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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에는 | 전염성 질환

전염성 질환에 대응하는 동서양의 역사

“인류의 모든 문제는 홀로 방 안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무능함에서 유래한다”

프랑스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이 말을 한지 300여 년이 지난 지금, 전세계는 홀로 방 안에 조용히 앉아 있지 못하는 무능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세계적 전염병이 현 인류에게 가져온 재앙은 단순히 질병에 그치지 않았다. 전 세계 수많은 공장들이 멈췄고, 그로 인해 수많은 실직자를 양산했다. 그 결과,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던 인간은 전염병 앞에 무기력하게 쓰러졌다. 당장에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하게 됐고 심지어는 전염병에 맞서 싸우기에도 버거운데, 인간이 인간을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염병과의 싸움은 비단 현재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과의 싸움이었다. 유럽 인구의 절반이 목숨을 잃은 14세기 흑사병, 100여 년 전 제1차 세계 대전의 사망자수보다 3배나 많은 목숨을 빼앗아간 스페인 독감, 조선시대 후기에 창궐해 수많은 희생자를 낳은 천연두까지. 수차례의 전지구적 팬데믹pandemic·감염병의 전 세계적 유행으로부터 인류가 찾은 교훈은 ‘팬데믹은 반드시 반복된다’는 것이었다. 이 반복되는 전염병의 굴레에서 우리 인류가 타개할 답은 무엇일까.

조선시대의 사회적 거리두기
현대의학이 이 땅에 들어오기 전에는 전염병 예방은 물론이고, 치료하는 것도 버거웠다. 그렇기에 특별한 예방법이라기보단 병으로부터의 차단, 병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정도의 담론들이 많다. ‘면역免疫’이란 용어도 역병疫病, 즉 전염병을 이긴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의 3대 전염병으로 꼽을 수 있는 홍역, 콜레라, 천연두는 남녀노소, 빈부를 막론하고 조선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평안도에서 홍역紅疫으로 사망死亡한 사람이 전후로 모두 1만 수천 명이라고 장문狀聞하였는데, 경외京外가 대략 같았으니, 전에 없던 재려災沴ㆍ재해와 돌림병라고 할 만하다.” – 숙종실록 45권, 숙종 33년 4월 26일

처음 조선에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는 병의 정체를 알 수 없었기에 요괴의 장난 혹은 질병이라 여겨 ‘괴질怪疾’이라고 불렀다. 원인도 알 수 없는 병이 통증의 정도도 심해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것처럼 아프다고 하여 ‘호열자虎列刺’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말이 있었던 천연두는 전세계적으로 3억 명 이상의 인구가 희생됐다. 현대의학에서도 다루기 어려운 전염병을 과거 조선에선 어떻게 대처했을까.

조선왕조실록에는 활인서活人署 1)를 살펴보면 의료시설이 많지도 않고 궁핍한 시절을 보낸 조선시대에는 다소 재력이 있는 양반들이 감염병 환자들을 집에서 격리하기도 했다. 또한, 출막出幕이란 임시 시설을 성 밖에 두고 감염병 환자를 격리해 돌봤다는 기록이 있다. 최대한 감염자와 비감염자를 격리해 병으로부터의 감염을 막으려는 노력으로 보여진다. 현대의 음압병동과 같이 병원균의 차단을 완벽하게 차단하진 못했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의 뿌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알 수 없는 질병을 이겨낼 수 있는 힘, 면역력
코로나19가 전세계인을 공포로 몰아넣은 가장 큰 이유는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치료가 어렵다는 데서 온다. 비단 코로나19가 인류에 찾아온 첫번째 절망은 아니었다. 지금은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는 질병들도 과거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다만, 원인과 예방책을 알 수 없어도 과거의 조상들이 수차례의 전염병을 겪어온 결과 아주 희망적인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백신이 없어도 병마를 이겨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병을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 우리 선조들은 어떤 방법을 찾았을까.

간이벽온방 | 조선시대 | 20.3x32mm | 가천박물관

· 설날에 파, 마늘, 부추, 염교, 생강 등 다섯 가지 매운 음식을 먹어라.
· 동짓날 팥죽을 끓여 먹어라.
· 칠석날 모두가 모여 팥 14매씩을 먹어라.
· 배추를 잘게 썰어 술에 섞어 먹어라.
· 솔잎을 잘게 썰어 술에 섞어 먹어라.

1525년중종 20에 간행된 의서 <간이벽온방>2)에 나오는 이 전염병 예방법을 보면 옛 사람들은 붉거나 매운 음식이 체온을 올려줘 전염병 예방에 도움을 준다고 본 것으로 추측된다. 일반적으로 마늘은 항암효과가 뛰어나고, 부추와 파는 한의학에서 열이 많은 식품으로 허할 때 먹으면 기력증진에 좋다고 한다. 실제로 체온을 올려주는 음식들은 놀랍게도 면역력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일본의 종양내과 및 전염병 전문의 사이토 마사시는 “체온이 1℃ 낮아지면 면역력이 30% 감소한다”고 말한다. 정상 체온보다 낮은 사람에게 세균이나 유해물질이 몸 안으로 들어오면 이를 물리치는 발열작용이 충분히 일어나지 않아 병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다.

원인조차 알 수 없던 공포를 지우는 것
14세기 흑사병림프절 페스트은 박테리아성 질병이었다. 지금은 항생제가 있어 흑사병 같은 전염병에 어렵지 않게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근대 세균학의 개념과 이론이 없었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죽는 역병은 당대 사람들에겐 그저 초월적 존재의 저주 같은 무서운 비극이었을 것이다. 흑사병 창궐 당시, 부족한 의료시설과 의료지식으로 인한 피해가 컸겠지만, 잘못된 정보가 더 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새의 부리 모양을 한 마스크를 쓴 ‘흑사병 의사Plague doctor’들의 모습이다. 일설에 따르면 한때 사람들은 흑사병이 새에 의해 퍼졌다고 믿었고, 새의 부리 모양을 한 마스크를 착용해 환자의 질병을 옷으로 옮겨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러한 복장을 하고 치료했다고 한다.

흑사병 창궐 당시, 흑사병 의사(Plague doctor)들이 입고 다닌 복장

조선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간이벽온방에는 역병을 막는 방법으로 ‘새벽 닭이 울 때, 사해신의 이름을 21번 부르는 등의 주술적 방법론이 쓰여 있다. 현대의 사람들이 보기엔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어이없는 일이지만 당시로써는 설득력이 있었기에 벌어진 웃지 못할 해프닝이다. 하지만 과거 역병이 국가적 문제로 닥쳤을 때 잘못된 정보들과 판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학자들이 내놓은 대책을 보면, <진휼賑恤에 힘쓰고, 의원을 보내 구료求療하며, 국왕이 근신勤愼할 것> 등 지금의 시각에서 보아도 비교적 합리적이고 타당한 것들이 상당히 많다. 오히려 현대에서조차 잘 실천하지 못하는 선진적인 전염병 대책으로 볼 수 있다.

“성공이란 절대 실수를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 않는 것에 있다.” –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d Show(영국 극작가)

우리 인류는 어떠한 전염병이든 원인과 치료법은 알지 못해도 반복된 경험을 통해 어떤 선택이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과거에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성공적인 전염병 예방이란 것도 추론할 수 있다.

이제 세계는 B.C.와 A.C.로 나뉜다
“이제 세계는 B.C.Before Corona와 A.C.After Corona로 나뉜다”는 말은 팬데믹이 불러올 새로운 세계 질서의 상징적 표현이다. 코로나19 이후로 모든 일상이 달라졌다. 밀접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가 미덕이었던 과거와는 달리 비대면 거리두기가 사회적 관계의 표준이 됐다. 개인의 공간을 존중하는 것이 사랑과 배려의 모습이 된 것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인정해야 할 것이면 명백하게 인정해, 드디어 쓸데없는 두려움의 그림자를 쫓아버린 다음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전염병을 다룬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소설 <페스트La peste>에 나오는 문장이다. 인류가 현 시점에서 집중해야 할 것은 과거 인간은 수많은 전염병 앞에서 좌절했지만, 결국 극복했다는 사실이다. 잘못 알고 있던 것, 잘못 대처하고 있던 것, 잘못 행동하고 있던 것들을 명백하게 인정해 적절한 대책을 세우면 되는 것이다. 과거의 전염병 사례를 디딤돌 삼는다면 코로나19로 전세계에 드리워진 두려움의 그림자를 쫓아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조선 시대 도성내 병인을 구료하는 업무를 관장한 관서
2)1524년(중종 19) 평안도 지방에 여역(癘疫:유행성 열병)이 널리 퍼지자, 이듬해 의관(醫官) 박세거(朴世擧)·김순몽(金順蒙)·유영정(劉永貞) 등에게 명하여 그 치료법을 편찬하게 하였다. 병후(病候) · 약명(藥名) · 치법(治法) · 벽양(辟禳) 등을 간명하게 서술하고, 각 항목마다 한글로 주석을 붙였다.

참고자료
· <조선 전기 역병에 대한 민간의 대응, 1999, 권복규>
· <체온 1도가 내 몸을 살린다> 사이토 마사시
· <조선왕조실록> <간이벽온방>


글 | 최찬흠_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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