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필자는 어린 시절 시청했던 ‘흙꼭두장군’이라는 만화영화가 생각난다.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이 주류를 이뤘던 만화영화계에서 몇 되지 않은 한국 만화영화였다. 흙꼭두장군 인형이 자신을 발견해 보살펴준 주인공을 구하고 자신은 소멸한다는 내용1)이다. ‘꼭두’의 본래 의미는 상여喪輿에 장식하는 나무인형을 말한다. 시원始原을 따지자면 고대 토우土偶가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나무를 깎아 만든 ‘인형’이라는 의미가 더 친숙하다.
우리나라에서 ‘꼭두’는 남사당패 민속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에 등장한다. ‘꼭두각시놀음’은 현재 전승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인형극으로 남사당패 연희演戲 중 하나인 ‘덜미’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덜미는 남사당패 연희자들이 불렀던 말로, 인형의 목덜미를 움직이게 한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단어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1964년 12월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꼭두각시놀음은 농악[풍물], 접시돌리기[버나], 기계체조[땅재주 또는 살판], 줄타기[어름], 가면극[덧뵈기]등과 함께 이루어지는 남사당패 연희의 마지막 놀이로, 연희의 절정을 보여준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과거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의·식·주 관련 유물뿐 아니라, 연희 패의 축제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꼭두각시인형’을 수집·보존하고 있다. 꼭두각시놀음에 등장하는 인형들은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진다. 그 종류를 보면, 나무막대기를 이용하여 조정하는 막대기인형, 천을 자루 또는 장갑처럼 만들어 조정하는 주머니인형, 신체부위에 줄을 매어 조종하는 줄인형 등이 있다. 또한 역할의 비중에 따라서 대·중·소형으로 인형의 크기가 각기 다른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의 인형은 막대기인형과 줄을 잡아당겨 조종한다. 보통 적당한 크기의 통나무로 얼굴과 몸통을 깎아 만들어, 아래 부분이 손잡이가 되게 하고 옷을 입혀서 사람의 형상과 닮은꼴을 이루게 하였고, 두 팔과 얼굴을 움직여서 동작을 나타낸다. 관절 부분은 철사못을 꿰어 연결시키고, 관절 부분 안쪽에 끈을 매어 속에서 연희자가 잡아당기며 움직이게 하였다.
꼭두각시인형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18세기 후반 문인文人인 강이천姜彛天, 1768년~1801년의 문집 『중암고重菴稿』에 <남성관희자男性觀戱子>라는 시에 잘 나타나 있다.
인형은 가는 손가락만 하고, 나무로 깍아서 오색을 입혔다. 인물을 바꾸어 번갈아 등장하니 어리둥절하여 셀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낯짝이 양반 같은 놈이 갑자기 나타나서 고함소리로 구경꾼들을 두렵게 하고, 머리를 흔들고 눈을 굴리는가 하면, 오른쪽을 바라보고 다시 왼쪽으로 돌아보기도 한다. …
꼭두각시놀음은 8거리2)으로 되어 있으나, 8거리 전부가 연결된 것이 아니고, 일부 막을 예외로 하고는 각 거리가 독립성을 띠고 있다. 그리고 악사들은 무대 앞에 늘어앉아 등장한 인물의 소리와 춤에 맞추어 음악을 연주하고, 무대 밖 산받이3)는 인형과 대담도 한다.
꼭두각시놀음을 포함한 남사당패 놀이는 일반적으로 마을 전체를 무대로 한다. 야외 공터에 마련된 놀이판에 모인 이들은 풍물을 돌며 축제의 처음부터 놀이패와 함께 춤을 춘다. 이어지는 접시돌리기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접시, 대접, 대야 등을 돌리며 흥을 돋운다. 땅재주에서는 “잘하면 살판이고 못하면 죽을 판이렸다”고 하며 놀이를 인생에 비유하기도 한다. 연희가 고조되고, 밤이 깊어 축제의 절정이 되면 꼭두각시놀음이 공연된다.
꼭두각시놀음은 ‘박첨지’와 ‘홍동지’라는 두 인형인물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인형극 중 가장 큰 박첨지인형은 산받이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해설자 또는 연출자의 기능도 한다. 극 중 박첨지는 일찍이 가정이 파탄나고, 떠돌이가 된 백발의 봉두난발蓬頭亂髮을 한 노인이다. 퀭한 눈에 주름이 가득하고 흰 바지와 저고리를 입은 그는 세파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하지만, 타고난 한량 기질 때문에 놀이판에 끼어들어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한다. 박첨지는 조선 후기 시대상을 반영한다. 사회적 억압을 당하는 몰락양반으로서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는다. 따라서 그는 연희자나 관객의 모습과 닮아 있는 일상의 인물로 표현된다. 반면, 홍동지는 박첨지와 대조를 이루는 인물이다. 온몸이 붉고, 검은 머리와 팽팽한 얼굴, 근육질 몸매는 강하고 젊은 남성임을 의미한다. 전통사회에서 몸의 붉은색은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움을 불러오는 의미를 지닌다. 상좌上佐와 소무小巫를 꾸짖어 춤으로 물리치거나, 이시미4)를 퇴치하고, 상여를 밀고 나가는 그의 행동은 모든 악을 물리치며 인간의 한계 상황을 구원하는 영웅으로 표현된다. 이렇듯 박첨지는 현실에 타협하며 살아가는 민중을 형상화하고, 홍동지는 민중의 희망을 실현 시켜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꼭두각시놀음의 대중적 의의를 나타낸다.
꼭두각시놀음은 박첨지와 홍동지 그리고 등장인물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풍자와 대담으로 나타내어 민중의 욕구를 충족하는 의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축제성이 강한 연희이다. 주요 두 등장인물들의 내용 전개를 통해 민중의 젊은 날의 열정, 삶의 고단함, 사회적 억압, 이별, 늙음, 전쟁, 자연적 재앙, 죽음 등 일반적인 삶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인형극의 내용은 민중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관객들은 삶과 현실의 고단함을 꼭두각시인형에 이입하여 이를 해소하는 일반적 축제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꼭두각시놀음이 끝나면 다시 풍물놀이가 이뤄지고, 이는 날이 샐 동안 계속된다. 관객들은 남사당패와 함께 날을 새면 왁자지껄 한바탕 놀고, 다음날 활력을 회복하여 다시금 일상생활로 돌아간다.
요즘 우리의 생활도 여러 고난과 고단함을 맞닥뜨리고 있는 시기이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올 하반기에 개막할 전시에서 남사당패 꼭두각시놀음을 비롯하여 유랑예인들의 연희를 몰입형 전시로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을 준비 중이다. 과거 선조들이 꼭두각시놀음을 통해 일상의 고단함을 이겨내고 다시금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활력과 희망을 얻었던 것처럼, 올 하반기 전시를 통해 당시의 즐거움을 느끼고, 이를 통해 삶의 활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1) <흙꼭두장군>은 1991년 MBC에서 방영된 애니메이션으로 <까만 수레를 탄 흙꼭두장군>을 원작으로 제작되었다.
2) 대본은 채록자에 따라 7거리에서 11거리로 구분되는데 극적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오래된 김재철 채록본은 8거리이다. 첫째, 곡예장거리, 둘째, 뒷절거리, 셋째, 최영노(崔永老)의 집거리, 넷째, 동방노인거리, 다섯째, 표생원(表生員)거리, 여섯째, 매사냥거리, 일곱째, 평양감사재상거리, 마지막 건사거리이다.
3) 포장 무대 밖에 앉아서 연주도 하고 연희자와 대사도 주고받으며 꼭두각시놀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놀이꾼이다.
4) 이무기의 강원도 방언으로, 전설상의 동물로 용이 되지못한 여러 해 묵은 큰 구렁이를 이르는 말이다.
참고문헌
· 국립민속박물관, 2015,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민속놀이』
· 서연호, 2001, 『꼭두각시놀음의 역사와 원리』, 연극과 인간
· 이상란, 2005, 「꼭두각시놀음의 축제성」, 『한국연극학』 제26호 pp.161~195
· 한국민속대백과사전(https://folkency.nfm.go.kr/kr/main)
글 | 이광일_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학예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