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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빨간 내복에서 발열 내의까지

내복의 계절, 겨울이 왔다. 계절이 바뀌면 산과 들의 풍경이 달라지듯 사람들의 옷도 달라진다. 몸으로 추위를 느끼기도 전에 사람들의 두꺼운 외투를 통해 겨울이 왔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내복은 외부로 드러나는 옷이 아니고, 추위를 막기 위해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기에 겨울을 대표하는 의복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다 해도 내복은 가장 방한防寒 기능에 비중을 두고 있는 의복이라는 의미가 있다. 어찌 보면 이런 기능이야말로 우리가 내복을 가장 대표적인 겨울철 의복으로 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난방 기술 발전과 실내 생활 증가로 내복 착용 횟수는 과거보다 줄어들었다. 내복은 나이 많은 사람들만 입는다는 인식과 보온보다는 패션을 우선시하는 문화도 겨울철 내복 착용을 감소하게 했다. 하지만 최근 지구온난화로 인한 겨울 날씨의 변화무쌍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복의 기능성에 다시 주목하게 했고 ‘발열 내의’를 겨울철 히트 상품으로 만들었다. 이제 내복을 다시 바라봐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방한에 존재 의미를 두는 의복

내복은 엄밀히 따지면 보조적 성격을 가지는 기능적 의복이다. 다른 의복들과 달리 철저히 방한 기능에 존재 의미를 둔다. 그러나 인류가 언제부터 내복을 착용했는지는 불명확하다. 특별히 내복 기능이 있는 의복이 있었다기보다는 추위 정도에 따라 옷을 여러 겹 겹쳐 입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근현대 이전 시기에 내복을 착용했는지는 불명확하다. 고구려 고분 벽화를 통해 의복 안에 겹쳐 입은 옷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내의內衣와 내상內裳이라는 의복 명칭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착용하고 있는 형태의 내복을 사용했다기보다는 계절과 복식에 따라 여러 겹 겹쳐 입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르다. 면화가 대중화된 조선시대에 양반이나 부유한 사람들이 목화솜을 넣고 누빈 속저고리나 속바지를 착용했지만 현재와 같은 내복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재 우리가 착용하고 있는 형태의 내복이 등장한 것은 1960년대다. 그때는 우리나라 섬유산업이 해외 원조를 기반으로 한 면직물 중심의 산업 단계를 지나, 보다 저렴하지만 기능성이 뛰어난 합성 섬유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여러 기업들이 합성 섬유 공장을 세우고 생산과 수출에 집중했다. 이로 인해 시장에는 합성 섬유 원단과 의복이 쏟아져 나왔고, 나일론과 아크릴 등의 합성 섬유로 만든 의복이 대중화되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질기고 값싼 나일론 섬유와 보온성이 우수한 아크릴 섬유 등을 혼방해 만든 내복이 등장했다.

빨간 내복에 숨은 비밀

1960년대는 합성섬유의 대량 생산과 유통이라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면직물 등의 천연섬유와 나일론 등의 합성섬유를 활용한 내의류가 대중화되던 시기였다. 지역별로 유명한 내의류 생산기업과 상표가 있을 정도로 내의류 시장은 ‘춘추전국시대’를 이루었다. 서울에서는 평안섬유의 독립문표와 서울평창직유공업사의 무궁화표가 유명했다. 부산은 왕자표와 캉가루표, 대구는 지구표와 청포도 메리야스, 광주에서는 남영과 백마표가 대표적이었다.

섬유산업의 발전으로 인한 의생활 변화 속에서 내복은 우리의 겨울철 복식으로 서서히 자리매김했다. 합성섬유를 활용하는 것은 물론, 다른 섬유와의 혼방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다양하게 다가간 내복은 곧 겨울철마다 모든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1960~70년대에 서민들의 주택 난방시설은 열악한 편이라서 겨울철에 두툼한 내복은 필수품이었다. 그때의 내복은 주로 나일론과 아크릴 섬유를 혼방해 만들었다. 나일론 섬유의 질기고 탄력성이 있는 성질과 아크릴 섬유의 부드러운 촉감과 우수한 보온성이 내복 소재로 적합했기 때문이다.
당시 두툼하고 보온성이 좋은 내복은 귀한 대우를 받았다. 빨간 내복의 붉은색이 액을 쫓아내고 무병장수하게 한다는 속설이 있었기 때문에 어르신에게 드리는 최고의 선물로 꼽혔다.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꼭 선물로 드렸던 것이 ‘빨간 내복’일 정도였다. 지금도 내복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색상이 빨간색일 정도로 당시에 빨간 내복은 최고의 선물이자 내복의 상징과도 같았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빨간색이 내복의 대표적인 색상이 된 것은 염색기술의 한계 때문이었다. 1960년대에는 합성 섬유를 염색하는 기술이 부족했다. 그때까지 천연 섬유를 침염하던 방식으로는 합성 섬유의 색을 제대로 낼 수가 없었다. 여러 색을 시도했지만 얼룩이 생기거나 세탁 후 물 빠짐이 심했다. 하지만 빨간색은 문제없이 염색되었고 세탁해도 물 빠짐이 없었다. 빨간색이 내복을 대표하는 색깔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발열 내의, 내복의 지위를 복권하다

최근 국민들이 다시 내복을 즐겨 착용하게 된 데는 ‘발열 내의’가 크게 기여했다. 뛰어난 발열 효과를 보여주는 발열 내의는 이제 겨울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하나의 필수품이 되었다. 발열 내의는 기능성이 뛰어나지만 두껍지 않아 가볍게 착용할 수 있고 옷맵시를 내는 데 방해를 주지 않는 장점도 있다.

발열 내의 제조에 사용되는 합성 섬유 3총사. 레이온, 아크릴, 폴리에스테르(왼쪽부터).

발열 내의는 레이온, 아크릴, 폴리에스테르 등의 섬유 소재별 장점을 극대화한 결과물이다. 레이온은 촉감이 부드럽고 흡습성이 좋다. 이 레이온을 피부가 닿는 부분에 배합하면 피부에서 방출된 수증기를 흡수해 물을 만드는데, 이때 응축열이 발생하고 내부 온도가 높아진다. 레이온 바깥에 배합한 보온성이 우수한 아크릴 섬유는 이렇게 상승한 온도를 가둔다(응축열). 차갑게 식은 땀은 아크릴 섬유의 흡습성으로 인해 밖으로 배출되고, 가장 바깥쪽에 배합된 폴리에스테르로 인해 최종적으로 외부로 증발된다. 습기를 건조시키는 성질이 우수한 폴리에스테르 섬유의 특징을 활용한 것이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섬유의 소재별 특징을 잘 활용해 옷을 만들고 입어 왔다. 특히 기능성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내복의 경우 처음 등장할 때부터 보온 효과를 최대한 얻을 수 있는 섬유 소재를 활용했다. 그리고 지금도 방한 기능과 편의성이 보완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추위라는 외부 환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 이상, 내복은 우리와 계속해서 함께할 것이다.

* 이 글은 외부 필진이 작성하였으며 국립민속박물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_김철호 | 대구 섬유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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