직도 전근대적인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형 같은 걸 집에 들여놓으면 잡신이 붙는 것으로 여겨 꺼렸고, 여전히 인형을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까닭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인형들이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오늘날 인형들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발언, 공공 캠페인, 교육 프로그램, 홍보 및 영업전략 등 여러 부문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 이면에는 인형이 사람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고, 때론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인형을 통해 더 잘 이룰 수도 있는 생각이 자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서양문물의 유입과 근대화과정에서 전통적인 인형들이 많이 사라지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했다.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1930년대부터 ‘조선풍속인형’들이 일본인 관광객을 겨냥해 기념품 판매용으로 대량생산되었다. 그것은 일본 관광객을 위한 상품이었고 대부분 일본에서 생산 공급되었던 만큼, 일본인들의 눈으로 투영된 우리나라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해방 이후에도 이러한 풍속인형들의 일부가 계속 만들어지고 소비되었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 초반에 걸쳐 한복 인형과 같은 장식용 인형들이 관광상품과 수출상품으로 대량생산되었는데, 일본 인형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판피린 감기약 광고모델로 유명한 브래들리Bradley 인형이나 ‘못난이인형’ 역시 일본 인형들을 모방한 것이다. 이와 같이 ‘조선풍속인형’이나 ‘한복인형’ 등은 국가나 그 지역을 표상하는 대상으로 시대상황 속에서 탄생한 문화상품이라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흐름이 이어지면서 한편에서는 우리 고유의 인형을 만들어 상품화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런데 단순히 인형에 한복을 입힌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 고유의 것이 되거나 대중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아이의 귀여운 이미지나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 등을 인형에 담다 보면, 거기서 우리 고유의 인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만큼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를 얻게 된다. 유럽의 ‘비스크인형’이나 미국의 ‘바비인형’의 경우 아기나 어린이, 여성 등 특정 대상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해당 지역 사람들의 기본적인 감성을 잘 읽어내어 인형에 담았기 때문에 꾸준히 사랑받아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를 기점으로 비로소 장난감 인형이 제작되어 국내에 보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전에도 국내에서 인형을 생산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수출용이었다. 다양한 봉제인형을 제외하고 당시의 흐름을 선도적으로 이끌었던 것이 바로 ‘미미인형’이다. 88서울올림픽 이후 무역장벽이 제거되어 외국의 장난감들과 함께 인형들도 물밀 듯이 들어왔다. 그중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은 것들은 거의 없었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던 문화의 영향이다. 다시 말하면 인형에는 민족성이 잘 나타나기 때문에 민족적인 문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물론 외국의 애니메이션들이 들어오면서 남아들의 장난감은 대부분 외국의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인형은 여전히 외국 것들이 제자리를 잡지 못했다. 지금도 토이저러스와 같은 대형매장에 가면 외국 인형들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국내 인형시장을 확고하게 점유하고 있는 ‘미미인형’이나 ‘쥬쥬인형’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동양적이면서 친근한 인상의 인형을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인형수요층 저변에는 바비인형에 대한 이미지적인 거부감이 본질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말 디지털과 온라인 환경이 폭발적으로 확장되면서 인형을 좋아하던 아이들의 생활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인형 대신에 비디오게임과 MP3 플레이어 그리고 다른 하이테크 장난감에 빠진 아이들의 비중이 높아졌다. 이러한 흐름을 도외시할 수 없어 최근에는 전통과 현대, 그리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공존방식이 끊임없이 모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맞벌이 등 시간이 부족한 육아환경 탓으로 아이들에게 텔레비전과 유튜브 등을 보여주면서도 그 중독성에 대한 우려를 버리지 못한다. ‘나이키의 상대는 닌텐도’라는 말이 있다. 게임을 하면 그만큼 아이들의 활동력이 줄어 운동화가 덜 닳는다는 것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의미가 달라져 닌텐도가 나이키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포켓몬고’ 게임을 보면 그 변화의 흐름을 알 수 있다. 게임하는 사람들이 골목골목 뛰어다니기에 그들의 활동량이 증가하는 만큼 운동화가 더 빨리 닳는다. 이제는 인형산업 역시 4차 산업혁명과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작년 11월 2일 조회수 70억 3,700만 뷰를 돌파하며 유튜브 최다 조회 영상 1위에 등극한 ‘핑크퐁 아기상어’는 인형과 온라인콘텐츠사업 사이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에 힘입어 스마트스터디는 우리나라 콘텐츠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유니콘기업에 등극하기도 했다.

특정한 시대의 전체 사회상을 있는 그대로 되살리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따라서 접근할 수 있는 몇몇 사회적 측면이나 대상들을 매개로 한 시대의 단면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이런 단편적인 조각들이 모여 전체 사회상이 그려지는데, 마치 스냅사진 찍듯이 대상물을 포착하여 퍼즐처럼 일상적인 이야기를 재현할 수 있다. 바로 인형이 그런 통로의 역할을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접하는 인형은 제작되고 유행하던 시기의 문화 및 사회 이슈와 밀접히 연관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항상 변화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1) 국립민속박물관, 2015, 《한국민속예술사전: 민속극》


글 | 구문회_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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