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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서는#2 | 변화가 필요한 박물관

코로나와 포스트 코로나, 변화가 필요한 박물관

일상의 상실Loss of Normal과 새로운 일상New Normal의 도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병한 이후, 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에 대한 팬데믹Pandemic을 선언하였다. 전 세계가 겪는 정치·경제적 타격 속에서 우리나라 역시 충격 완화를 위한 다양한 방편들을 모색하고 있다. 일터와 학교,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는 새로운 삶의 변화, 일상 상실의 시대를 겪는 과정에 있으며 또, 이를 새로운 일상으로 소화해 내고 있다. 개별 생활 속에서의 큰 변화들 중 하나로 여가생활을 언급할 수 있다. 흔히 어떤 형태로든 영위되어야 하는 – 이를테면 경제활동과 같은 – 생활요소보다 조금 덜 중요하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현대인은 여가생활 상당부분을 대중이 밀집하는 문화 시설을 중심으로 영위하는 경향이 있어, 효과적인 감염 예방책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는 이상 사람들이 여가를 즐기기 위해 갈 수 있는 곳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이는 사람들에게도 힘든 일이겠지만, 문화 시설을 운영하는 측에서도 당황스럽기 그지없을 일이다.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강화된 방역 수칙이 강조됨에 따라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특별 관리에 들어가는 한편, 국·공립 박물관 등도 무기한 휴관 조치에 돌입하였다. 관람객을 맞이할 수 없는, 그리고 앞으로도 이와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현 상황 속에서, 물리적 공간을 기능 기반으로 삼는 박물관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코로나 시대COVID Age, 박물관의 수난기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코로나19의 전 지구적 확산은 박물관 운영에 큰 타격을 가져왔다. 제국주의 역사의 주도 세력이면서 박물관사의 시발이었던 유럽 국가들의 유수 박물관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감염 사태를 막고자 일시 폐쇄를 단행하였다. 올 해 3월 3일 루브르 박물관Musee du Louvre이 휴관에 들어갔으며, 3월 9일에는 로마 스쿠데리에 델 퀴리날레Scuderie del Quirinale 미술관에서 개최되어 2020년 상반기 최고 이벤트라 불렸던 라파엘로Raffaello Sanzio,1483~1520 서거 500주년 기념 특별전 ‘Raffaello 1520~1483’마저도 개막 사흘만에 잠정 중단되었다. 영국의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과 자연사박물관Museum of Natural History등도 휴관 상황을 피하기 어려웠다. 현재 ‘Raffaello 1520~1483’은 시간당 85명 이내로 입장객을 한정하여 운영하는 방식으로 재개되었고, 다른 박물관들 또한 점차 개관을 준비하고 있지만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박물관 운영상의 문제는 박물관 자체의 어려움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국박물관연합American Alliance of Museums이 2018년에 발표한 보고서, 『Museums as Economic Engines』1)에는 미국 내 박물관들이 GDP증산, 일자리 창출, 세수 증대효과 등 다방면에서 상당한 경제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미국 스포츠 산업의 두 배에 까지 달한다는 분석이 등장한다. 한껏 고무된 그 결론이 아름답기는 하나, 코로나19 상황으로 박물관 경영에 적신호가 들어왔을 때는 그 반대 파장 또한 클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국내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2018년 기준 국내에 등록된 873개의 박물관 중 475개가 사립 박물관으로, 이들은 상당한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다. 그나마 국가예산으로 운영되는 국립 박물관들 만이 기관마다 각각의 대책을 세워 대응해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국립 박물관들은 일제히 휴관에 들어선 2월 25일 이후로 휴관과 재개관을 반복하고 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방역’체계가 운영되는 동안 박물관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정보 서비스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단발성을 넘어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라는 가정이 가능하게 된 지금, 박물관은 자신의 생존을 위한 큰 숙제를 안게 되었다.

컨택트Contact에서 언택트Untact를 지나 신중한 컨택트Cautious contact
현대 사회에서 공공시설이 폐쇄되었다는 것은 전쟁이나 천재지변과 관련된 경우를 제외한다면 이례적이고 급작스런 상황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다. 국내 각 박물관들은 휴관기간 동안 그간 박물관이 가져 온 기능을 온라인 플랫폼으로 옮겨 제공하는데 힘썼고, 곧 휴관기간의 종료와 함께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지난 4월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내 분과 중 하나인 CIMAM2)은 코로나19 상황과 관련하여 박물관 및 미술관 운영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그 내용은 사실상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지침과 다르지 않다. 멈춰있을 수 없는 박물관 활동에 관하여 최소한의 조심성을 강조하고 있다.
폭발적인 확진자 증가세를 보였던 유럽, 특히 유럽 코로나19의 진원지라는 불명예를 얻은 이탈리아도 5월 중순 경부터 문화시설의 재개관을 점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Santa Maria del Fiore 대성당의 관람시설도 재개관하는데, 입장객들에게는 특수 제작한 목걸이를 나누어 준다고 한다. 각 목걸이가 2m 이내로 가까워지면 경고음을 울리는 기능이 있어 입장객들이 스스로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국내 박물관 역시 재개관한 후에는 일별 입장객을 제한하고 발열상태 확인을 하는 한편, 관람객들로 하여금 개별정보를 기재하도록 방명록을 비치하는 것으로 만일의 사태에 대한 최소한의 대비를 하였다. 현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박물관을 다시 개관한다는 것은 곧 일상으로의 복귀를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일 수 있다. 사람들의 활동은 더 큰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유지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에 절대적인 금지란 불가능하다. 이제는 변화된 상황에 맞춘 삶을 재개하여 적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권준욱 중앙방역대책본부 부본부장의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은 앞으로 찾아 올 변화와 그에 적응하여 바뀌게 될 새로운 일상의 도래를 시사한다. 바뀐 상황은 박물관의 생존에도 유리한 환경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텅 빈 박물관이 스스로 존립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꼈다면, 무엇보다도 미래의 박물관이 가져야 할 사회·문화적 역할의 지향점을 구체화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스스로 만든 담장을 뛰어 넘어야 할 박물관
힘을 가진 국가, 그 안에서도 권력을 가진 자가 탐한, 아름다운 물건들이 모여 있던 ‘쿤스트 캄머Kunstkammer’는 소유욕에 의해 가득 채워진 공간이었다. 온갖 진귀한 예술품으로 장식된 그 방이 박물관의 시발이라 한다면, 박물관은 본디 공간에 기반 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근간에 이르러 박물관의 시선이 지역이 일군 삶과 문화로 향하고, 사회 내 계층과 집단지성에 반응하며, 시의성 있는 어젠다에 큰 관심을 두었다 할지라도, 이는 결국 박물관이 가진 역할의 확장 수준에 그친 것이었으며 박물관의 공간 내에서 이루어진 한정적 변화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박물관이 당면한 숙제는 박물관이 스스로를 어떻게 뛰어넘어야 하는지이다. 관람객 없이는 존재하기 힘든 물리적 박물관의 한계를 넘어 역할과 기능을 재정립하고 존립의 필요충분조건을 만들어 가야 한다. 물론 전형적인 박물관은 오브제Objet를 기반으로 하고 그것을 보존하고 전시할 물리적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방식이 변함에 따라 이에 준하는 다변화된 문화정보의 공유 방식이 필요하게 되었음은 자명하다. 아울러 시류를 따라 변화하는 현재의 삶 또한 박물관이 담아내야 할 문화요소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오스트리아 비엔나박물관Museen der Stadt Wien의 시도는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시민들의 일상 회복의 시작을 문화와 예술이 있는 삶으로의 복귀로 규정하고 관내 박물관 및 미술관의 재개관을 진행하고 있다. 아울러 사회적 거리두기에 위배되지 않는 문화적 거리 좁히기에 관심을 두고 온라인 정보를 강화하는 한편, ‘사람들의 일상’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비엔나박물관은 홈페이지3)를 통해 ‘도시역사 수집 프로젝트’4)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개인의 코로나 이야기 및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누구나 자신이 겪는 코로나 관련 일상을 사진 등으로 기록하여 박물관에 기부할 수 있다. 인류가 겪고 있는 팬데믹은 어떤 형태로든 지나가겠지만, 그 이야기들을 어떻게 공유하고 수집하여 후세에 남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시민들과 함께 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박물관은 인간의 생활방식 총체를 연구·보존하고 이를 공유하는 공간이다. 현 시점은 박물관이 스스로 겪는 상황에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작금의 상황을 함께하는 방식 또한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소장품의 수집과 보존 등 박물관 본연의 활동은 물론, 다양한 정보들을 효과적인 방법으로 담장 밖에서 공유하고, 현실의 변화하는 삶들을 능동적으로 보존하고 공유할 방법이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잘 발달된 정보통신 인프라를 통해 더 효과적인 방안이 탄생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싶다. 다가 올 포스트 코로나Post-COVID 시대는 박물관의 적응보다는 박물관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1) www.aam-us.org/wp-content/uploads/2018/04/American-Alliance-of-Museums-web.pdf
2)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현대미술분과 국제위원회로 현대미술 관련 큐레이터와 미술관장이 속해있는 미술관 실무 전문인력 조직(International Committee for Museums and Collections of Modern Art)
3) www.wienmuseum.at
4) Sammlungsprojekt zur Stadtgeschichte


글 | 김창호_국립민속박물관 섭외교육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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