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전書傳』에 하늘이 듣는다는 것은 우리 백성들로부터 듣는 것이며, 하늘이 본다는 것은 우리 백성이 보는 것으로부터 본다1)고 하였다. 천문을 왕에게 백성의 뜻을 보여주는 거울로 여긴 것이다. 그리고 천문은 나랏일을 할때 길흉을 점치고, 씨뿌리고 거두는 시기를 예측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하늘의 문자를 새겨 넣은 천문도 제작은 중요한 국가사업이었다. 신구법천문도新舊法天文圖는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와 황도남북양총성도黃道南北兩總星圖를 하나의 병풍에 담은 것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태조 대에, 황도남북양총성도는 영조 대에 제작되었다. 1~3폭은 천상열차분야지도가, 4~7폭은 황도남북양총성도가, 마지막 8폭에는 태양과 달, 5개의 행성이 그려져 있다.
1.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별 그림(구법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상열차는 해와 달, 별의 변화를 차례로 늘어놓았다는 의미로,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하나의 원 안에 동아시아에서 관측할 수 있는 별이 담겨있다. 북극을 중심으로 적도를 붉은 원으로, 황도2)를 노란 원으로 표시하고, 은하수를 강처럼 그려 넣었다. 가장 외곽에는 춘분점을 기준으로 황도대를 12등분하여 12궁을 적어두었는데, 이는 태양·달·행성 위치를 정하고 계절을 구분하는 척도가 되었다. 적도와 태양이 가까워지면 봄과 가을이, 적도를 기준으로 북쪽으로 올라가면 여름, 남쪽으로 내려가면 겨울이 찾아올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3)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28개의 선은 적도와 거성을 연결한 것이다. 적도 부근에 있는 28개의 별자리를 좌표로 정하여 28수로 부르는데, 그 중 한 개의 별을 골라 거성이라는 표준 별로 정하였다. 이 28수를 다시 4등분하여 절기춘분, 하지, 추분, 동지와 동서남북에 대입하였다. 그림 오른쪽은 춘분~하지점에 걸치며 백호가 지키는 서방 7수라하고, 남쪽아래은 하지~추분점에 이르며 주작이 지키는 7수이다. 왼쪽은 추분~동지점에 걸치며 청룡이 지키는 동방 7수에 해당하고, 북쪽위은 추분~동지점에 걸치며 현무가 지키는 7수이다. 천문도에서 현무가 지키는 북쪽 구역은 밝은 별이 드물지만 동지점 부근의 남두 6성을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중국에서 제작된 천문도와 달리 별의 밝기에 따라 크기를 구분하고, 종대부宗大夫와 같은 고유 별자리가 그려져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2. 망원경으로 보는 별 그림(신법천문도, 황도남북양총성도)
하늘에서 위치가 고정된 황도나 28수에 비해, 적도는 세차운동4)에 의해 매년 황도 서쪽으로 조금씩 이동한다. 따라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매번 새로이 적경과 춘분, 추분을 계산해야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랐다. 이를 해결해준 것이 서양식 천문제작기법을 도입하여 만든 황도남북양총성도이다.
황도남북양총성도는 청나라에 머물던 독일 신부 쾨글러Ignatius Koegler, 1680~1746의 천문도를 모방하여 제작되었다. 제작원리를 보면 과거 천문제작법과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남과 북으로 양극을 나누어 바깥 원을 황도로 하고, 십이궁에 맞추어 선을 그려 궁명과 절기를 적었다. 황도와 별항성의 위치를 고정하여 세차에 의한 오차를 보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망원경 관측을 통해 눈으로 관측할 수 없었던 별, 작은 별들이 모여 구분이 모호했던 별, 은하수에 숨겨져 보이지 않는 별까지 그려 넣었다. 황도남북양총성도 위쪽에 천문도 제작원리와 함께 태양, 달, 5개 행성을 관측을 기록하였는데, 마지막 폭의 태양, 달, 5개 행성 그림과 비교해 보면 하단의 표와 같다.
충북 보은군 법주사 소장 신법천문도 병풍보물 제848호과 비교해 보면 국립민속박물관 소장본의 특징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본은 태양의 어두운 명암, 달 표면의 굴곡, 타원형 토성, 목성 주위를 도는 위성 4개가 그려져 있다.5) 또한 오행성의 명칭이 글도설에서 토성·목성·화성·금성·수성, 그림에서 전통 명칭인 전성塡星·세성歲星·형혹熒惑·태백太白·진성辰星으로 적혀있다.

조선시대 천문과 점성술
‘분야’는 천문도의 구역을 지상에 적용한 것으로, 28수가 있는 각각의 구역이 분야를 이루어 길흉을 점칠 때 이용되었다. 우리나라는 청룡이 지키는 동쪽 분야지역에 해당하는데, 하늘을 관측하여 혜성이 동쪽 분야에 나타나면 흉사가 생긴다고 여겼다. 영조 대1720~30년에 황도남북양총성도가 만들어졌지만, 천문은 여전히 그 해석에 있어 점성술에 가까웠다.
“나영조는 관측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은 저 하늘에 정성을 다하여 하늘이 굽어 살피도록 하려는 것이다.… 천문서의 내용을 듣건대, 그 점占이 불길하여 전쟁이 나거나 기근饑饉이 있다고 하였다. 청나라와 우리나라는 분야가 같으니, 저들이 만약 불안하다면 우리나라가 먼저 그 해를 받을 것이다.”6)1770년 『영조실록』 기사
“온성穩城 미전진美錢鎭의 보고에 이 달 2일 이경二更에 하나의 빛나는 형체가 나타났는데, 그 모습이 마치 사람이 동그란 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활과 화살을 가진 것 같기도 했습니다. 공중을 날아 북쪽으로 향한 뒤 조금 있다 천둥이 쳤는데 얼음이 쪼개지는 듯 한 소리가 나고 뜨거운 바람이 사람의 낯을 데웠다고 하니, 그 변괴가 비상합니다.”7) 1588년 『선조실록』 기사
위의 두 가지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천문도에 그려진 현상 외에 혜성과 유성별똥별 등 특이한 하늘의 움직임은 흉조로 판단했다. 조선은 천문현상을 단순히 길흉을 점치는 기준으로만 삼았다. 그러나 현재 이러한 기록은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선조 대에 나타난 ‘빛나는 형체’가 혜성인지, 유성인지, 단순한 자연현상인지, 아니면 정말 UFO인지. 실록에 기록된 이러한 내용들이 모티브가 되어 ‘별에서 온 그대’라는 드라마가 제작될 정도로 말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와 황도남북양총성도는 하늘과 백성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그 목적이 같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모습은 다르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눈으로 보고 상상력으로 의미를 부여한 하늘, 황도남북양총성도는 망원경으로 관측한 하늘 그림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형상을 해석하는 점성술과 과학이 함께 그려진 신구법천문도는 천문이 과학 분야로 넘어가기 전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조선시대 천문의 인식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본은 국내 유일의 신구법천문도이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1318호로 지정되었다.
1)『서전書傳』書曰 天聽自我民聽, 天視自我民視.
2)천구에서 태양의 궤도
3)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또 다른 천상열차분야지도(민속018491) 속 태양[日宿]에 대한 설명을 보면 “해는 태양의 기운이며, 모든 양기의 으뜸이다. 적도를 기준으로 남북으로 24도씩 떨어져 운행하는데, 멀면 춥고 가까워지면 더우며, 중간일 때 온화하다. 양의 기운이 활동하게 되면 북쪽으로 나아가 낮이 길고 밤은 짧아지며, 양기가 이기기 때문에 따뜻하고 더워진다. 음의 기운이 작용하면 남쪽으로 물러나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지며, 음이 이기는 이유로 추워진다.”고 적혀있다.
4)지구의 세차운동이란 자전축을 중심으로 지구가 움직이는 현상이다. 지구는 적도 부근이 부푼 회전타원체로, 중력이 적도 부근과 상대적으로 많은 상호작용을 하여 자전축이 서쪽으로 조금씩 이동하게 된다.
5)전용훈, 「서양 성도(星圖)를 통해 본 조선시대 천문도(天文圖)의 특징」, 『동국사학64권』,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18, pp.115
6)『영조실록英祖實錄』 권114 (영조 46년 윤5월 8일) 上俯伏曰 予非爲測候, 實欲輸誠於彼蒼, 佊蒼照臨.… 聞天文書, 其占不吉, 若非兵火, 必有饑饉. 彼國與我, 分野同焉, 彼若不安, 我國先受其害矣.
7)『선조실록宣祖實錄』 권22 (선조 21년 윤6월 24일) 穩城 美錢鎭呈 本月初二日二更, 有火塊形體如人坐於圓方席, 又若佩持弓矢. 空中浮飛向北, 隨有震雷, 如氷坼之聲, 風氣燻于人面, 變怪非常事.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서전』
·국립민속박물관,「천상열차분야지도(민속018491)」
·박창범, 「天象列次分野之圖의 별그림 분석」, 『한국과학사학회지 20권 2호』, 한국과학사학회, 1998
·이은성, 「천상열차분야지도의 분석」, 『세종학연구1』, 세종대왕기념사업회, 1986
·전용훈 「서양 성도(星圖)를 통해 본 조선시대 천문도(天文圖)의 특징」, 『동국사학64권』, 동국역사문화연구소, 2018
글 | 임슬기_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