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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발견

가지런하게 곱게 깔끔하게

빗. 빗질에 쓰는 도구이다. 말에서 말로 건너가 보자. 머리카락이나 털을 빗으로 빗는 일을 ‘빗질’이라고 한다. 머리털을 빗질하면 머리털에 감긴 지저분한 것은 떨어져 나가고, 엉킨 머리카락이 가지런히 정리된다. 머리털에 윤기를 더한다. 여기 잇닿은 동사가 ‘빗다’이다. 한국어의 명사든 동사든 뜻을 가진 가장 작은 말은 ‘빗’이다.

 

빗질은 어느 지역, 어느 민족에게나 가장 기본적이며 기초적인 몸치장이다. 산발散髮을 한 채로 벌거벗고 집 밖으로 나서는 사람은 없다. 빗질을 해 두발을 가지런히 하는 것이 복식 갖추기의 출발이다. 그러고서야 외출 준비가 된다. 조금 과장하면, 빗질은 사회적 관계의 시작이다. 산발은 혼란, 전쟁, 피난 등으로 망가진 일상을 은유하기도 한다. 거꾸로 전통 사회에서 상중에는 빗질을 하지 않았다. 빗질을 한 보통 사람의 단정한 두발은 평화로운 일상을 조용히, 은은히 드러낸다.

 

대모참빗_대나무를 쪼개 빗살을 삼고 이를 대모로 모두어 빗 형태를 갖추었다

 

아득한 예부터 사람은 나무, 대나무, 동물의 뼈 또는 뿔, 금속 등 당장 내 손에 잡히는 거의 모든 소재로 빗을 만들었다. 권력 있는 자는 금은에 온갖 장식을 아로새긴 빗도 썼다. 바다거북의 일종인 대모玳瑁의 껍데기로 만든 대모빗은, 빗질을 넘어 호화로운 두발 장신구 노릇을 하기도 했다. 신라 귀족, 고려 귀족이 장신구로 대모빗을 많이 썼다. 그러나 합성수지가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널리 쓰인 빗의 소재는 나무, 그 중에서도 대나무이다. 소재는 간단하지만 쓰임새별로 모양별로 오늘만큼이나 다양한 빗이 있었다.

 

얼레빗은 단단한 나무로 만든다. 느티나무 따위가 마침맞다. 빗살을 쥔 등마루는 각지거나 반달 모양이다. 특히 등마루가 반달모양이면 한자로 ‘월소月梳’라고 했다. 발이 굵고 성근 얼레빗으로는 먼저 대충 머리털을 골랐다. 이보다 빗살이 곱고 촘촘하며 둘레도 작은 빗이 면빗이다. 얼레빗질을 마치고는 면빗질과 참빗질을 해 한 올 흐트러짐 없이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살쩍뺨 위나 귀밑에 난 가늘고 고운 머리털을 다듬을 때도 면빗을 썼다. 남성이 맵시 나게 상투를 틀자고 해도 면빗이 필요하다. 머리털에서 살쩍까지 말끔하게 정리되고 나서야 망건 맵시도, 탕건 맵시도, 갓 맵시도, 이런저런 건의 맵시도 산다. 오늘날 합성수지 소재에 손잡이 단 성근 빗을 ‘도끼빗’이라고 하는데 이 또한 얼레빗의 일종이라고 할 만하다.

 

음양소

얼레빗

 

음양소陰陽梳는 일자로 된 등마루 한쪽의 빗살은 성글고 다른 한쪽은 촘촘한 빗이다. 막 빗기와 살살 빗기 양쪽에 다 쓰는 빗이니 음과 양을 가져다 붙인 작명이 그럴듯하다. 이 형태는 오늘날 신사용, 휴대용, 여행용 빗에 이어지고 있다.

 

한국인에게 그 이름만은 익숙한 참빗은 대쪽을 잘게 쪼개 빗살을 가늘디가늘고 촘촘하게 낸 대빗이다. 한자로는 ‘진소眞梳’라고 할 정도로 빗 중의 빗 노릇을 했다. 참빗 하나에 빗살은 백 개나 든다. 크기도 다양해서 가장 큰 대소에서 중소, 어중소, 그리고 가장 작은 밀소에 이르는 구분이 있다. 이 가운데 중소가 제일 널리 쓰였을 것이다.

 

참빗질은 여느 빗질 말고도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머릿기름을 바를 때 손으로 기름칠을 하다 보면 머리털 겉면에만 기름을 묻히다 끝난다. 이때 참빗에 기름을 묻혀 빗질을 하면 기름이 머리카락 깊숙이 한 올 한 올 골고루 먹는다. 전에는 머릿기름용 기름으로는 동백기름을 많이 썼다. 솜을 덧대 참빗질을 하기도 했다. 이러면 머리털의 때가 더 잘 빠진다. 머리털과 두피의 건강을 돌보고, 지저분한 것을 더 잘 떨기 위해 들기름을 썼다. 여느 빗질, 솜 둔 빗질, 동백기름 먹인 빗질, 들기름 먹인 빗질 등 참빗은 참 여러 쓰임을 감당한 빗이다.

 

참빗

남자용 빗접

 

옛날에는 남녀노소 없이 평생 긴 두발을 간직했다. 얼레빗질 다음에는 다양한 참빗질이 따르고, 면빗이 정리와 치장의 마무리를 맡았다. 남성의 경우에는 상투 틀 때에는 머리털을 정리하는 면빗 모양의 상투빗을 따로 쓰기도 했다. 빗의 다양성, 빗질의 섬세함과 빗질에 들이는 공력은 오늘날보다 더했다. 미용실과 이발소에 두발의 일상을 ‘외주’ ‘위탁’ 하기 이전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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