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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에는 | 가을, 이사하기 좋은날

다양한 이사 이야기

9월은 여름의 무더위가 한풀 꺾이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좋은 가을 이사철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사람들에게 봄과 가을은 무덥고 비가 내리는 날이 많은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 비해서 이사하기 좋은 계절로 인식되었다. 이사는 사는 곳을 다른 데로 옮기는 것으로 이와 관련해서 언제 이사해야 좋으며, 이사를 갈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다양한 이사 풍속이 있었다. 이는 생활의 터전을 옮겨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점에서 이사가 사람의 일상적 삶과 앞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선택이라는 인식을 밑바탕에 두고 있다.

이사하기 좋은 날
이사하기 좋은 날의 선정 방법은 ‘손’ 없는 방위와 일진을 보아 길일吉日을 택하는 방법이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손은 날수에 따라 사방위를 돌아다니면서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는 귀신을 뜻하며, 통상 손 없는 날은 일자에 0과 9가 드는 날이다.1) 1975년 9월 19일 <경향신문>에는 “손 있는 날 등 따지지 말고 맑은 날 택하도록”이라는 이사 풍속 관련 기사가 나온다. 이 기사는 손의 유무를 따져서 이삿날을 선택하는 것이 비과학적이기에 이사하기 편한 맑은 낡을 선택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그 당시에 이사할 시기를 선정할 때 많은 사람들이 손 없는 날을 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의 이사 모습
현대의 이사 모습

한편 제주도에서는 주로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 사이인 ‘신구간’에 이사를 하였다.2) 신구간은 지상의 신과 천상의 신이 교대하는 시기를 의미하며, 이때는 신의 자리 이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지상에 신이 없는 때라고 한다. 따라서 길신吉神과 흉신凶神 모두 지상에 없는 신구간에는 신의 관여를 받지 않아서 이사를 비롯하여 집수리나 장례식 등의 일을 해도 무방하다고 여겼다.

제주도에서는 신구간에 이사를 했다.
제주도에서는 신구간에 이사를 했다.

신과 함께 하는 이사
류중림의 『증보산림경제』 점복占卜조에는 이사와 관련하여 행해야 할 일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3)

첫째, 새집에 들어갈 때나 이사를 할 때 좋은 날을 받아야 한다. 둘째, 향촉, 술, 정화수, 버드나무가지 혹은 푸성귀를 준비하여 천지天地 가신家神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이때 잡귀를 물리치고 집을 보호하여 집에 복록이 깃들기를 빈다. 셋째, 가신과 조왕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이때 정화수를 문이나 기둥에 뿌리면서 집안에 좋은 일만 생기도록 빈다. 이 기록에는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사할 때 좋은 날을 받아야 한다는 것과 더불어 가신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가신신앙은 가택의 요소마다 신이 존재하면서 집안을 보살펴 준다고 믿고, 그 신에게 정기적, 또는 필요에 따라 의례를 행하며 신앙하는 것이다.4) 영화 ‘신과 함께’ 2편에서 마동석 배우가 가신 가운데 한 집안의 으뜸신으로 여겨지는 성주신 역으로 출연하여 집안을 지키는 모습이 나온다. 실제 성주신을 상징하는 신체神體는 집의 중심이 되는 대청의 대들보 밑이나 상기둥의 윗부분에 흰 한지를 접어서 실타래로 묶거나, 백지를 막걸리로 적셔서 반구형이 되게 만든 것이다.5) ‘신과 함께’에서 성주신의 모습은 영화적으로 표현된 것이지만, 가신이 집안을 지키는 존재라는 상징적 의미는 잘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신은 성주신 뿐만 아니라 조왕·삼신·터주·업·철륭·우물신·우마신 등 다양하게 존재하였다.

흰 한지를 접어서 실타래로 묶은 성주 신체를 걸어두었다.
흰 한지를 접어서 실타래로 묶은 성주 신체를 걸어두었다.

『증보산림경제』에서 가신과 조왕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일반 가신과 조왕을 구분하여 제를 한다는 뜻이다.6) 여기서는 부엌과 불을 관장하는 조왕의 지위와 의미가 특별히 강조되어 있다. 가신과 조왕에게 제사를 지낼 때 정화수를 문이나 기둥에 뿌린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정화의례이다. 그러므로 가신과 조왕신에게 지내는 제사는 가옥의 생명력을 왕성하게 하고, 그 가옥에 살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서 이사를 할 때는 주술·종교적 의식이 수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세구복現世求福적이며 액운을 막기 위한 이사 풍속7)
현세구복은 현재 살고 있는 세상에서 잘 되게 해달라고 복을 비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이사 풍속은 그 의미를 살펴보면 결국 현세구복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된 이사 풍속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사는 밝은 태양의 기운을 받아서 집안이 번창하기를 바란다는 의미에서 해가 떠오르는 아침 시간에 하는 것을 좋다고 여긴다. 둘째, 새집에 들어갈 때 덕망 있는 어른이 먼저 들어가는데, 이는 가신에 대한 예의를 차리거나 어린아이를 보호한다는 측면도 있다고 한다. 또한 집 안으로 들어갈 때는 이사 후에 많은 재물이 생기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사람마다 돈이나 곡식, 베 등을 들고 가기도 하였다. 셋째, 이사 후 집 안에 우선적으로 들이는 살림살이로는 화로, 밥솥, 요강 등이 있는데, 이러한 살림살이는 집안의 번창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화로는 불씨를 보관하는 그릇이며, 불씨는 집안의 성한 기운을 상징하였다. 따라서 불씨가 담긴 화로를 들이는 것에는 집안이 융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는 후대에 연탄보일러가 일반 가정에 보급되면서 연탄불을 옮기는 것으로 대체되기도 하였다. 밥솥은 생명체인 사람의 생존활동에서 중요시되는 생활기구로서 가족의 건강과 생명력이 왕성해지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와 유사하게 요강은 배설물을 담는 그릇으로서 음식을 잘 먹고 배설을 잘하여 가족이 건강하게 생활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사를 할 때는 좋은 일을 바라는 현세구복적인 이사 풍속뿐만 아니라 나쁜 일을 막기 위한 이사 풍속도 있었다. 이러한 이사 풍속으로는 소금이나 팥죽을 뿌려서 집안의 부정을 가시며, 이삿짐 장롱에 붉은 팥떡을 넣은 후 그 밑에 붉은 색으로 ‘왕’자를 써서 잡귀를 따라오지 못하도록 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리고 이사 풍속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물건을 가져가지 않는 것도 있었다. 예를 들면 가난을 상징하는 찬밥과 물건을 쓸어내듯이 집안의 복을 쓸어낼 수 있다고 여긴 비는 이사 때 가져가지 않았다.

이사 풍속의 의미와 현재
지금까지 소개한 것 이외에도 이사 풍속은 다양하게 존재하였다. 그러나 현재 이사 풍속은 예전에 비해서 잘 행해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전통사회와 달라진 현대사회의 생활환경 변화와 이사 풍속을 비과학적으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 그리고 이사 풍속보다는 현대의 생활 패턴과 사회적 조건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 등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사 풍속의 의미는 단순히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할 것만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사 풍속은 이사를 하면서 환경적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정신적 불안의 해소, 앞으로 잘 될 것을 기원하며 생활적인 측면에서 희망 부여, 그리고 가족과 심적 유대감과 결속력을 높이는 등의 기능을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이사 풍속은 여전히 지속되거나 현대적으로 변용되어 이어지는 측면도 있다. 대표적으로 ‘손 없는 날’에 이사하는 것은 인터넷에 검색하면 여전히 언급되는 이사 풍속이다. 또한 현대에는 집이 잘 팔리지 않을 때 장사가 잘 되는 집의 가위를 가져와서 거꾸로 달아두거나 현관에 빗자루를 거꾸로 세워놓는 등의 주택의 매매와 관련된 이사 속신이 새롭게 발생하기도 하였다.8) 이와 같이 이사 풍속은 예전보다 전승이 약화된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과거의 이사 풍속이 지속되거나 현대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변용되어 전승되고 있다.

참고문헌
·배도식, 「한국의 이사풍속」, 한국민속학 18, 한국민속학회, 1985.
·배영동, 「집들이 풍속의 전통과 변화」, 『비교민속학』 32, 비교민속학회, 2006.
·장장식, 「제주도 신구간 관행과 지속」, 『비교민속학』 36, 비교민속학회, 2008.
·정연학, 「이사」, 『한국의식주생활사전: 주생활2』, 국립민속박물관, 2019.
·최운식·김명자·이정재·장장식·홍태한, 『한국 민속학 개론』, 민속원, 1998.
·한미옥, 「이사 관련 속신의 현대적 지속과 변용」, 『한국민속학』 49, 한국민속학회, 2009.

1)정연학, 「이사」, 『한국의식주생활사전: 주생활2』, 국립민속박물관, 2019, 553쪽.
2)신구간의 내용은 장장식의 글을 참고하여 정리하였다.(장장식, 「제주도 신구간 관행과 지속」, 『비교민속학』 36, 비교민속학회, 2008, 305쪽 참고)
3)『증보산림경제』의 이사 관련 내용은 배영동의 글을 참고하여 정리하였다.(배영동, 「집들이 풍속의 전통과 변화」, 『비교민속학』 32, 비교민속학회, 2006, 97쪽 참고)
4)최운식·김명자·이정재·장장식·홍태한, 『한국 민속학 개론』, 민속원, 1998, 193쪽.
5)최운식·김명자·이정재·장장식·홍태한, 위의 책, 민속원, 1998, 194쪽.
6)조왕신에 대한 내용은 배영동의 글을 참고하여 정리하였다.(배영동, 앞의 글, 2006, 97쪽 참고)
7)이와 관련된 이사 풍속은 정연학과 배영동의 글을 참고하여 정리하였다.(정연학, 앞의 글, 553~554쪽; 배영동, 앞의 글, 103~104쪽.)
8)한미옥, 「이사 관련 속신의 현대적 지속과 변용」, 『한국민속학』 49, 한국민속학회, 2009, 422쪽.


글 | 이한승_민속학전공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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