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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단상

눈이 즐거운 오디오를 찾아서

미술가 김희수는 십여 년 전 미국의 한적한 마을에서 오래된 전축을 발견했을 때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동그란 구멍은 스피커였고, 서랍장에는 미국 가구 브랜드 허먼 밀러Herman Miller의 상표가 보였다. 디자이너 조지 넬슨George Nelson이 디자인한 전축이라는 것을 깨달은 그는 그걸 어렵게 집으로 가지고 왔다. 김희수는 이후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만든 오디오와 가구를 수집하기 시작했고, 자신만의 공간을 채워나갔다.

 

김희수 작가가 ‘취미공간醉美空間’이라고 이름 붙인 자신만의 공간은 말 그대로 ‘아름다움에 취하는 공간’이다. 그는 낡은 장소를 빌려 몇 달 동안 혼자 공사를 해 이곳을 완성하고 뉴욕과 서울에서 수집한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차곡차곡 채워나갔다. 취미공간을 위해 그가 직접 만든 가구와 조명도 1950년대~60년대 ‘미드 센추리Mid Century’ 디자인 거장들의 오디오와 잘 어울린다.

 

 

미드 센추리 오디오에 마음을 빼앗기다

“제가 관심을 갖고 수집하는 미드 센추리 시대가 오디오의 황금기였지요. 오디오 회사들의 전성기였으며, 가구 회사들도 유명 디자이너들을 오디오 디자인에 대거 투입했던 매력적인 시대였습니다.”

미드 센추리에는 오디오 디자이너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당대 최고 디자이너들이 오디오 디자인에 뛰어들었다. 그렇기에 성능이 뛰어나기보다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오디오가 지금까지 많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르 코르뷔지에도 오디오와 가구를 만들었고, 미국의 건축가 조지 넬슨도 모던한 오디오와 가구를 많이 디자인했다. 김희수 작가 역시 건축 이미지로 작품을 만들었고, 건축가가 만든 디자인 제품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원래 건축에 관심이 컸습니다. 제 초기 작업으로 잡지와 광고의 건축 이미지를 오려 가상 도시를 만든 「중흥기(Glory Days)」시리즈가 있지요. 뉴욕 유학 시절에 낡은 거대 도시에 매료되어 인간이 만든 구조물의 군집으로 이뤄진 도시를 표현했습니다.”

 

미드 센추리 시대 오디오들 중에서 그가 특히 좋아하는 것은 미국 패션 디자이너 베라 뉴먼이 소장했던 캐나다 브랜드 클레어턴의 ‘G2’ 제품이다. 1966년에 한정판으로 390대만 만들어져 1960년대 디자인 아이콘으로 큰 인기를 누린 이 오디오는 영화 <졸업>에도 등장했다. 그는 이 제품을 경매에서 낙찰 받아 소장하고 있다.

 

클레어턴사의 G2_김희수 소장

 

나는 소리보다 디자인을 찾는 탐미주의자

“저는 브랜드가 아닌 디자이너의 작품에 관심이 커요. 오디오의 경우에도 음향이 아닌 디자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요. 하루 종일 음악을 듣지만 특정 음악을 편애한다든지 완벽한 오디오 음향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는 설사 오디오가 고장 나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해도 디자인이 특별하다면 수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집가다. 질주할 수 없더라도 빈티지 자동차의 존재가 매력적이라는 것을 상상해본다면 그의 지론에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디오와 가구에 대한 관심은 그가 미술가로서 지닌 감각과 관련이 있다. 아름다운 것을 갖고 싶은 소유욕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그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며 운송 부담 때문에 많은 가구를 정리했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의 눈에는 아름다움이 계속 보이는 법. 그의 오디오, 가구 수집은 서울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몇 년 전 청계천 빈티지 가게에서 디자이너 디터 람스의 오디오를 발견하고 저렴한 가격에 사온 적이 있어요. 독일의 산업 디자이너 디터 람스는 건축사무소에 근무하다 브라운Braun에 입사해 오디오, 라이터, 계산기, 시계, TV 등 500여개의 제품을 디자인했지요.”
김희수 작가는 디터 람스의 미니멀 디자인과 실용성, 단순함, 견고함을 높이 평가한다.

 

김희수의 취미공간에는 디터 람스의 오디오와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아이팟이 함께 있다

 

디자인 오디오를 수집하려면 디자인 역사 공부가 필수

최근 명작 디자인 오디오의 가격이 크게 올라 투자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수집가 입장에서 그것은 구매 부담이 커졌다는 얘기가 된다. 주로 메이저 경매 회사인 필립스, 본햄에서 오디오를 구입했던 그는 요즘 높은 가격 때문에 예전보다 신중하게 수집하게 된다고 말한다.
“오디오와 가구 수집에 관심이 있다면 디자인 역사 공부가 꼭 필요합니다. 미드 센추리, 아르누보 등 자기가 관심을 가진 시대의 디자인을 중심으로 공부하면 후회 없는 수집을 할 수 있지요.”

 

오디오는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다. 그래서 초보 컬렉터라면 어디서 오디오를 보관할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옛날 기계는 내구성이 좋지만 부품의 발열이 심하기 때문에 열화 되기 쉽다. 김 작가는 미리 기본 부품을 구입해두었으나 만약 고치지 못한다고 해도 디자인을 감상하면 된다고 낙관하고 있다.

 

 

김희수는 자신의 취미공간에서 빛났던 시절의 디자이너와 소통하며 신작을 구상한다

 

 

미술가, 미드 센추리 오디오 전시를 꿈꾸다

그의 오디오 컬렉션은 이미 유명해서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에서 전시를 한 적도 있다. 당시 작은 공간 3개를 오디오와 가구 컬렉션으로 구성했는데 유럽 디자인 · 미국 디자인 · 디터 람스를 중심으로 한 독일 디자인으로 각각 구분했다고 한다.
“제가 만약에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시를 하게 된다면 1950년대~60년대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한 오디오 전시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알렉산더 지라드, 조지 넬슨, 이사무 노구치, 찰스&레이 임스 등의 디자이너들이 만든 모던한 오디오는 아직도 감탄을 불러일으키니까요.”

 

한동안 미술가로서 개인전을 하지 않았던 그는 내년에는 신작을 발표하기 위해 오늘도 취미공간에서 좋았던 시절의 디자이너들과 소통하고 음악을 들으며 신작을 구상하고 있다.

 

 

글_편집팀
사진_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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