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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한국인, 바다 너머 휴가를 떠나다

닫힌 마음으로부터 열린 마음, 열린 세계로 가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가 인간의 이동성mobility이다. 고도 산업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은 뜨거운 이동 욕망에 사로잡혀 세계의 지구촌화·글로벌화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한국인은 5천 년 역사상 전대미문의 문호개방을 맞아 자유롭게 국내로 해외로 여행하며 휴가 문화의 급진적인 변화를 만들고 있다.

해외여행 자유화는 그냥 된 것이 아니다. 쓰라린 진통 과정이 있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1970년대 종속적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 1980년 광주민중항쟁, 1987년 노동쟁의 폭발 등의 사건을 거치며 안으로는 민주화의 물결, 밖으로는 국제화의 거센 파도가 1989년 해외여행 완전 자유화로 이어진 것이다.

1989,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지다

1989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여권 발급에 연령 제한이 없어지고 한국인 누구든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관광 여권이 처음 생긴 1983년에는 여권 발급 연령을 50세 이상으로 제한했고 관광예치금 명목으로 2백만 원을 납입해야 했다.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시행되면서 한국인의 휴가 문화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른바 단체여행인 패키지여행을 시작으로 개별적인 자유여행과 배낭여행이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다. 1989년에는 내국인 출국자 수가 처음으로 1백만 명을 돌파했다. 90년대 초반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배낭여행 붐이 일어 유럽에서 3~4주 머물며 7~10개 나라를 여행하는 것이 ‘로망’으로 꼽히곤 했다.

1991년 이후 관광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1997년 12월 외환위기까지 맞게 되자 해외여행은 보신 관광, 사재기 관광 등과 함께 ‘외화 낭비의 주범’으로 몰렸다. 그러다 다시 경기가 살아나고 환율이 안정되면서 2005년에는 급기야 해외여행자가 1천만 명을 넘어서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필리핀 세부, 태국 푸켓, 인도네시아 발리 등지로 떠나 휴양을 즐기는 휴가 문화가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 중반 대기업 대부분이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면서 주말을 활용한 3040 직장인의 역내 관광이 본격화되었다.

2010년대, 새로운 휴가 문화의 발견

2010년 이후 해외여행 시장이 개별 자유여행 중심으로 급속히 개편되면서 2013년 해외여행자의 70퍼센트가 개별 자유여행을 즐기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개인의 여행이 실시간 중계되거나 에어비앤비 숙박이 확산되면서 이런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이제 인스타그램 사진 한 장으로부터 여행이 시작되고 주요 여행지 및 여정이 결정된다. 휴가 때 촬영한 다양한 느낌의 ‘감성 사진’은 지금 이 순간에도 SNS 채널에 실시간 업로드되고 있다.

21세기 휴가 문화의 한 형태로 공정여행이 있다. 현지인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현지인이 만든 물건을 정당한 대가를 주고 구입해 현지인에게 도움을 주는 일명 ‘착한 여행’이다. 저탄소 배출 생활화와 화석연료 소비 최소화, 쓰레기 배출 최소화로 지구 살리기에 동참하는 여행이다.

국내 등 멀지 않은 곳으로 떠나 고택이나 농가에서 농박農泊을 즐기며 빠른 길 말고 새로운 길을 찾아 기차, 자전거, 도보 여행에 나서는 슬로 투어리즘slow tourism도 주목받고 있다. 슬로시티와 리조트에서 한 달 살기, 인류의 뿌리를 체험할 수 있는 감자·고구마 캐기, 천렵, 사냥, 고구마 굽기, 장작 패기, 농·수·임산물 수확 체험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진 슬로 투어리즘은 느림/작음/단순함을 추구하는 서·소·단徐小單 여행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이제 한국인에게 휴가는 일상이다

한편으로 여름휴가에 꼭 여행을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떠나는 휴가’ 대신 ‘머무는 휴식’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최근의 호캉스, 맛캉스, 홈캉스, 북캉스 등의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이다.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가 시작된 지 30년이 지난 올해 내국인 출국자 수는 3천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제 한국인에게 휴가와 여행은 비수기와 성수기, 주중과 주말의 뚜렷한 구분도 없는 일상적인 삶의 한 양태가 되었다.
20세기 시대정신은 ‘바쁨’이었다. 백세시대를 맞은 21세기에는 ‘즐김’이 시대정신이다. 장시간 노동이라는 일 중독증의 피로 사회였던 한국 사회는 이제 일과 쉼의 균형이라는 ‘워라밸’, ‘소확행’을 권장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인의 휴가 역시 더 자주, 더 오래, 그리고 더 큰 의미를 가지며 진화하고 있다.

* 이 글은 외부 필진이 작성하였으며 국립민속박물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_손대현 | 한양대학교 관광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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