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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담아듣는 | 박물관 전시디자인팀

국립민속박물관 전시 디자이너들

현대 사회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상품의 가치를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때로는 상품 그 자체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디자인은 박물관에서도 그 영향력이 다르지 않다. 유물에 의미를 더하고 사람들과의 거리를 좁히는 전시디자인의 세계. 대한민국 박물관 디자인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는 주인공들을 만나 보았다.

국공립박물관 최초로 전문디자이너를 영입하다
국공립박물관에서 디자이너를 직접 채용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2003~2006년까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재임했던 김홍남 관장이 박물관에도 전문디자인을 담당하는 인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 직제를 만든 게 국공립박물관 최초의 일이었다니 그 짧은 역사가 꽤나 놀랍다. “그 이전에는 인하우스 디자이너 없이 외부 업체와 용역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 게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정규직으로 박물관에서 디자인 전공자를 뽑았다는 건 당시로는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어요. 밖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 중에서는 건축, 디자인 전공자가 박물관에서도 일할 수 있다며 놀라는 사람도 많았으니까요.” 최미옥 학예연구사와 유민지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초기에는 1~2명이 시작했던 디자인 업무였지만 지금 민속박물관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은 총 10명, 많을 때는 12명까지도 전시 디자인을 담당했었다. 전시운영과에 소속된 디자이너들과 어린이박물관과에 소속된 디자이너들이 있고, 그 안에서 다시 공간디자인, 그래픽디자인, 영상디자인 등 세부파트로 나누어진다. 그렇다면 박물관 내에서 가장 많은 인원수를 자랑하는 전시공간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전시는 박물관의 큰 축, 꽃이라고도 표현합니다. 박물관 내 디자이너의 역할은 전시의 전반적인 디자인을 총체적으로 담당한다고 보시면 돼요. 여기에는 박물관 내 상설전시부터 특별전시, 어린이박물관 전시 외에도 국내외 박물관과의 공동전시도 있고 해외박물관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한국실 전시나 해외에서 열리는 특별전시 등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외국에 직접 출장을 가고 현지 박물관이나 기관과 협업을 하면서 일을 하는 거죠.” 유민지 학예연구사가 전시디자인 업무 영역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해준다.

 

박물관 내에서 한 편의 전시가 열리기까지 디자이너들의 업무는 고민과 선택 그리고 집중의 연속이다. “전시는 기본적으로 종합예술의 영역이다”라고 운을 뗀 이유가 있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은 보통 비주얼 담당이라고 생각하지만 콘텐츠를 다뤄야 한다. 그래서 초반 기획부터 기획자들이 자료를 조사할 때 함께 전시 콘텐츠에 대한 학습을 하고, 유물에 대한 이해를 통해 디자인 콘셉트를 잡아 내용을 구상한다.
“전시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기획과 디자인이 공동으로 만들어 가는 거예요. 쉽게 생각하면 영화를 만들 때 원작을 각색해 시나리오와 대본을 만드는 것과 같은 개념이죠. 콘텐츠를 시각화·공간화 하는 것이 디자이너들의 역할입니다.”
최미옥 학예연구사가 귀에 쏙쏙 들어오게 알려주니 막연하게 느껴진 박물관 디자이너의 역할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민속박물관 전시에서는 유물 자체의 미적가치를 강조하기보다 유물이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해요.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안에 담긴 물건의 이야기는 무엇인지, 또는 유물 간의 관계나 맥락을 고려하여 보여주고자 하다 보니, 연출 중심의 디자인을 합니다. 미장센에 좀 더 신경을 쓰는 편이지요.”
이 같은 의도 속에서 당연한 말이지만, 박물관 디자이너들의 업무강도는 아주 세다. 전시를 개편하는 리노베이션 사업은 1년 이상을 준비하고, 특별전시는 3~6개월 정도 소요된다. 전시 오픈 한 달 전에는 전시戰時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관장이 우스갯소리로 “전시운영과는 불이 빨리 꺼지면 불안하고, 유물과학과는 불이 늦게까지 켜 있으면 불안하다”라고 했다니, 디자이너들에게 야근이 얼마나 일상화가 되어 있는지 능히 짐작이 가는 부분이다.

민속과 아이들을 잇는 체험형 어린이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내 디자이너들 중에서도 어린이박물관에 소속된 조민화 연구원과 강민승 연구원의 업무는 그 성격을 좀 달리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전시라는 점에서 일반 관람객들이 찾는 전시와는 다른 눈높이에서 기획하고 디자인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민속에 관련된 콘텐츠를 체험을 위주로 보여주려고 한다는 것이 다른 박물관과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대상으로도 하다 보니 컬러적인 부분이나 그래픽적인 캐릭터 부분에도 신경을 많이 씁니다. 회의를 할 때 그런 걸 가장 먼저 잡아가요.”
어린이박물관에서는 전시 반응이 좋은지 나쁜지 바로 알 수 있는 척도가 있다. 바로 두 연구원이 공구상자를 들고 현장에 많이 나가느냐, 적게 나가느냐이다.
“고장이 많이 나면 그 전시가 인기가 많다는 증거”라는 소리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린다.

독자적인 힘과 책임을 갖춘 디자인팀을 기대하다
적게는 3년, 많게는 15년까지 민속박물관에서 디자이너로 일해 온 이들은 일상이 전시 중展示와 戰時의 중의적 표현이라는 표현처럼 분주히 그러나 묵묵히 박물관에서의 업무에 임해 왔다. 그 시간들은 기쁨, 좌절, 보람, 희망, 기대가 다 녹아있는 여정이었다. 최상명 연구원은 전시공간에 구조가 올라갈 때, 벽이 설 때, 상상 속의 디자인이 실제로 구현될 때의 뿌듯함을 이야기했고 김혜정 연구원은 외국으로 여행을 가도 숙제처럼 박물관을 찾는다며 유물의 거치 방식이 궁금해 뒤로 돌아가 유심히 살피다가 박물관 경비에게서 수상한 사람이라는 의심을 사기도 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강진영 연구원은 외국에서 유물을 가져오는 경우 해당 유물에 대한 유지보수가 굉장히 중요하고 그 와중에도 유물을 효율적으로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무척 크다고 토로를 했다.
“보통 해외에서 유물이 들어올 때는 호송관이 함께 들어옵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때문에 호송관 없이 유물이 들어온 경우가 있었어요. 이는 우리 박물관이 해외에서 쌓아온 신뢰, 코로나19 방역으로 높아진 한국의 위상 덕분입니다.”

최초로 디자인 학예연구사를 직원으로 채용한 민속박물관은 수많은 박물관 디자이너들의 친정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에서 경력을 쌓고 이직한 경우가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민속박물관이 디자인을 잘한다’라는 평판을 받고 있는 것도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 올려온 경력과 이력, 수많은 노하우가 집결된 결과이다.
“전시는 경험 기반의 결과물을 만들어냅니다. 기획자들이 전시품을 큐레이션하고 관람자에게 어떠한 경험과 메시지를 제공할 것인가를 계획할 때 디자이너와의 협업 과정은 공간연출 결과에 대한 정확성과 창의성을 높여주게 됩니다. 박물관에 내부 디자이너가 꼭 필요한 이유이지요.” 비슷한 유물이지만 디자인으로 인해 전시가 전혀 다른 감각과 분위기를 갖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디자인이 가진 힘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은다.

민속박물관 디자이너들에게는 꿈이 있다. 김혜정 연구원, 김수연 연구원도 선배들의 바람에 같은 목소리를 낸다. 디자인의 중요성이 점점 중요해지는 현시대에 박물관 내 디자이너의 역량을 더욱 강화하고, 각 박물관 디자인팀들 간의 커뮤니티 활성화를 통해 대한민국 전시 디자인의 질이 한층 높아지길 기대해 본다.
디자인이 좋아 이곳에 모인 사람들, 공간디자인을 통해 유물과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고, P.CPost Corona시대를 맞아 새로운 디자인 접근법을 고민하는 사람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들이 있기에 우리나라가 전시디자인의 새로운 장이 열렸고 그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는 사실이다.


글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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