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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저장소

추억 속 놀이터가 되어준 그곳, 자개장롱

요즈음 TV에 자주 등장하는 1970~1980년대 모습에는 종종 검은빛에 전면이 화려하게 장식된 가구가 눈에 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방 한쪽 벽을 차지했던 커다란 가구는 어린아이에겐 새롭고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어른의 키보다 큰 문을 열면 그 안에는 두툼한 솜이불과 각종 옷가지들이 걸려 있었다. 옷 사이에 숨어 숨바꼭질을 하고, 이불 위에 누워 편안히 책을 읽다 잠이 들기도 하고…. 그야말로 아이들의 놀이터로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게다가 문 전면을 가득 채운 각종 동식물 모양 등의 자개 장식은 반짝반짝 여러 가지 빛깔을 뿜어내어 어린아이의 눈에는 마냥 신기하게 보였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자개장롱’이라 불렀다.

 

장롱 내부에 설치된 서랍과 횃대_진동균 기증

 

장롱이란 말은 장과 농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장은 본디 여러 층이 한 몸으로 이루어진 것, 농은 각 층이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 전통 가구의 구조와는 다르게 내부에 몇 개의 선반을 가로질러 설치하거나, 상단에 이불을 넣을 수 있는 공간 또는 옷을 걸 수 있는 횃대를 설치하고 하단에 서랍을 설치한 경우 등 여러 가지 다양한 기능이 첨가된 내부 구성을 갖는다. 외부 형태 변화와 관계없이 장롱은 이불과 옷을 보관하는 것이 주요 기능으로 전통 가구에 비해 화려하고 입면 구성이 다양하며 높이가 높아지고 전체적인 규모가 커졌다. 조선시대 전통 가구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높이가 170~200cm에 이르는 큰 규모의 가구는 얇은 나무판을 여러 장 붙여 만든 베니어합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렇듯 장롱은 전통 가구를 바탕으로 근대의 시대 변화에 맞추어 생겨난 양식으로 이것은 서양과 중국·일본의 영향, 좌식에서 입식으로 변화한 생활환경, 새로운 재료의 보급 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응답하라 1988」 드라마의 배경이 된 최규하 전 대통령 가옥 1층 안방
(사진 출처: 서울특별시)

오늘날 우리 생활 속에서 자개장롱을 접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주로 TV 드라마나 가구를 수리하는 기술자들의 이야기를 방영하는 프로그램에서 접하거나 일부 매장에서 판매하는 고가의 제품으로 만나게 된다.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아파트가 대량으로 공급되고 도시화가 이뤄지면서 이에 적합하게 가구도 새로운 모습을 갖추어야 했다.

냉·난방시설이 잘 되어 있는 아파트 환경에 맞게 재료의 활용도가 높은 합판, 무늬목, 도료 등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다양한 디자인에 설치·분해·관리가 쉬운 붙박이 시스템 가구가 주를 이루게 되면서 큰 부피와 무게, 관리와 보존이 어려운 자개장롱은 자연스레 우리 생활 속에서 잊히고 사라져 가고 있다. 일부 수리를 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 수리비용이 만만찮기에 안타깝게도 폐기처분되는 경우가 흔하다. 근래에 박물관에서 광복 이후에 사용된 가구를 수장하는 경우가 늘고 있고,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어린 시절 숨바꼭질하며 두근두근했던 추억을 안겨주었던, 기꺼이 놀이터가 되어준 커다란 자개장롱.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이기에 오늘날 사용하기 불편하고 짐이 되는 경우도 있어 점점 접하기 어려운 대상이 되었지만, 작은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우리나라 가구 역사의 한 부분이, 그리고 추억이 안타깝게 사라지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참고자료
김정근, 「한국 근대 가구의 변용에 관한 연구」, 『한국실내디자인학회지』13호, 한국실내디자인학회, 1997.
이주영, 「『조선가구류등급규격도면목록(朝鮮家具類等級規格圖面目錄)』을 통해 본 1940년대 가구」,『생활문물연구』제30호, 국립민속박물관, 2014.
조숙경, 『한국 현대가구사』, 기문당, 2015.
‘응팔’ 속 동룡이집, 알고 보니 前대통령 가옥! : 서울특별시_내 손안에 서울, 2016.01.08. 17:05, http://mediahub.seoul.go.kr/archives/951926?tr_code=snews

 

 

글_이주영│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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