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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발견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그릇, 제기

대부大夫가 처음 집을 지을 때는 제기祭器를 먼저 만들고 [중략] 군자君子는 아무리 가난해도 제기를 팔지 않으며,
아무리 추워도 제복祭服을 입지 않으며, 무덤이 있는 언덕의 나무를 베지 않는다.”

약 2천 년 전에 공자와 그 제자가 편찬한 『예기禮記』에 나오는 말이다. 『예기』는 예의 본질을 밝히고 그에 따른 실제 행동을 설명한 책이다. 또 다른 대목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대부는 제기를 남에게 빌리지 않아야 하고, 제기를 미처 장만하지 못했다면 일상생활에 쓸 식기도 마련하지 않아야 한다.”

아득한 예부터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 곧 대부니 군자 소리를 듣는 사람은 공동체가 받드는 신령스런 존재나 죽은 사람의 넋에 정성을 바치는 의식, 곧 제사를 누구보다 먼저 챙길 줄 알아야 했다. 제사의 본질을 눈앞에 드러내는 사물인 제기는 그런 점에서 소중한 그릇이었다.

또 다른 고전인 『논어論語』에는 “어버이 장례를 신중히 치르고 조상의 제사에 정성을 다하면 백성의 덕이 돈후해질 것이다愼終追遠, 民德歸厚矣”라고도 했다. 그 밖에 조선의 역대 왕이 행한 좋은 정치의 예를 모은 『국조보감國朝寶鑑』에는 “종묘의 제기로 어버이를 드러내기 위하여 제물을 갖추었다”라는 표현도 나오지만, 종묘사직 같은 신령스러운 존재 또는 조상에게 올리는 정성도 제기에 담기며, 그들이 그 예에 응답해 내려주는 복 또한 제기에 담기게 마련이었다. 제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차렸다가 물린 술과 음식을 나누어먹는 음복飮福을 떠올리면 짐작하기 쉽겠다. 올리는 정성을 다할 때는 엄숙한 의례용이고, 마치고 나면 푸근한 잔치용의 식기로 변하는 것이 제기이다.

조선 시대에는 쓸 수 있는 모든 소재를 가지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제기를 만들었다. 조선 시대 내내 놋쇠(유기), 나무, 자기가 다 제기를 만드는 데 쓰였다. 그중에서도 놋쇠와 자기는 격이 있는 소재라는 인식이 있었던 듯하다. 조선 후기 정치와 유학 사상을 이끈 송시열宋時烈은 집안 제사에 목기를 써도 좋은지를 묻는 제자에게 목기란 검소하고 값도 비싸지 않으니 써도 괜찮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런데 조선 제기는 역시 자기와 손을 잡고 꽃을 피우고, 조형적 완성에 이른다.

국립중앙박물관의 2016년 전시 「흙으로 빚은 조선의 제기」에 따른 연구를 인용하면 이렇다. 15~16세기에는 왕실과 관청이 동아시아의 고전적인 제기의 형상, 도해 등을 본떠 도자기로 제기를 빚고 굽는다. 이때 상감분청사기로는 금속 제기 못잖은 세밀한 장식까지 모방했다. 이후 관요官窯가 설치(1466~1469)된 뒤에는 백자로도 제기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제기의 역사에도 전환점이 된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향촌사회를 다잡기 위해 제사는 더욱 확대되는데, 이에 따라 백자 제기 제작도 더욱 확대되었고, 백자 제기는 과감한 생략과 적응을 통해 도자기에 최적화된 제기의 형상을 찾아가는 데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윽고 18~19세기에 들어서는 완성의 경지로 들어간다. 비례, 표면의 질감, 청화의 사용 등에서 아예 예술품의 경지로 넘어가는 면모까지 보인다.

제기는 동아시아의 오랜 음식 문화사를 담기도 했다. 지금 한국에 전승되고 있는 종묘제례에 쓰이는 제기 가운데 하나인 ‘두’가 좋은 예다. 맞다, 콩을 뜻하는 글자다. 두는 그 모양처럼 긴 다리 위에 뚜껑 있는 단지가 올라가 있는 형상의 제기이다. 종묘제례처럼 거대하고 엄숙한 국가 제사에서는 제기의 모양, 이름이 다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 이 가운데 두에는 물기, 국물이 감도는 제수를 담게 되며, 특히 녹해鹿醢 사슴고기 젓갈, 치해雉醢 꿩고기 젓갈, 어해魚醢 생선 젓갈, 담해醓醢 고기 젓갈 등 단백질에 소금을 가하고 발효숙성시켜 만든 제수가 두와 어울리는 것이다.

희준<span class='small-top-text'>犧樽</span>_단술<span class='small-top-text'>醴酒</span>을 담는 제기
작<span class='small-top-text'>爵</span>_술을 담는 제기. 나주향교에서 사용됨
궤_메기장<span class='small-top-text'>黍</span>과 피<span class='small-top-text'>稷</span> 등을 담는 제기. 나주향교에서 사용됨
 작<span class='small-top-text'>爵</span>_술을 담는 제기

예전 동아시아에서 장은 먼저 고기를 발효숙성한 육장肉醬을 일컬었다. 그러다 만주 지역 원산의 콩으로 메주를 쑤고, 두장豆醬까지 담는 문화가 동아시아 전체에 확산되면서 점점 동물성 단백질을 이용하는 계통은 ‘해’라고 부르고, 콩 단백질을 이용하는 계통은 ‘장’이라 불러 구분하기에 이른다. 한국인의 일상생활에서는 가자미식해, 명태식해 등의 음식이 예가 되겠다. 재미나게도, 콩과 콩 발효식품을 환기하는 글자로 쓴 제기가 아득한 옛 발효식품을 품고 오늘날에도 한국의 종묘에서 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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