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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왼손잡이야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를 배울 때의 일이다. 먼저 오른손을 연습하고 이어서 왼손을 연습한다. 이제 양손으로 동시에 하기만 하면 되는데, 내 손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남의 손처럼 움직인다. 오른손잡이인 내 경우엔 특히 왼손가락이 자꾸 꼬이고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피아노 연습 한번 하고 나면 격한 운동을 끝낸 듯 힘드니,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실로 복장 터지는 일이다. 내 몸이되 내 몸 같지 않은 이 왼손을 어찌하면 좋을까 궁리하다 문득 미친 생각이 “내가 왼손잡이라면?”

2021년 통계청 자료에 따른 세계 인구는 약 78억 명이다. 이들 중 왼손잡이는 얼마나 될까.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세계 인구 중 약 10% 내외가 왼손잡이라 하니 대략 7억 8천만 명 이상이 왼손잡이인 셈이다. 아시아 지역, 특히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 비율이 현저히 더 줄어든다. 오른손잡이의 세상에서 살게 된 왼손잡이는 여러 면에서 불리하다.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는 분야에서도 다르지 않아 서양악기인 바이올린, 플루트 등이나 우리 전통악기인 가야금, 대금 등도 왼손잡이가 왼손잡이 자세로 연주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독주 상황에서는 큰 문제가 없지만 합주 상황에서는 왼손잡이 연주자 혼자만 반대방향을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합주가 필수인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왼손잡이일지라도 오른손잡이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조선시대라면 왼손잡이의 비율이 현재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 오른손잡이로 전향하여 결과적으로 양손잡이 내지 오른손잡이가 된 왼손잡이들이 더 많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정황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풍속도에는 왼손잡이 연주자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19세기 말에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의 풍속도에는 왼손잡이 연주자의 모습이 여럿 보인다. 특히 가로로 부는 관악기인 대금 연주자가 왼손잡이의 자세로 연주하는 장면이 유독 눈길을 끈다.

검무와 줄타기를 연행하는 주변에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의 반주 악단이 자리하는데 왼쪽으로부터 피리2, 해금, 대금, 장구, 북의 순서이다. 삼현육각은 무용, 놀이, 무속의례, 연향, 행렬 등 의식의 종류나 장소를 막론하고 가장 널리 사용되는 악기편성 중 하나로 대개 여섯 개의 악기로 구성된 악기편성을 일컬으며 때로는 이런 악기편성으로 연주하는 곡을 일컫기도 한다. 두 그림 속의 악단에서 왼쪽 첫 번째와 두 번째 악사가 피리를 연주하고 있는데 오른손잡이 자세와 왼손잡이 자세가 섞여 있다. 피리의 경우 일반적으로 오른손잡이는 왼손을 위로, 오른손을 아래로 잡고 연주한다. 그러나 피리와 같이 세로로 부는 관악기들은 양손의 위치를 서로 바꾸어도 연주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어 연주자에 따라 편한 자세를 선택한다. 해금을 연주하는 세 번째 악사는 오른손잡이다. 이에 비해 네 번째 자리 대금 악사는 정확하게 왼손잡이 자세를 취해 연주하고 있다. 대금의 경우 연주 자세상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명확히 구분된다.

 

가로로 부는 관악기인 대금은 그 길이가 80cm 이상에 이른다. 이보다 약간 작은 민속음악에 주로 사용하는 산조대금의 경우에도 65~70cm 정도이므로 운지법에 익숙해지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여 양손잡이이더라도 사실상 왼손·오른손 자세를 바꾸어 연주하는 것이 쉽지 않다. 기산의 풍속도가 현상을 그대로 묘사한 결과라면 그림 속 대금 연주자는 왼손잡이가 맞다. 기산풍속도 외에도 왼손잡이 대금 연주자가 등장하는 유명한 그림이 있다. 김홍도의 무동도에도 삼현육각 편성의 악단이 등장하며 여기 대금 연주자가 왼손잡이다.

기산풍속도나 무동도에 등장하는 대금 연주자는 정말 왼손잡이였을까?

조선시대 궁중음악과 같이 대금 연주자가 동시에 여럿 등장하는 장면에서 왼손잡이 연주자는 상상하기 어렵다. 더욱이 현대에 와서는 관현악 합주가 보편화되어 있어 왼손잡이 대금 연주자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가장 가능성이 있는 쪽은 민속음악 분야의 상황이다. 대금 연주자가 동시에 두 명 이상 등장하는 예가 없어서 왼손잡이더라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왼손잡이 대금 연주자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어서 이러한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나 이렇듯 그림에 흔하게 등장하는 왼손잡이 대금 연주자는 사실 극히 희귀한 예이다. 그래서 풍속도 등에 등장하는 왼손잡이 대금 연주자는 본래 왼손잡이라기보다는 그림의 구도를 고려한 작가적 상상력의 결과라는 의견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무동도 | 26.8×22.7cm | 국립중앙박물관

대금

실제 대금연주자

삼현육각 연주자들은 모두 정면을 바라보며 연주하지만 대금 연주자는 악기의 특성상 오른손잡이인 경우 왼쪽으로 90도 가깝게 고개를 돌려야 한다. 대금의 규격이 80cm가 넘다보니 입김을 불어 넣는 취구吹口에서부터 손가락으로 짚는 지공指孔까지의 간격이 멀어 연주자는 이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특유의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대금 연주자가 유독 이렇게 독특한 자세를 취하다 보니 옆이나 뒤에 있는 연주자들을 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결국 화면상에서 대금 연주자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다른 인물들과 유사한 자세를 유지시키고 더불어 개별 요소들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서는 대금 연주자를 왼손잡이 자세로 전환해 그리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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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산풍속도는 19세기 말 당시의 풍속 현장이 사실 그대로 묘사된 창작품이라기보다 그 이전시대부터 전해진 여러 풍속도들의 예를 살펴 재구성한 그림으로 생각된다. 동일한 주제의 기산풍속도라 하더라도 크기, 색상, 형태, 배치 등이 서로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전체적인 구도 등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이전시대의 예라면 무동도와 같은 대표적인 풍속도였을 것이다. 내가 만일 왼손잡이였다 하더라도 어릴 적 피아노 연습에 큰 도움이 되진 못했을 것 같다. 능숙한 왼손을 얻는 대신 남의 손 같은 오른손을 갖게 되었을 테니 말이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아이가 왼손으로 글씨를 연습하는 모양을 보며 새삼 오른손잡이들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왼손잡이들의 불편함을 떠올려본다.


글 | 위철_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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