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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일지

강화의 근현대 직물산업, 소창 조사

목화솜으로 자아낸 실로 만든 ‘소창’은 실재하는 직물이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이 만든 국어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은 단어이다. 사람으로 치면 호적이 없는 직물 이름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아직 소창의 유래에 대해 밝혀진 바가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미지의 직물이고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생활재이다.
소창은 근현대 산업의 하나로서, 일상의 삶에서 쉽게 만났던 생활재로서의 기능을 해왔다. 하지만 사전에 등재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현대화된 삶에서 그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강화도 직물의 하나인 소창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은 가치 있는 연구 주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강화도의 소창 공장은 열 곳이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소창 공장이 80여 군데에 이를 만큼 소창 산업이 번창했다. 당연히 직물조합도 결성되어 나름의 활동을 해왔다. 공장 수효의 감소만큼이나 소창은 쓰임새가 적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민속현장을 중심으로 한 여러 곳에서 여전히 소창은 유효하다. 수요도 제법이고, 친환경 소재로서의 가치도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히 강화군청의 열성적인 활성화 의지에 따라 강화도에 소창체험관도 세워지고, 민간 차원이지만 소창을 소재로 한 상품화 개발 연구도 제법 이루어지고 있다. 더욱 다행인 것은 소창체험관 활동을 통해 소창에 대한 강화 방문객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

 

강화의 근현대 직물산업 소창 조사는 다음과 같은 목적에서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강화도 소창 조사를 통한 근현대 직물 산업을 조명하고, 소창의 생산과 유통 과정을 통해 소창의 현주소를 확인하면서 강화도 소창이 지닌 역사성을 조명하고자 한다. 나아가 가능하다면 소창의 지속가능성 타진과 소창을 매개로 한 관광자원화 가능성 모색도 필요한 것 같다.

 

후다마끼 작업

직조하는 모습

 

강화 소창 공장을 찾다
2018년 1월부터 예비 조사를 진행했다. 소창 공장은 2018년 현재 10곳이 가동 중이다. 공장의 소재지를 찾아 직물 공장사장을 면담하여 조사 계획을 설명하고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했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것이지만 소창 공장은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운영 중이다. 원가 대비 제품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고, 소규모로 생산하기 때문에 채산성이 낮다. 숙련된 직원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연로하신 분들이 작업을 하고, 부부가 가내수공업 형태로 쉴 틈 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기 상표를 붙여서 판매하는 곳보다 이른바 중간업자의 주문에 의해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화된 상표를 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제 상품으로써 정당한 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만큼 소창 산업은 열악하다.

 

이런 상태에서 소창의 용어와 생산과정, 판매처 등을 인터뷰하는 것은 직물사장의 입장으로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돈 되는 일이 아닌’ 인터뷰에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조사자 스스로가 겸연쩍고 죄송한 일이다. 실제로 바쁜 일과 시간에 인터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저녁 시간을 할애해 달라고 하는 것은 휴식을 빼앗는 것이라 더욱 어려웠다. 학술적으로 동시대를 기록하는 작업의 의미를 이유로 마냥 귀찮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창 조사는 이런 난제 속에 진행되었다. 그러나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인터뷰를 해주신 제보자가 많아 나름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조사노트를 정리하는 가운데 이 글을 쓰면서 새삼 제보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일하고 싶은 사람이 소창 공장을 한다”; 면사에서 소창까지
소창을 짜는 공정은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분명하지만 여러 과정을 거친다. 그만큼 자질구레한 일이 많다는 뜻이다. 작태하기, 정련과 표백, 말리기를 거쳐 와인더에 감기, 나름하기, 연경하기, 짜기, 검단하기 등의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한다. 큰 공장에서는 부문별 업무 배분이 되어 있으나 규모가 작은 공장은 모든 공정을 한두 명이 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일이 많다. 특히 부부 또는 한두 명을 작업자와 함께해야 하는 강화 소창 공장은 공정별 작업자가 구분되지 못하고, 한두 명이 모든 공정을 해야 하는 형편이다. 박○○ 사장은 이와 같은 사정을 가리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소창 공장을 한다”고 웃으면서 말한다. 소창 공장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말 같다.

 

소창 제작 과정

□ 작태하기
현재 면사는 파키스탄, 인도 등 외국에서 수입한다. 부산에 있는 수입업자를 통해 구입한 콘에 감긴 면사를 가공 처리하기 위해 가장 먼지 태를 짓는 작업을 한다. 이를 ‘작태한다’고 한다. 일종의 실타래를 만드는 작업이다.

□ 탈색과 건조 과정
작태한 것을 실솥에 넣고 삶은 다음 빠는 작업이다. 목화 특유의 붉은 색을 없애고 먼지를 제거하는 한편 실의 신축성을 강화시키기 위해서 진행한다.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너나없이 해야 하는 일이다.

□ 풀 먹이기
옥수수 전분으로 풀을 쑤어 먹이고 햇빛 아래에 1주일 정도 말린다. 봄철에는 3일, 겨울철은 10여 일이 걸린다.

□ 말리기
풀을 먹인 태를 널어서 건조하는 과정이다. 공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부부이기 때문에 실을 널 때는 다른 작업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다른 작업 공정과 날씨 상황을 감안하여 날을 택하여 실을 널 수밖에 없는데, 이 날을 ‘실 너는 날’이라 부른다.

□ 와인더와 후다마끼 작업
건조된 태를 물레에 걸고 와인더를 돌려 경사經絲, 날실와 위사緯絲, 씨실로 쓰일 실을 콘과 후다에 감는 작업이다. 특히 씨실은 북에 넣어 직기에 거는데, 감는 막대를 ‘후다’라 부른다. 일본어의 잔재로 보인다.

□ 나름하기
와인더에서 감은 콘의 실을 정경기의 물레에 감은 다음 ‘삐무’에 감는 작업과정이다. 날실로 쓰는 실을
감는 작업이다. 삐무는 영어 beam에서 온 말로 보인다. 정경기를 통해 삐무에 실을 감는 것을 ‘나름한다’고 하며, 이 작업을 하는 날을 ‘나름하는 날’이라 부른다.

□ 연경하기와 짜기
직기에는 날실을 제대로 걸어야 한다. 삐무의 실을 그때마다 직기에 거는 것은 매우 번거로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실을 남겨 이를 연결해줘야 하는데, 이를 연경이라 한다. 일일이 손으로 연결하는 이 작업은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손놀림이 워낙 빨라 감탄했더니, 농담조로 ‘인간문화재가 될 수 없느냐?’고 했다. 연결 작업이 끝나면 직기를 돌려 직조한다. 이때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는 무척 시끄럽다. 귀마개를 해야 할 정도인데, 더러는 마개를 하지 않고 일한다. 그런 까닭에 공장을 운영하시는 분들 중 난청 증세를 보이는 분도 있다.

□ 필 떼기
직조된 소창은 일정 단위로 끊어 제품화하는 과정이다. 손으로 직접 하는 곳도 있고, 검단기로 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원리는 모두 같다. 30마 단위로 끊는데 이를 한 필이라 부른다. 마는 1야드를 가리키는데, 1마는 약 90㎝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소창은 비로소 제품으로 포장된다. 여러 과정을 거치는 한편 한두 사람에 의해 처리되기 때문에 소창을 짜는 작업은 매우 고되다. 일이 그만큼 많다는 뜻인데, 그래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소창 공장을 한다”고들 말한다.

 

풀먹이기
태 말리기
와인더 작업
연경
정경
직조하는 모습

 

일상에서 의례까지 두루 쓰이는 소창
전통적으로 소창은 이불솜싸개에 많이 쓰였고, ‘관빠’나 함끈으로 많이 쓰였다. 관빠는 관을 옮길 때나 하관을 할 때 관을 묶는 끈이고, 함끈은 함들이를 할 때 함을 묶어 매는 끈이다. 함끈은 나중에 기저귀용으로 재활용된다. 이즈음에 와서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 기저귀용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이렇게 보면 소창의 쓰임새는 제한적인 것 같다. 그러나 불교의례나 무속의례에서도 무척 많이 쓰인다. 사십구재를 할 때 영가가 들어오는 길로 쓰이고, 무속의례의 씻김굿과 선굿에서도 주로 쓰인다. 그래서 소창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이를 ‘만신마’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앉은굿을 하는 충청도 무속의례서는 이를 ‘곱베’라 부른다. ‘고를 짓는 베’라는 뜻인데, 발음상 ‘곱베’로 들린다. 곱베는 이승의 한을 풀어내기 위해 고를 짓고 풀어내는 데 쓴다. 조상을 가리고 군웅을 치거나 심지어 삼신굿, 용왕굿, 산신굿에서도 고를 푼다. 열두 신명을 뜻하는 12고에서부터 열시왕고, 칠성고, 오방고, 삼신고, 군웅고 등 매우 다양한 고를 짓고 풀어내는데, 이 모두가 소창을 쓴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저승길을 상징하기 위해 소창을 쓰고, 이 위에 혼을 태우고 가거나 가르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무속의례의 소창은 필수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소창은 제약회사에서도 쓰이고, 기계를 닦거나 녹이 슬지 않도록 감아주는 소재로도 쓰인다. 여러 산업 현장에 쓰인다는 뜻이다. 또 일부이기는 하지만 오리구이식당에서 진흙을 발라 오리를 구을 때 소창을 쓰기도 한다. 현대적인 활용이다.

 

                                                   직조하는 모습

소창의 미래를 그려본다
소창은 이처럼 다양하지만 여전히 자질구레한 일에 쓰이는 것 같다. 그러나 소창의 가치에 주목한 일부 사람들은 이제 소창을 활용하여 여러 가지 제품을 구상하고 있다. 현대인의 구미에 맞는 목도리, 스카프, 손수건, 커튼뿐만 아니라 멋쟁이를 자극할 의복을 짓고 개발하는 데 애쓰고 있다. 아직은 단가가 높은 편이지만 현대인의 입맛을 맞출 복식으로 탄생할 날이 멀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소창의 재탄생은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하지만 새로운 소재가 기진 가치를 주목한 사람들의 노력은 오래지 않아 빛을 발휘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소창공장 운영자의 비관에도 불구하고 소창의 미래는 어두운 것만은 아니라 진단할 수 있다. 어떻게 가내수공업 단계를 넘을 것인가를 선결하고, 2차, 3차 제품으로 도약할 때 소창은 재탄생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_장장식│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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