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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가족상 변화의 거울, 가족드라마

‘인구 감소와 고령화 그리고 비혼 가정과 사회적 가정.’ 최근 한국 사회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들이다. 신생아 출생 감소와 노년 인구의 증가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경제적 이유와 가부장제의 폐단을 견디지 못한 청년 세대의 결혼 기피 현상으로 비혼 가정과 대안적 의미의 사회적 가정이 확산되면서 전통적 의미의 가족이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3대 이상이 함께 모여 살던 대가족 시대가 막을 내리고 4인 가족 형태의 핵가족 시대가 시작된 지 반세기 만에 1인 가구 시대를 맞이했다.

텔레비전의 보급과 가족드라마의 등장

가족의 의미와 가치 변화는 일련의 가족드라마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어왔다. 1960년대 텔레비전 수상기 보급 확대와 함께 당대 가장 대중적이었던 라디오드라마의 뒤를 이어 등장한 텔레비전드라마는 산업화·근대화 시대의 가족 담론을 주도하면서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건전한 가정 문화 조성’을 목표로 한, 이른바 ‘홈드라마’가 대표적이었다. 한국전쟁의 비극 속에서 훼손된 가족의 가치를 회복하고 산업화와 근대화 시대의 역군을 양성해야 한다는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반영한 홈드라마는 197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던 재혼 가정 문제를 경쾌한 감각으로 다룬 「새엄마」(MBC, 1972.8~1973.12)와 대가족을 배경으로 갓 결혼한 막내 부부의 일상을 위트 있게 풀어낸 「신부일기」(MBC, 1975.6~1976.2)가 그렇다.

「새엄마」와 「신부일기」를 집필한 김수현 작가는 이후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변화하는 시대상을 예리한 감각으로 포착하면서도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담아내면서 가족드라마의 흐름을 주도하였다. 명랑과 코믹에 방점을 찍은 ‘홈드라마’라는 용어가 전통적 가족의 의미와 가치에 무게 중심을 둔 ‘가족드라마’로 진화하는 중심에 김수현 작가의 작품이 있었던 것이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집안에서 성장한 청춘남녀의 사랑과 결혼을 통해 부모 세대의 전통적 가치관과 자식 세대의 자유분방한 가치관을 조화시키면서 가족 관계의 변화를 담아낸 「사랑이 뭐길래」(MBC, 1991.11~1992.5), 전형적인 위계질서에서 벗어난 가정을 통해 개별 존재로서 가족의 의미를 성찰한 「목욕탕집 남자들」(KBS2, 1995~1996.9), 한없이 자상하고 부드러운 교감 선생님을 통해 이전의 권위적인 아버지와의 결별을 알린 「부모님 전상서」(KBS2, 2004.10~2005.6)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사회의 견고한 전통 가족 담론은 1990년대 말의 IMF 경제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급작스러운 국가 부도 사태에 직면하여 가족 해체 현상이 심화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한 복고풍의 가족드라마가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경향이 나타나기까지 했다. 21세기를 앞둔 시기에 1960년대를 배경으로 가족의 소중함과 경제위기 극복의 희망을 역설했던 「육남매」(MBC, 1998.2~1999.12)가 그랬다. 막내딸이 태어나기 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 대신 육남매를 데리고 세파를 헤쳐나가는 어머니의 사연이 경제위기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당시 상황과 맞물리면서 눈물샘을 자극했던 것이다.

가족드라마에 반영된 가족상의 변화

이처럼 가족드라마는 실제 현실과 달리 3대 심지어 4대가 함께 모여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대가족의 일상다반사를 통해 전통적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복원한다. 마치 해체된 가족을 복원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인 것 같아 가족드라마의 극적 상황이 다른 세상의 일처럼 보일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드라마가 과거에 함몰되어있는 것은 아니다. 김수현의 가족드라마가 그랬던 것처럼, 결혼과 출산에 대한 변화된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경향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보여주었던 「달동네」(KBS2, 1980.5~1981.12)와 「전원일기」(MBC, 1980.10~2002.12) 그리고 「한 지붕 세 가족」(MBC, 1986.11~1994.11) 같은 가족드라마가 사라지고 새롭게 가족 관계를 모색하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의 주말연속극들은 가족 관계의 변화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켜야 할 가족 담론을 주도하면서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가족드라마들이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KBS2, 2012.2~2012.9)은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전통적 의미의 시집 식구가 없는 고아를 이상형으로 꼽는 전문직 여성이 완벽한 조건의 외과 의사를 만나 결혼에 골인했다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시집살이에 직면하면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를 다룬다. 「내 딸 서영이」(KBS2, 2012.9~2013.3)는 가족 관계에서 존재감을 상실한 아버지를 통해 ‘가장’의 문제를 제기하고, 「가족끼리 왜 이래」(KBS2, 2014.8~2015.2)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자식들 뒷바라지에 여념이 없는 아버지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성찰한다.

그런가하면, 비슷한 시기에 방영되었던, 「부탁해요, 엄마」(KBS2, 2015.8~2016.2)나 「엄마」(MBC, 2015. 9~2016.2)처럼 ‘◯◯엄마’로 불리면서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던 어머니가 개별적인 존재로서 독립된 주체임을 일깨웠던 가족드라마도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이상적인 가족의 원형을 복원한 가족드라마로 주목받았다.

전통적 가족 이데올로기의 복원

혈연에 기초한 가족보다 물리적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면서 정서적 교감에 치중하는 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에도 불구하고 가족드라마는 여전히 전통적 의미의 가족 담론을 주도할 것이다. 가족 해체 현상이 심화될수록,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전통적 의미의 가족을 복원하고 싶은 것이 시청자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다섯 가족의 일상다반사를 풀어낸 「응답하라 1988」(tvN, 2015.11~2016.1)과 28년 만에 만난 아버지와 딸의 사연을 통해 핏줄은 결코 인위적으로 끊을 수 없는 가족의 존재 기반임을 역설한 「하나뿐인 내 편」(KBS2, 2018.9~2019.3)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이 방증이다.

가족드라마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 특히 자식에 대한 감정 표현이 서툴러 질경이처럼 거친 부성애의 진정성이나 가슴으로 낳아 기른 자식에 대한 모성애의 절절함을 극적으로 담아내면서 자식 세대와의 소통을 모색하는 방식으로 가족의 의미를 환기시키고,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유토피아로서의 가정을 복원시킨다. 하지만 문제는 실제 현실 세계에서 발생하는 가족 구성원 간의 갈등과 대립이 가족드라마에서처럼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핏줄 중심의 가족관에 변화가 일어나고, 가족 해체 현상이 심화될수록 가족드라마가 가족의 의미 성찰을 견인하는 기능을 수행하면서 시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다. 따라서 현실 세계의 문제를 극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가족드라마를 통해 상실된 가족애를 꿈꾸되, 그 안에 담길 수밖에 없는 전통적 의미의 가족 담론을 현재적 관점에서 성찰하면서 시청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 이 글은 외부 필진이 작성하였으며 국립민속박물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_윤석진 | 충남대 국문과 교수, 드라마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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