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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비나이다 해신님께 비나이다

바다에는 불확실성이 상존한다. 인간은 풍어와 흉어를 예측하거나 제어하기 어렵다. 바다는 풍랑으로 인한 재해로 허무하게 죽음을 맞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닷사람들은 해상의 안전과 풍어를 기원하며 다양한 의례를 행하였다. 특히 해안지역은 무속의례가 발달하여 해역별로 다양한 무속문화를 전승해왔다. 서해, 동해, 남해, 제주도의 해역별 신앙과 무속의례를 살펴본다.

서해, 풍어기가 휘날리는 해신의 바다

서해안에서 마을굿이 펼쳐지는 장소에는 언제나 풍어기가 휘날린다. 마을굿을 전후하여 당과 가정집, 어선 곳곳에 봉기와 풍어기를 세워놓아 멀리서 보면 온 마을이 오색 깃발로 꽃을 피운 것처럼 보인다. 굿을 하기 위해 마을을 찾은 만신의 뒤를 제물과 풍어기 행렬이 따르고, 당 앞에 도달한 풍어기 기수들은 앞다투어 당으로 돌진한다. 제사를 주관하는 만신이 마을사람들과 뱃사람들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밤새워 굿을 진행한 후에 흰색 종이를 접은 길지를 풍어기에 매달아주면 풍어기 기수들은 또다시 배를 향해 내달린다. 마을굿 의례의 시작과 끝이 풍어기로 장식되는 것이다.

서해안의 마을굿에서 풍어기가 특징적인 것은 서해 해역이 전통적으로 바닷길과 어선어업이 발달한 곳이기 때문이다. 서해의 바닷길은 고대부터 중국 교역로로 활용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세곡선의 조운로로 이용되었으며 해역을 따라 고기잡이 어선이 이동하는 바닷길이었다. 이 중에서 해역을 이동하는 어선어업은 풍어기 문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인 조기가 봄철에 산란을 위해 서해로 북상하면 그 회유로를 따라 흑산도·위도·연평도 등지에 수천 척의 어선이 집결하는 어장이 형성되고, 집결지마다 파시波市가 형성되어 흥청거렸다. 서해안 곳곳에 정착해 있던 어민들은 배를 타고 조기떼를 따라 대규모 선단으로 이동하면서 해역 단위의 신앙과 의례를 형성하였다.

황해도부터 시작하여 경기·충청지역에는 ‘조기잡이의 신’으로 추앙되는 임경업 장군이 해안가의 대표적인 당신堂神으로 모셔져 있다. 전라도 칠산어장 권역에서는 개양할미를 비롯한 거대 여신이 모녀 관계를 형성한 채 해안가 곳곳에 좌정해 있다. 그래서 서해안의 당굿에서는 “돈 실러 가세/ 어여차 디여차 닻 감아 미고 연평바다로 돈 실러 가잔다/ 칠산 영산 다 벌어먹고 연평 바다로 돈 실러 간다네”라고 하는 배치기 소리가 울려 퍼지고, 만신도 조기잡이의 신으로 추앙되는 임경업 장군 깃발을 높이 세우고 행렬을 한다.

동해, 신인동락의 축제적 신명

동해안은 마을마다 골맥이신을 모시는 서낭당과 해신을 모시는 해신당이 마련되어 있고 매년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의례를 행한다. 동해안에서 특징적인 점은 매년 주민들이 행하는 마을 제사 외에 무속 집단을 초청하여 3년, 5년, 7년 단위로 별신굿을 벌이는 점이다. ‘별신’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해를 건너뛰어 규모가 큰 굿판을 벌이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매년 거행되는 마을 제사는 마을 주민이 스스로 제관이 되어 진행한다. 하지만 별신굿은 마을 제사에 더불어 무속집단이 1박 2일에서부터 길게는 일주일에 걸쳐 축제적 굿판을 펼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동해안 별신굿의 특징은 타악기를 연주하는 악사가 여러 명으로 구성되어있는 점과 각각의 절차마다 놀음굿이라 하여 유행가를 부르며 노는 굿판이 벌어지는 점이다. 무녀가 가운데서 무가를 가창하면 장구 1명, 징 1명, 바라 1명, 쇠 4~5명이 동시에 연주하기 때문에 귀청이 얼얼해진다. 이런 현란함이 동해안 굿을 상징하는 한 요소다. 그리고 굿의 절차마다 본굿을 마치고 놀음굿이라 하여 무녀들이 다양한 유행가를 부르며 주민들과 신명 난 굿판을 벌인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본굿보다 놀음굿을 더 길게 하는 경우가 많아 주민들이 무당과 함께 매번 신명을 풀어내도록 하는데, 이런 신명풀이가 ‘신인동락神人同樂’을 추구하는 굿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남해, 무주고혼을 위령하는 치유의 의례

남해는 섬이 많은 다도해 지역이다. 섬이 많아 통학선을 타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도 많고, 면사무소나 친척집에 가기 위해 나룻배를 이용하는 이들도 많다. 흔히 바다는 고기잡이나 물류의 이동공간으로 생각하지만 섬이 많은 다도해에서는 사소한 일로도 바닷길을 건너야만 했다. 그래서 날씨가 좋지 않음에도 피치 못하게 바닷길을 건너다 죽은 이들이 많은 지역이다. 이런 위험의 상존은 죽음이 윗대 조상에서부터 친구와 지인, 미래의 자손까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연대의식과 치유의 의례로 표출된다.

남해의 공동체 의례에서 특징적인 장면은 가정마다 들고 나오는 제사상에 있다. 대부분의 의례는 신을 위한 제사상 1개나 2~3개 정도에 그치는데, 남해의 공동체 의례는 집집마다 가지고 나온 제사상으로 행렬을 이룬다. 무속 의례도 각각의 신령을 위해 굿을 하다가 맨 마지막에는 가정마다 들고 나온 제사상 앞에서 의례를 행하고, 농악대도 대포수 등의 사제자를 앞세워 제사상을 돌며 의례를 행한다. 가정에서 가지고 온 제사상은 대개 조상을 위한 상인데, 먼 바다일수록 ‘바다에서 죽은 조상’이라거나 ‘무주고혼’이라는 관념이 강하게 나타난다. 개개인의 죽음은 가정 단위의 의례로 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위험이 상존하는 다도해에서는 개인의 죽음 또한 공동체적 연대와 치유 의례로 확장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제주, 영등신과 해녀의 바다

제주도는 한반도와 사뭇 다른 신앙과 의례를 전승하고 있다. 매년 음력 2월 초하루에 바다 멀리서 바람의 신 영등할머니가 내방하면 환영하는 영등환영제를 행하고, 또 음력 2월 보름에는 영등할머니를 보내는 영등송별제를 행한다. 제주도를 삼다도三多島라고 하여 돌·여자·바람이 많은 곳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바람의 신을 모시고 보내는 의례를 행한다. 그리고 제주도 여성을 상징하는 해녀들은 매년 날을 받아 ‘수굿’을 행한다. 마을의 해녀들이 무당인 심방을 초청하여 잠수 활동의 안전과 해산물의 풍어를 기원하는 것이다.

영등굿이나 수굿에서 특징적인 의례는 ‘씨드림’과 ‘씨점’이다. 씨드림은 굿의 말미에 해녀들이 좁씨를 바구니에 담아 해안가를 뛰어다니며 씨앗을 뿌리는 절차다. 좁씨가 해산물의 씨앗이 되어 바다가 풍요로워지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씨드림을 마치면 심방이 바닥에 씨앗을 뿌리며 점을 쳐서 바다 밑의 전복, 소라, 미역 등의 풍흉을 점친다. 해녀들의 활동은 자연산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이지만, 심성 깊은 곳에 해산물의 경작에 대한 관념과 기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글_송기태 |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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