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단이 전하는

“‌목욕탕”, 따뜻한 이야기가 넘쳐 흐르는 공간

“사원에는 피부에 깃든 귀신을 물리치는 성수가 채워진 돌 상자가 있고, 상자 옆에는 ‘피부를 신령하게 가꿔주는’ 주술사가 있다. 그들은 피부에 깃든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신성한 장갑으로 피부를 문지른다.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지만, 사람들은 ‘시원하다’고 표현한다.” 성수로 채워진 돌 상자, ‘피부를 신령하게 가꿔주는’ 주술사, 신성한 장갑, ‘시원하다’….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이 ‘사원’은 어디일까요?

바로 목욕탕입니다. 뜨거운 물이 가득한 욕조, ‘세신사’라는 이름의 주술사, ‘이태리타월’과 때밀이. 대중목욕탕에 쉽게 접할 수 있는 모습들을 조금은 다르게 묘사한 것입니다. 목욕과 아주 밀접한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본 목욕탕은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낯설게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국립민속박물관의 목욕탕 연구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우리 생활과 정말 가깝지만, 지금까지 잘 알지 못했던 목욕탕의 흥미롭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가는 2년간의 조사·연구의 결과물은『목욕탕: 목욕에 대한 한국의 생활문화』(이하 『목욕탕』)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목욕과 그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목욕탕』 속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들어있을까요?

목욕탕, 언제 처음 생겼을까?
목욕탕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시작됩니다. 부력의 원리를 깨달은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치던 곳도, 여러 철학자들이 치열한 사상논쟁을 벌이던 곳도 공중목욕탕이었습니다. 그만큼 목욕탕은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한 공간이었던 곳이었고, 다양한 문화권으로 전파되어 터키의 하맘, 핀란드의 사우나, 일본의 센토銭湯와 같이 각자의 형태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터키의 하맘은 육아와 산후조리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핀란드의 사우나는 장례의 공간이 되기도 했으며, 인도에서의 목욕은 아주 신성한 의미를 갖는 등, 목욕과 목욕탕은 다양한 문화에 걸쳐 아주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목욕탕은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요? 조선시대까지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하는 것은 귀족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였습니다. 하지만, 대한제국 시절 전염병과 위생관리를 위해 백성들의 ‘목욕’은 국가적인 과제가 되었고, 이에 따라 ‘공중목욕탕’이라는 공간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후 1912년, 조선총독부가 ‘탕옥영업취체규칙’이라는 목욕탕 관련 법령을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2020년, 오늘의 목욕탕
『목욕탕』에서는 오랜 시간을 거쳐 지금까지도 목욕탕으로써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 서울 시내에서 목욕탕을 운영해온 대표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목욕탕의 역사를 엿보기도 하고, 다양한 사진들을 통해 정겨운 목욕탕의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제주도의 바닷물을 활용한 노천 목욕탕처럼 지역 색을 간직한 목욕탕이나 40년 이상 운영된 목욕탕 목록도 정리되어 있으니, 목욕탕의 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싶은 분들께는 훌륭한 지침서가 되지 않을까요?
『목욕탕』에서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목욕탕들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에 위치한 행화탕과 충북 청주에 위치한 학천탕은 목욕탕이었던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지금은 문화공간과 카페로 시민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목욕을 할 수는 없지만, 만남의 공간이 되어주었던 목욕탕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목욕탕 의자에 앉아, 바가지에 담겨 나오는 음료를 맛볼 수 있다는 목욕탕카페의 매력도 느낄 수 있답니다.

(좌) 행화탕 옛 모습 (우) 행화탕 전경


기술이 발전하면서, 목욕탕은 ‘욕실’의 형태로 집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현재 우리나라 주택 전체의 98% 이상이 목욕시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1) 그러다 보니, 공중목욕탕은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최근 20년 사이 3천개 이상이 문을 닫을 만큼 점차 자리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목욕탕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는 목욕탕과 함께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욕탕에 대해 연구하고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와 따뜻함이 가득한 목욕탕에서 피로를 풀고 여유를 즐기며, 목욕탕의 다양한 이야기를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1) 『목욕탕』에서는 공중목욕탕뿐만 아니라, 욕실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출처: 2015년 통계청 인구총조사


글_박진서 | 제9기 국립민속박물관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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