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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를 잡자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 쥐 퇴치 포스터에 자주 등장하던 문구다. 나이가 좀 있는 세대라면 쥐꼬리를 잘라 학교에 제출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들 것이다. 쥐꼬리를 내면 보상으로 연필 등 선물을 받았다. 집 주변에는 언제나 쥐약이 즐비했다. 오히려 쥐가 아닌 다른 동물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도 빈번했다. 필자는 어릴 때 손발톱을 자르면 꼭 휴지에 싸서 버렸다. 쥐가 내 손발톱을 먹고 나의 모습으로 변한다는 속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쥐는 우리에게 골칫거리였다.

곡식을 훔쳐 먹는 쥐
쥐잡기 운동이 그토록 극렬했던 이유는 식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곡식을 훔쳐 먹는 쥐는 박멸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도별로 쥐 할당량을 배정해 목표를 달성하게 했다. 정부에선 쥐잡기를 홍보하기 위해 학생들이 참여하는 표어와 포스터를 공모했다. ‘쥐 없는 명랑한 사회를 건설하자’는 웅변대회를 열기도 했다.

정부는 포스터 등을 만들어 쥐잡기 운동을 널리 알렸다.
정부는 포스터 등을 만들어 쥐잡기 운동을 널리 알렸다.
정부는 포스터 등을 만들어 쥐잡기 운동을 널리 알렸다.

1960년대에는 신문 지면에서 쥐약 광고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쥐와 고양이가 삽화로 자주 등장하며 쥐를 반드시 죽일 수 있다고 장담했다. 쥐약을 반드시 쥐가 먹을 것이며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 가서 내출혈로 죽을 거라는 광고였다. 혈액응고제의 효과다. 1963년 경남도에서 1인당 3마리 쥐잡기 운동의 결과 917만8,926마리를 퇴치했다는 신문 보도가 날 정도였다. 쥐꼬리로 어떻게 이 많은 숫자를 집계했는지 놀랍기만 하다. 저녁에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수백만 마리의 쥐들이 몰살당했다.
그러나 쥐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불과 지난해에도 서울식물원이 개관하면서 쥐떼로 몸살을 앓았다. 원래 논두렁이었던 터에 식물원이 자리잡으면서 겨울에도 날이 따뜻해 쥐들을 불러 모은 것이다. 또한 쥐가 좋아하는 나무와 열매들이 많아 더 없는 서식지가 되었다. 이 때문에 방역 업체들은 쥐들과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항상 무언가를 갉아야 하는 쥐의 운명
쥐는 생물학적 분류체계에 따르면 쥐목-쥐과에 해당한다. 쥐과에는 곰쥐, 생쥐와 집쥐인 시궁쥐가 있다. 시궁쥐는 몸무게가 300∼700g에 달한다. 쥐는 위턱과 아래턱에 각각 6개의 어금니를 지녔고, 앞니 4개는 평생 자라기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갉아야 하는 운명이다. ‘설치류齧齒類’의 ‘설치’는 이를 간다는 뜻이고, 쥐를 뜻하는 ‘rat’ 역시 무언가를 긁는다는 ‘scratch’에 어원을 두고 있다. 그래서 인간에게 계속 피해를 입힌다.

현재 쥐는 1,800여 종이 전 세계 포유류의 3분의 1인 약 100억 마리를 차지할 정도로 널리 퍼져있다. 쥐의 번식력은 곤충과 맞먹을 정도로 왕성하다. 쥐는 1회에 9마리, 1년에 최대 2,400마리까지 낳을 수 있다. 계속 쥐를 죽여도 쥐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쥐는 지름이 2cm도 안 되는 구멍에도 머리만 들이밀고 침입할 수 있다. 아무리 막아도 쥐는 어디든 침투할 수 있는 것이다.

쥐의 오줌은 렙토스피라증을 전염시키는 박테리아다. 렙토스피라증의 감염 증상은 감기 같은 발열, 출혈, 객혈 등 다양하다. 그래서 오염된 실개천 등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 1994년 강원도에서 21명이 이 질병에 걸렸다. 지금도 매년 약 50명 정도가 렙토스피라증에 걸린다. ‘농촌병’이라고도 불리는 렙토스피라증에 안 걸리려면 일할 때 고무장갑 같은 보호 장구로 피부를 보호해야 한다.
들쥐들은 유행성출혈열이나 쯔쯔가무시증 등을 불러오는 병균을 옮긴다. 1950년대 한국전쟁 때 38선 중부지역의 유엔군 3천 명이 ‘한국형 출혈열’로 불리는 유행성출혈열에 걸려 비상이 걸린 적이 있다. 한국에선 매해 약 400명의 유행성출혈열 환자가 발생한다. 쥐로 인해 발생하는 쯔쯔가무시증은 1986년 공식적으로 확인된 이후, 가을이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기침, 구토, 근육통 등을 동반하는 쯔쯔가무시증은 매해 5천 명 이상이 걸리고 있다. 쥐는 질병만 가져오는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전선을 끊어 피해를 입힌다.

전 국민이 쥐잡기 운동에 나서다
한국은 근현대를 거치며 경제 성장을 이뤘다. 그 가운데 깨끗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쥐 박멸을 슬로건으로 걸었다. 1970년 4월 18일자 <대한뉴스> ‘제772호-쥐를 잡자’ 편을 보면 당시 쥐가 7,200만 마리나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그때 그 시절엔 아예 농림부(농수산부) 차원에서 5월 15일 오후 8시를 ‘쥐 잡는 날’로 정해 전 국민이 쥐 퇴치에 앞장섰다. 20g짜리 진회색 가루 쥐약을 무료로 나눠주고 집집마다 쥐덫을 놓고 살충제를 뿌렸지만 쥐는 완벽히 박멸되지 않았다. 지금도 방제작업은 주기적으로 보건소 차원에서 실시한다.

쥐잡기 운동 당시 쥐는 의심과 경계심이 많은 동물로 묘사됐다. 특히 발에 스펀지 같은 게 있어 소리 없이 잘 다닌다고 특징을 알려줬다. 쥐는 2년 동안 새끼를 낳으며 3년 동안 살 수 있다. 새끼를 낳고 7일이 되면 다시 발정기가 온다. 교미 후 21일이 지나면 새끼를 낳고 새끼는 25일 후면 성인 쥐가 된다. 쥐로 인한 피해는 천정의 소음, 페스트 발진, 병원균으로 인한 천열과 살모넬라, 식중독 등이라며 음식물과 가재도구 등에도 피해를 준다고 설명했다. 아예 쥐잡기 사업 추진본부가 설치돼 쥐약 놓는 요령과 죽은 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물론 미끼를 사용하는 방법도 함께 말이다. 쥐는 그 당시 240억 원에 해당하는 쌀 240만 석을 먹어치웠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그때 쥐 4,200만 마리를 잡아 106만 석의 양곡 손실을 줄였다.

인간과 쥐, 쥐와 인간의 숙명
도시 속 인간 주변엔 가축 이외에 야생 동물들이 거의 없다. 야생 동물들은 이제 동물원에나 가야 볼 수 있다. 따라서 도시는 쥐의 입장에서 포식자로부터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쉼터인 셈이다. 쥐는 포유류로서 가장 작고 많은 개체 수를 자랑하지만 그만큼 포식자 역시 넓고 다양하게 존재한다. 쥐는 고양이나 독수리, 매, 뱀, 족제비 등 다른 포식자들에게 가장 좋은 먹잇감이다.
한국이 근현대를 이루고 도시를 확장해 나가면서 음식물 쓰레기가 늘어나는 한편 야생 동물들과 점점 접할 기회가 사라졌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원래 도시화 이전의 들판과 숲속 야생은 쥐들의 근거지였다. 개체 수가 많고 활동 반경이 넓으며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을 잘하는 쥐. 그래서 쥐는 자신의 포식자들을 피해 가장 안전하고 먹을 게 많은 인간의 주위를 맴돈다. 그러면서 쥐는 인간에게 질병을 옮기고 곡물을 탈취하며 전선과 가재도구를 갉아 놓는다. 그게 인간과 쥐, 쥐와 인간의 숙명이다.

* 이 글은 외부 필진이 작성하였으며 국립민속박물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_김재호 | 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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