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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한·중·일 삼국의 부뚜막 엿보기

어느 집에나 부엌은 있지만 공간의 형태나 부엌을 이용하는 양상은 제각각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부뚜막이 있는 재래식 부엌을 경험했거나 현재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있지만, 대다수 젊은 세대들은 서구식 시스템 키친만을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역시 세대별, 지역별로 제각기 부엌에 대해 다양한 경험과 인식을 가지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에서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년간 진행되는 아시아 부엌 조사는 주거문화와 식문화가 얽혀 있는 복합적인 공간으로서 부엌과 부엌에 담긴 생활문화를 기록하고 있다. 그 일부로서 번쩍이는 스테인리스 싱크대와 가스레인지(혹은 전기레인지)가 놓인 부엌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조금 색다른 부엌과 부뚜막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하나, 사용료 걱정 없는 천연 조리기구

: 일본 가고시마 이부스키의 증기부뚜막, 스메スメ

일본의 남쪽에 위치한 이부스키시 우나기쵸는 기리시마 화산맥 위에 위치한 까닭에 지열地熱이 높아 온천수가 솟아오르고, 마을 곳곳에 유황 냄새와 함께 수증기가 땅에서 피어오른다. 이 마을 사람들은 이 수증기를 활용하여 조리를 할 수 있는 부뚜막인 스메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이 스메라는 특권(?)을 가진 것은 아니다. 현재 약 30가구 중에 반인 15가구 정도가 스메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자연 그대로이기 때문에 집집마다 나오는 수증기의 양이 다르고, 갑자기 수증기가 나오지 않게 되는 경우도 있다.

부뚜막이라 하면 땔감을 넣는 구멍인 아궁이가 있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이 연결되어야 하지만, 증기 부뚜막인 스메는 땅속에 관을 박고 그 위에 콘크리트로 된 부뚜막을 둔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다. (과거에는 돌을 쌓고 그 위에 진흙을 덧바르는 형태였다) 항시 수증기가 올라오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을 때는 덮개로 덮어두거나, 관을 끼워서 집 바깥쪽으로 증기를 빼내기도 한다.

 

가고시마 이부스키 우나기쵸 마을 전경
집 외부에 위치한 스메
스메를 사용하는 모습

스메를 이용한 조리방법은 간단하다. 평상시 덮어둔 덮개를 열고 음식물을 담은 채반을 스메 위에 얹는다. 그 후에 덮개(포대자루)를 덮고 기다린 후에 꺼내면 된다. 단점은 오로지 찜 요리만 할 수 있다는것이지만 계란, 고구마, 껍질콩 등 야채를 찌는 것뿐만 아니라, 약밥, 찰떡, 생선찜, 고기찜 등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다. 계란의 경우 약 6분이면 맛있게 익고, 고기찜의 경우 매우 부드러운 식감으로 조리가 된다. 스메를 직접 사용하는 사람들은 스메의 가장 큰 장점으로, 음식을 올려두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점을 꼽는다. 불을 이용한 조리가 아니라서 음식이 타는 일도 없기에 스메에 재료를 올려두고 목욕을 하러 가도 된다.

열기가 있는 뜨끈한 바닥을 찾아 식재료를 말릴 수도 있는 이 놀라운 마을에도 큰 단점은 있는데, 지열 때문에 가전제품이 잘 망가진다는 것이다. 한 제보자의 경우 이 마을에 살면서 지금까지 냉장고를 10번 정도 바꾸었다. 하지만 그것을 감수할 만큼 스메가 없는 삶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 조리와 난방을 동시에

: 중국 산시성 뤼량시 야오동의 자오

중국의 서북부 지역인 뤼량시 류린현 일대에는 야오동窯洞이라 불리는 독특한 주거형태가 있다. 야오동의 내부에는 대개 침대식 구들인 캉과, 그것과 연결된 자오라고 부르는 부뚜막이 놓여 있다. 야오동은 동굴이라는 이름처럼 집의 내부 공간이 구분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공간이 침실이자, 거실이자 부엌이 된다. 처음 보는 이에게는 침대의 바로 옆에서 조리를 한다는 점이 생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오에 연료(나무 또는 석탄)를 넣으면, 캉까지 덥혀짐으로써 연료를 절약하며 조리와 난방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 물론 여름철에는 조리를 위해 불을 피우면 집 안까지 더워지기 때문에 집 밖에 따로 자오를 설치하여 이용하기도 하고, 소량의 요리를 할 때는 전기레인지 등 전기제품을 병행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한 제보자의 경우는 연기를 집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자오 위에 전기로 된 환기 팬(후드)를 설치하였다. 재래식 부뚜막인 자오 위에 최신식 전기 후드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은 색다르면서도 재미있다.

야오동의 내부 모습
자오에 불을 피우는 모습 (위에 후드가 설치되어 있다)
춘절에 조왕신 앞에 제물을 올린 모습

또한 자오의 위나 주변에는 부뚜막신(조왕)인 자오왕灶王이 모셔져 있다. 이름은 부뚜막의 신이라는 뜻이지만 집안 전체와 가족을 보살피는 신으로 인식된다. 류린현 지역에서 조왕신은 부부로 인식되며, 매년 설날(춘절)에 조왕 그림을 사서 붙이고 제물을 올린다.

, 전통가옥에도 집 안에 부엌이 있다

: 안동 하회마을 겹집

흔히 전통가옥의 부엌은 집의 내부 공간이면서도, 방과는 출입구를 따로 하는 외부적인 공간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강원도에서부터 경상북도 등 추운 지역에서 나타나는 겹집은 집 내부에 작은 마당과 같은 봉당이라는 흙바닥이 있고 그 옆에 부뚜막을 둔다.

안동 하회마을에 위치한 겹집에 사는 제보자는 겹집이 홑집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아늑한 맛이 있다고 말한다. 다만 이러한 겹집은 추위를 막기 위한 구조이다 보니 아무래도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대문에도 그을음이 묻고 옷에도 그을음 내가 났다.

아궁이에 불을 지필 때는 부지깽이로 땔감을 밀어 넣고 위치를 조정해야 하는데, 그 모습을 빗댄 ‘부지깽이 운종수(운전수)’라는 말이 있었다. 부지깽이 운전수이던 제보자는 입식 부엌인 신식 주방을 따로 만들었고 그것을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꼽는다. 이제는 조리와 난방 모두 기계를 이용하지만 그때는 ‘불만 안 때도 살 것 같았다’고 느낄 정도로 부뚜막 앞에서의 고단한 기억은 강하게 남아있다.

부뚜막은 과거에나 사용하던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시대에도 다양한 부뚜막들은 존재하고, 또 사용되고 있다. 부뚜막을 비롯한 부엌의 다양한 모습을 현 시점에서 조사하고 기록하는 일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읽는 하나의 중요한 방법일 것이다.

글_이주홍(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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