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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담아 듣는 | 나왔다, 박물관 문화상품

실무자에게 듣는 문화상품 개발기

최근의 박물관은 단순히 옛것을 보여주는 공간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문화향유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특히 ‘쇼핑하러 박물관에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러 박물관이 선보이는 문화상품들이 대중 사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에 국립민속박물관(이하 민속박물관)도 지난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손잡고 본격적으로 문화상품을 개발해 관람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그동안 민속박물관이 문화상품을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박물관 1층 뮤지엄숍에서 문화상품들을 판매해 왔다. 다만 그 규모가 작을 뿐 아니라 민속박물관만의 상품이 놓여 있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선보인 문화상품들은 민속박물관 소장품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우리의 민속이 대중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민속박물관의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사실 민속박물관의 문화상품 개발은 늦은 감이 있다. 민속박물관은 매년 방문자 수가 200만 명에 달하는 대한민국 대표 박물관 중 하나다. 특히 외국인 방문객의 비중이 높아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하지만 ‘관광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기념품 구입’의 즐거움을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다양한 문화상품으로 민속박물관 방문을 주변에 자랑할 수 있게 됐다.
민속박물관 문화상품 개발 프로젝트를 기획한 김창호 학예연구사는 “이번 사업은 민속박물관의 성격을 보여주는 주요 소장품을 홍보하는 한편 관람객들이 가진 소장품에 대한 관심도에 부응하기 위한 시도”라면서 “민속박물관 소장품을 현대적 기법으로 재해석해 전통적 미감을 선보였다”고 전했다. 이번 문화상품은 ‘생업’, ‘수계도권’, ‘화조도’ 등을 모티브로 개발됐다. 새로 단장한 민속박물관 상설전시장의 테마인 ‘한국인의 하루’에 소개되는 유물과 이야기들을 위주로, 한국인의 삶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일상의 문화들을 오늘의 일상에 소개하기 위함이다. 이를 통해 농업이 국가 경제의 근간이었던 한국 전통사회에서 삶을 일구던 사계절의 도구들을 활용한 <생업도구, 농기구에 남은 삶의 지문>, 1853년 삼짇날음력 3월 3일 장안의 중인 30명이 남산 기슭에 모여 수계1)를 행한 후 열었던 시회詩會 장면을 담고 있는 ‘수계도권’을 활용한 <새봄을 맞는 선비들의 풍류, 수계도권>, 그리고 주거 공간이나 혼례 등의 의례 장소에 길상吉祥의 의미를 담은 그림을 두어 장식하는 풍습을 엿볼 수 있는 ‘화조도’를 활용한 <행복을 부르는 꽃과 새, 화조도> 등
세 가지 브랜드 상품이 탄생했다.

국립민속박물관 브랜드 문화상품, 수계도권 테마상품

이번 작업에는 경쟁력 있는 디자이너와 도예가 김남희, 목공예가 이예지, 유리공예가 박선민, 섬유 작가 엄윤나·이창숙 등 공예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과거부터 이어져 온 공예의 기법을 상품에 적용하기 위해 여러 공예가와 협력을 시도했다는 점이 다른 박물관 문화상품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국립민속박물관 브랜드 문화상품, 화조도 테마상품


단아하고 유려한 멋이 담긴 도자 작품을 선보이는 김남희 작가는 2016년 전통문화유산을 활용한 상품개발로 나온 화훼도 머그컵에 이어 이번에 새롭게 화조도 테마와 어우러지는 3가지 색상의 머그컵을 제작했다. 사유와 공감이 함축된 목공예품을 만드는 이예지 작가는 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3단 필통붓통을 모티브로 하는 모듈형 필통을 제작했다. 3개의 필통은 자석이 내장돼 있어 분리하거나 결합해 사용할 수 있다. 또 쓰임을 다한 유리병을 새롭고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일상 오브제로 재탄생시키는 대표적 업사이클링 작가인 박선민 유리공예가는 수계도권 테마의 문진文鎭과 화조도 테마의 한송이 화병을 만들었으며, 섬유 로프를 이용해 다양한 섬유 공예품을 만드는 엄윤나 작가는 작가만의 독창적인 로프 소잉 기법으로 경쾌하고 산뜻한 생업과 화조도 코스터 제품을 제작했다.

한편 이번 사업을 총괄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공예디자인융합팀 측은 3가지 브랜드 상품 중 가장 어렵던 주제이자 가장 만족스러운 문화상품으로 <생업도구, 농기구에 남은 삶의 지문>을 꼽았다. 이유는 ‘과거의 농경생활을 어떻게 도시 생활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가 고민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지원 공예디자인융합팀장은 “상상력을 보태어 각각의 도구로 밭도 갈고, 가을 타작도 하는 캐릭터와 계절별 전통 농기구를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해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떠올리게 하는 상상의 도구로 재탄생시킬 수 있었다”며 “구체적으로 학예사의 조언을 거쳐 계절별 유물 총 12가지를 선정하고, 해당 농기구를 사용하는 지난 일상의 모습들을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전했다. 또 <새봄을 맞는 선비들의 풍류, 수계도권>은 계절을 맞이하는 조상들의 취미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테마로, 시를 읊고 쓰는 풍경을 현재에 살리기 위해 문방사우 위주의 제품군으로 구성했다. <행복을 부르는 꽃과 새, 화조도>는 길상에 대한 염원을 표현하기 위해 주조색을 선정하고, 원화의 요소모란·원앙 등를 그래픽으로 재구성해 디자인한 것이 눈에 띈다. 특히 화조화를 새롭게 재해석해 그린 이창숙 작가의 드로잉을 적용한 가방과 수첩은 색다른 현대적 화조도 문화상품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하나같이 ‘대박’의 기운이 풍기는 상품들이다. 이어 그는 “이번 사업은 민속박물관이 가진 많은 콘텐츠 자산이 산업대중적 가치으로 변하는 사례를 보여준 것 같다”며 “이런 사례가 성공한다면 민간의 참여도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지원 팀장은 “문화상품의 개발과 보급은 국가가 지향하는 국민 삶의 질 향상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로서 문화향유를 시장을 통해 일상의 저변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사회 후생적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며 “다양하고 경쟁력 있는 문화상품은 문화향유의 질과 양을 개선할 뿐 아니라 연관 산업의 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이번 사업의 의미를 평가했다.

방대한 양의 문화유산을 보유한 민속박물관의 콘텐츠를 활용해 문화상품을 개발한다는 것은 ‘전통’이라는 콘텐츠의 발굴을 촉진하고 ‘신수요’를 창출할 가능성을 여는 일이다. 더욱이 디자인·패션·공예 등 다양한 분야로의 확장도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융복합이 화두인 지금, 민속박물관 문화상품이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1) 삼짇날 물가에서 제를 지내고 몸을 씻어 나쁜 기운을 털어버리던 세시풍속


글_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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