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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담아듣는 | 민속연구과 지역조사팀

과거와 현재를 잇는 현장의 생생한 대화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조사자들은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담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오랜 시간 현지에서 체류하며 주민들의 삶을 섬세한 눈으로 관찰하고, 개인의 생애를 기록하고자 때론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것이다. 한 해 동안 부산 영도지역의 생활 문화를 조사하여 기록한 보고서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고 흥미가 넘친다.

부모의 세대와 나를 연결해주는 민속연구
국립민속박물관이 최근 수행하는 민속조사연구의 갈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각 시대별로 여러 사람이 공유하고 공감하는 생활 및 물질문화를 발굴하여 조사하는 ‘역사민속’, 같은 뿌리를 두었지만 고려인이나 조선족의 생활문화가 다른 것처럼 지역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생활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연구하는 ‘비교민속’, 그리고 국내 각지의 문화적 특수성과 그 연원을 연구하는 ‘지역민속’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그간 2~3년을 주기로 국내 각지의 조사 대상지를 발굴하여 지역민속조사 사업을 진행하는데 이번에는 ‘2021 부산민속문화의 해’를 맞아 부산 영도의 민속문화를 조사했다. 민속연구과가 주체가 되어 4명의 연구원과 1명의 외부 전문가가 함께 『영도 대평동 민속지 1, 2』, 『영도에 오다(이주와 정착)』, 『영도에 살다(삶과 생활)』, 『영도에서 본 부산의 해양문화』 등 총 5권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번 민속조사를 이끈 김호걸 학예연구사는 민속조사에 대한 그만의 깊이 있는 견해를 전한다. “역사를 흔히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말합니다. 현지 사람들이 오랫동안 전승해온 생활과 문화를 연구하는 민속조사는 ‘보편적 지식과 현장의 대화’라고 말할 수 있어요. 보편적 지식을 토대로 접근하지만, 현장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인식하고 수정합니다. 예를 들면, 4.19혁명이나 새마을운동 같이 우리는 교과서로만 배웠던 역사를 실제로 경험한 세대들로부터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다’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더 디테일한 역사를 인식하기도 하고, 또 교과서에는 없는 역사도 새롭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니 그동안 막연했던 민속연구의 개념이 조금씩 실마리가 풀리는 듯하다. 일반인들에게 민속학이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아마 다루는 범위가 넓기 때문일 것이다. 조사자들은 민속조사에서 인간 삶의 의식주와 세시풍속, 민간신앙, 일생의례 등 넓은 분야를 다룬다. 그렇다면 조사자들은 왜 영도에 초점을 맞추었을까? 이유는 영도가 부산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부산을 대표할만한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붉은 김치를 제사상에 올리는 독특한 문화
“영도의 옛날 이름은 ‘절영絕影도’였어요. 그림자가 끊길 정도로 빨리 달리는 말이 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영도는 국마장이 있었던 곳이고, 해금海禁 정책으로 인해 주민들이 많이 살던 곳은 아니었습니다. 개항 이후 일본인 이주어촌이 형성되었고, 부산항의 배후기지로 산업이 발달하면서 도시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래서 영도에는 일본식 주택인 ‘나가야長屋’가 지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김호걸 학예연구사는 “영도는 섬이면서 육지이자 도시적 특징을 모두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개항과 6.25 한국전쟁을 거치며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부산으로 모여들어 본격적으로 산업도시로 발전하였는데, 이러한 이유로 고유의 전통문화를 간직하면서도 여러 지역의 풍습이 혼재하고 있어 부산지역 안에서 독특한 문화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명절 차례상에서 엿볼 수 있다.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여 제사상에 올리는 않는 대표적인 것이 고추와 복숭아다. 또 자극적인 향신료와 ‘치’가 들어가는 생선을 하찮은 것으로 여겨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제사 상차림 문화다. 하지만 영도에는 경남 통영, 거제, 고성 등 출신 지역의 주민들 사이에서 붉은색 김치 위에 작은 간장종지를 얹어 차례상에 올리는 독특한 풍습이 보인다. 또한 영도는 해녀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영도는 제주 출신 해녀들이 동해안이나 서해안, 남해안 등 전국 각지로 ‘원정 물질’을 떠나는 거점이었다. 그리고 현재 영도에서 생업을 이어가는 해녀들의 70% 가량이 제주 출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민들의 생생한 인생살이를 귀담아듣다
이처럼 고유의 풍습과 생활사를 이해하기 위해선 오랫동안 체류하며 현지인들의 삶을 하나하나 섬세한 눈으로 관찰해야 한다. 김호걸 학예연구사는 현지의 민속문화를 조사하기 위해 서울과 영도를 왕래하며 현지에서 총 150여일 간을 체류하며 느낀 생생한 소회를 전한다. “그동안 영도다리를 300번 이상 건넌 것 같습니다. 현지 주민이나 영도에 직장을 둔 사람 외에 외지인으로 단기간에 영도다리를 가장 많이 건넌 사람이 아마 저일 거예요(웃음). 현지 주민들과 대화하기 위해선 신뢰를 쌓아야 하는데 농촌마을이라면 일손이라도 거들며 대화를 나눌 수 있어요. 하지만 수리조선업 업체가 많은 영도에선 일손을 거들 방법도 없고, 아침부터 찾아가면 재수없다고 할까봐 들어갈 엄두도 못냅니다. 현지인에게 다가가 그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새벽 다섯 시 반부터 시작하는 마을회 방역작업에도 참여하여 분무기도 지고 휴지도 주우며 부단히 노력을 했습니다.”

 

현지 주민들로선 낯선 외지인과 대화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더욱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고 유대를 다지고 나면 마음속에 꼭꼭 숨겨놓았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이때가 바로 조사연구자들이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마을 민속 조사를 주로 해 온 황동이 연구원은 구술생애 조사를 마치고 느꼈던 보람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고 이야기한다. “열일곱 살에 제주에서 건너와 70년 동안 물질을 해온 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어요. 해녀 일을 하며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을 공부시켜온 이야기를 들었는데, 할머니가 직접 개인사를 책으로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알리는 것이 매우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우여곡절이 담긴 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의 역사가 이렇게 이루어져 왔다라는 것을 체험하는 한편, 그 이야기를 기록하는 조사자로서의 책임감도 느끼는 계기가 되었어요.”

‘신뢰’와 ‘유대’로 느끼는 민속연구의 보람
조사팀 이현아 연구원도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역사학 전공자로 사료 중심의 연구 경험만을 쌓아 왔지만, 이번 현지조사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전해주는 생생한 역사를 듣게 됨은 물론 사람과 사람 간의 따뜻한 유대감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이발소를 하시는 어느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처음에는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치셨어요. 하지만 여러 차례 찾아가 친해지면서 할아버지의 인생살이를 들을 수 있었죠. 언제는 대화를 나누면서 할아버지가 제 피부가 상한 것을 보시고 ‘빨리 나으라’며 연고를 건네주신 적이 있었는데요. 지금도 가끔 전화를 주시며 저를 손녀처럼 대해주시듯 다정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어요.” 진솔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조사자들의 노력이 쌓인 결과일까? 주민들은 어느 순간 그동안 꽁꽁 숨겨놓았던 인생사를 꺼내놓기도 한다. 김호걸 학예연구사가 어느 할머니와의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물건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새벽 여섯 시부터 부지런히 가게 문을 여시는 팔순 넘은 할머니가 계셨어요. 14살 때 고향인 전남 완도를 떠나 영도에 정착해서 살아오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보고서에 담으려고 했는데, 당일 저녁 마을 반장님으로부터 긴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그 시절 누구나 그렇게 살아왔을텐데, 할머니는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가 혹여 자식들에게 누가 될까봐 잠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었어요.” 결국 할머니가 걱정하시지 않도록 안심시켜 드렸고, 이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는 보고서에 실리지 않았다. 오래 전에 만난 주민들과의 사소한 만남이라 할지라도 모든 인연을 소중히 이어가는 그에게 ‘제보자와의 신뢰’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이자 책임이었던 것이다.

민속연구의 핵심 키워드, ‘현장을 충실히 기록하라’
이토록 따뜻하고 때론 인간적이기까지 한 현지조사의 경험은 조사자들에게 톡톡한 재미와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그런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는 철저한 조사와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 기본. 김호걸 학예연구사는 “현장에 대해 충실히 기록할 것”을 늘 염두에 두고 조사에 임한다. “현지에서의 민속 연구는 철저한 조사가 뒷받침되어야 해요. 입맛에 맞는 한두 사례만을 골라 조사해서는 결코 올바른 연구가 될 수 없습니다. 조사 범위와 계획을 구체적으로 정해놓고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해요. 또한 연구자의 주관이 지나치게 반영되어서도 안 되겠죠.” 1년의 1/3 이상을 체류하며 지역을 생생하게 관찰해온 조사자들에게 영도는 어느덧 친숙한 ‘고향’으로 변해 있었다. 부산이 고향인 황동이 연구원은 “어릴 때 찾아간 영도는 할머니가 사시는 곳이자 그저 어여쁜 바다가 있는 곳으로만 보였지만 이번 조사에 참가하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엿볼 수 있었다”며 나름의 의미를 정리한다. 이현아 연구원은 “현재 가덕도 조사에 참가하고 있는데 현지에서 영도 출신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반가움이 느껴진다”고 하니 그들에게 영도는 이미 마음의 고향이 된 듯하다. 김호걸 학예연구사도 “저에게 영도 조사연구의 키워드는 ‘영도다리’였노라”며 소회를 밝힌다.
“영도다리는 뭐랄까, 매일 오후 2시 다리가 열리는 특별한 이벤트의 공간입니다. 이벤트는 특별한 추억이나 인연을 갖게 해줍니다. 영도다리를 건너다니며 현지에서 조사연구를 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잊을 수 없는 여러 가지 기억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조사는 저에게 또 다른 과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보고서를 작성하며 여러 가지 연구할만한 주제를 찾았고, 향후 좀 더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영도 민속조사 보고서
영도 민속조사 보고서

앙드레 말로는 그의 저서 『상상의 박물관』에서 “박물관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생각을 보여주는 장소”라 말한 바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지역민속 조사자들에게 전국 곳곳은 흥미로운 조사지역이자 박물관으로서 새로운 인연을 맺는 아름다운 이벤트의 장소가 될 듯하다.


글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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