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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겨울 필수품과 함께하는 김겨울의 하루

하루해가 짧게 떴다 금세 몸을 감춘 깊은 겨울의 밤. 아랫목 장판이 거뭇하게 그을린 온돌방. 그 위에 밍크 담요를 덮고 앉아 아랫목 장판을 그을린 아궁이 불에 구운 군고구마를 호호 불며 장독대에 있던 살얼음 동동 뜬 동치미 국물을 함께 먹던 기억. 아직 생생하다. 1981년 태어난 김겨울의 생생한 어릴 적 기억. 이제 그 기억은 머지않아 민속박물관의 ‘겨울’ 특별전시의 한켠에 전시될지 모를 기억이 됐다. 이름은 김겨울, 좁은 한반도라지만 그 중에서도 따뜻한 남쪽에서 태어났다. 서울살이 15년째. 지하철의 인파도, 중앙차로 버스도, 다닥다닥 붙어 높이 솟은 오피스텔 마을도 이제 익숙해졌지만 좀처럼 겨울은 익숙하지 않다.

오전 7시
김겨울이 사는 원룸은 서울의 여느 원룸과 다름없다. 바쁘게 지어진 탓에 침대 옆 창문에서 불어오는 웃풍이 코를 시리게 한다. 침대 위에 그래서 또 다른 방을 만들었다. 매트리스 위에는 ‘온수 매트’를 깔고, 그 위에는 ‘방한 텐트’를 쳤다. 집에서 캠핑하는 기분이 든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김겨울은 코웃음을 친다. ‘추운 방에 안 살아본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지.’ 방한 텐트 지퍼를 열고 나오면 코끝이 시려 잠시 짜증이 난다. 곧장 두툼한 수면 양말을 신고 열기가 거의 없다시피 한 바닥에 발을 딛는다.

오전 7시30분
출근 태세를 갖춰야 한다. 오늘은 최고 기온이 영하권이란다. 우선 ‘발열 내의’는 필수다. 성능에 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꼭 성능이 아니더라도 한 겹 더 껴입었다는 것만으로 든든해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이런 날씨에 코트는 무리다. ‘얼죽코(얼어 죽어도 코트)’의 행렬에서 빠져나온 지는 3년째다. 3년 전 겨울, 무시무시한 추위였다. 당시 겨울 초입은 그런대로 견뎠지만 12월 중순 참을 수 없는 추위에 김겨울은 결국 샀다. ‘롱 패딩’을. ‘입는 이불’이라는 별명을 가진 옷이다. 옷맵시를 낼 욕심은 잠시 접어둬야 했다. 때가 타지 않는 검은 롱 패딩을 사 입고 출근하던 날, 출근길 지하철에서 본 검은 이불의 물결을 잊을 수 없다. ‘나도 어쩔 수 없군.’ 김겨울은 한숨을 쉬었지만, 포근한 이불을 덮은 채 영하의 거리를 걷는 게 나쁘지 않았다. ‘손난로’를 롱 패딩 주머니에 깊숙이 집어넣는다. 웬 손난로? 보조배터리 기능을 겸하는 손난로다. 장갑을 끼고도 시리기만 한 손끝을 녹이기에 이만한 게 없다. 조약돌 같이 생긴 작은 손난로 겸 보조배터리지만 제 몫을 톡톡히 한다.

오전 9시
출근한 사무실은 춥지 않다. 그러나 위 공기만 춥지 않다. 김겨울은 이름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손발이 차갑다. 장갑을 벗은 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손끝이 굳어가는 느낌이다. 수족냉증 회사원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김겨울과 같은 곤란을 겪던 회사 동료가 귀띔을 했다. “요즘 발 난로 독특한 게 나왔다잖아. 그리고 마우스나 키보드를 쓸 때도 불편하지 않은 발열 장갑도 나왔더라고.” 김겨울이 그냥 있을 리 없다. 바로 검색을 했다. ‘전기 발 난로 발열 매트’와 ‘USB 온열 장갑’이 나온다. 사무실 책상 아래 작은 스토브를 두었으나 사무 공간에서는 사용금지였는데, 발 난로 발열 매트는 열원이 드러나 있지 않고 전기요 같은 원리로 작동해 사무 공간에 안성맞춤이다. USB 온열 장갑은 손끝 방한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모양새다. 아쉬워하는 그 순간 김겨울의 눈에 들어온 방한용품 ‘이글루 마우스패드’. 마우스패드 위를 덮는 공간이 있고, 패드에 열선이 있어 USB를 꽂으면 따뜻해진다. 겨울 참 요란스럽게 난다는 주변 동료들의 눈길이 조금 따갑겠지만, 뭐 어쩌랴. 시린 손 때문에 동동거리는 것보다야 나은 일이니까! 김겨울은 당장 구매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이미 책상 위에는 머그잔을 항상 따뜻하게 유지해주는 ‘미니 USB 스토브’를 갖춘 상태다. 온도는 40~70도까지 조절할 수 있다. 그 위에 머그잔을 올려놓으면 따뜻한 기운이 지속된다. 따뜻한 물을 받으러 정수기까지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귀찮음도 덜어주고, 작은 가스레인지 모양의 스토브가 앙증맞아 볼 때마다 웃음이 난다.

오후 6
퇴근길의 추위는 피곤함이 더해져서인지 더욱 을씨년스럽다. 종일 어깨를 굽히고 앉아 일한 탓일까?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하고 싶지만, 집으로 가 저녁상을 차릴 기운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럴 땐 어린 시절 먹던 그 군고구마가 떠오른다. 드럼통을 개조해 군고구마를 만들어 파는 길거리 상점은 보기 드물다. 그런 김겨울이 몇 년 전부터 참새가 방앗간 지나듯, 퇴근길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편의점. 몇몇 편의점이 ‘군고구마’를 팔기 시작했다. 편의점 겨울철 먹거리로는 찐빵이 단연 대세였는데, 이제는 군고구마가 인기다. 퇴근을 조금이라도 늦게 하는 날이면 편의점 군고구마도 다 팔려나가 있기 일쑤다. 겨우 하나 남아있는 군고구마. 따뜻한 돌 위에 온기를 품고 있는 달큰한 군고구마를 사서 품에 안고 집으로 달리다시피 걷는다.

오후 10시
본격적으로 잘 준비에 들어가는 김겨울. 요즘 온수 매트는 빨래도 할 수 있게 나왔다. 출근 전 말끔하게 세탁해 널어둔 ‘온수 매트’를 다시 매트리스 위에 깔고 온도를 넉넉하게 올려뒀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담은 물주머니를 준비한다. 사람의 온기보다 따뜻한 ‘온수 팩’은 이제 김겨울이 가장 좋아하는 겨울 잠자리 방한용품이 됐다. 아침에 일어나도 따뜻한 온수 팩 덕에 냉기가 느껴져 깊은 잠에서 깨는 일은 없어졌다. 방한 텐트의 지퍼를 올리고, 온수 매트의 온도는 너무 높지 않게 설정해 놓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익숙해지지 않는 서울의 겨울을 또 하루 무사히 보낸다.

글 | 이정연(한겨레 ESC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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