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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발견

손가락 아픈 데를 가리어주는 그대

규중칠우閨中七友라 했다. 안채 아낙들에게 일곱이나 되는 벗이 있다는, 꽤나 낭만적인 비유였다. 심심할 때 이야기나 나누는 사이면 좋으련만 반짇고리 빼곡하게 채운 이 일곱 가지 물건은 저마다 역할을 가진, 그러니까 모두 옷 짓는 여공女功을 위해 필요한 도구들이었다.

옷 짓자고 들면 필요한 게 어디 한 두 가지일까. 입을 사람 치수에 맞춰 옷감부터 크기대로 잘라야 할 테니 자와 가위는 기본이요. 자른 옷감을 제대로 맞춰 잇자면 바늘과 실은 필수. 게다가 만든 옷의 주름을 펴고 꼼꼼히 형태를 잡기 위해서는 불에 적당히 달궈 쓸 인두와 다리미도 빠져서는 안 될 터였다. 가만, 분명 일곱 벗이라고 했거늘 손으로 꼽은 것은 여섯 가지에 불과하지 않은가. 빠져도 티는 나지 않으나 막상 바느질을 시작하면 절실해지는 마지막 도구, 그 속내는 이러했다.

 

반짇고리

 

노소 없이 손가락 아픈 데를 눈치 있게 가리어 무슨 일이든지 쉬 이뤄내게
하니 내 공도 없다 못할 것이오, 나는 매양 세요의 귀에 찔리었으되 낯가죽이
두꺼워 견딜 만하고 아무 말도 아니 하노라. 쉬운 일과 어려운 일 없이 내 힘이
전장에 방패 앞서듯 하나니, 이 늙은이 없고는 되지 못하리라.”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 중에서

 

매양 세요의 귀에 찔리었으되

“이 늙은이가 없고는 되지 못한다”며 당당히 자신의 역할을 내세운 ‘감투할미’. 골무의 쓰임새는 전적으로 바느질하는 사람의 손가락을 보호하는 데 있다. 골무는 다른 여섯 도구와 달리 바느질에는 어떠한 직접적인 역할도 하지 않는다. 골무의 자리는 바늘 쥔 손가락 중에서도 바늘귀 밀기를 도맡아 하는 검지의 첫 마디다. 실 꿴 바늘귀를 반복해서, 그리고 힘주어 미는 손끝에 맺히는 압력은 결코 작지 않기 때문이다.

 

색깔과 무늬가 다양한 골무

 

명주처럼 부드럽고 매끈한 옷감을 다룰 때보다 무명처럼 두껍고 마찰력이 큰 감을 꿰맬 때 골무는 더욱 절실했다. 고작 바늘 하나 밀어 넣고 빼는 데 그리 큰 힘이 드나, 싶겠지만 그건 과거의 바늘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바느질 하는 아낙이 바늘을 머리에다 쓱쓱 문지르는 것은 매끈한 듯 보이지만 실은 거칠게 연마된 바늘에 일종의 윤활유를 묻히는 습관이자 요령이었다.

 

전장에 방패 앞서듯 하나니

바느질을 시작한 때로부터 끝낼 때까지 항상 세요의 귀에 찔렸다던 감투할미의 하소연에서도 드러나듯 골무는 그 압력을 이기고 찔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한 두께를 지녀야 했다. 여러 겹 붙여 만든 딱딱한 종이심 위에 자투리 옷감을 올려 감싸 붙이고 그도 모자라다 싶을 때는 바늘귀를 힘 있게 밀어야 하는 정면에 여러 겹의 실을 소용돌이 모양으로 말아 징겄다. 골무 앞뒤판을 잇기 위해 가장자리 이음매를 X자 모양 사뜨기(귀갑치기)로 마무리한 것도 모두 작지만 단단해야 하는 골무의 내구성을 갖추는 방법이었다.

 

 

여러분 가정에 혹 해지여 떨어진 가죽장갑이 있으십니까. 이런 것을
그 쓰이는 데가 얼른 생각나지 않아 폐물로 어느 구석에 처박아 두시기도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골무를 만들어 쓰시면 헝겊으로 만든
골무 몇 곱이나 오래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만들기도 퍽 쉬울 것입니다.”
「경향신문」, 1948년 11월 6일

 

1940년대, 한 신문에는 골무를 몇 곱 오래 쓰기 위해 헌 가죽장갑을 활용하라는 생활의 지혜가 실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골무는 제법 쓰임새 깊은 도구로 여겨졌던 게 사실. 손으로 옷 짓고 기워 입는 일이 일상이었으니까.

 

골무상자

 

은 골무다

골무는 한자로 ‘답’이라 쓴다. 손가락에 꿰는 것이라 ‘지관指貫’이라고도 부른다. ‘골모’라고 쓰다가 우리에게 익숙한 골무라 하게 된 것도 18세기에 와서야 나타난 변화다. 색색 조각 옷감에 석류와 복숭아, 영지를 수놓아 다산과 수복을 앙증맞게 기원했던, 게다가 손가락을 지키는 꽤나 믿음직한 장치였던 골무는 본연의 역할을 과감히 놓아버렸다. 실용적 도구의 틀을 벗어나 공예품으로 자리를 옮겨 앉은 지 오래라는 뜻이다. 옷 짓기는 고사하고 떨어진 단추 하나 직접 다는 일조차 드문 지금, 구태여 반짇고리 속 골무의 기능과 실용을 논한대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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