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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명당明堂 열풍熱風

2018년 9월 19일 개봉하는 영화 「명당」은 조선 시대 ‘천하의 명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암투를 담은 시대극이다. 이 영화는 ‘조선 제일의 명당’이라 불리는 남연군묘에 전해오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때는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가 절정에 이른 조선 후기. 절치부심 왕권 강화의 때를 기다리는 몰락한 왕족 이하응(훗날의 흥선대원군)에게 정만인이라는 지관이 찾아왔다(영화에선 ‘장동 김씨’와 ‘흥선’, ‘박재상’으로 바뀌었다). 그는 “2대에 걸쳐 천자가 나오는 자리와 만대를 이어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자리 중 어디를 고르시겠소?” 하고 묻는다. 이하응의 선택은 ‘2대 천자지지天子之地’. 그는 자신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이리로 이장했고, 결국 그의 아들(고종)과 손자(순종)는 2대에 걸쳐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영화 「명당」에는 조선 후기 ‘명당 열풍’이 정치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드러나 있다_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그런데 당시 명당을 찾아서 부모의 묘를 이장한 것은 흥선대원군만이 아니었다. 양란 이후 조선은 위로는 국왕부터 아래로 노비까지 명당을 찾아 전국을 헤매었다. 삼국시대 시작된 풍수지리가 조선 후기에 절정을 맞은 것이다. 이 시기의 특징은 도읍이나 주택의 위치를 정하는 양택 풍수보다 조상의 묘 자리를 잡는 음택 풍수가 더욱 중요해졌다는 것. 이는 유교 이념인 ‘효’가 유학자인 사대부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명당 열풍’은 전국적인 ‘산송’을 불러왔다.

 

21세기까지 이어진 조선 시대 묘지 소송

산송山訟이란 묘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송사를 가리킨다. 산송은 ‘소송의 나라’였던 조선에서 노비, 전답 소송과 함께 3대 소송의 하나였다. 특히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 산송이 급격히 증가해 사회 문제가 될 정도였다. 문제는 명당은 한정되어 있고 죽는 이들은 계속 생긴다는 것. 조선 사람들은 명당의 기운을 받기 위해 남의 집안 묘지에 몰래 자신의 조상을 모시는 ‘투장’을 서슴지 않았다. 비록 불법이라 하더라도 다른 집안의 묘지를 마음대로 파내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투장은 산송으로 이어졌다. 그중 가장 유명한 송사는 조선의 대표 명문가인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사이에 벌어진 ‘400년 산송’이다.

 

명당도_풍수지리설에 근거해 묘의 방위와 혈, 형국을 표시한 그림.
춘천에 위치한 평산 신씨 시조 신숭겸의 묘소와 황해도 평산에 있는 신숭겸의 11세손의 묘소 그림으로 구성.

문제의 시작은 파평 윤씨의 조상인 윤관 장군 묘지 바로 위에 청송 심씨의 수장이었던 영의정 심지원의 묘를 조성한 것이었다. 이때가 1614년. 하지만 당시에는 청송 심씨도 파평 윤씨도 이것이 누구의 묘인지 알지 못했다. 고려 시대 여진족을 정벌하고 동북9성을 쌓았던 윤관 장군의 묘였지만 수백 년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진 것이다. 그러던 1763년 파평 윤씨가 윤관 장군의 묘지를 확인하면서 산송이 시작되었다. 당시 임금이었던 영조가 중재에 나섰으나 실패했을 정도로 산송은 치열하게 진행되었다. 급기야 남의 무덤을 파헤치기도 하고, 3m쯤 떨어져 있는 묘지 사이에 담장을 세우는 등 싸움이 계속되다가 청송 심씨가 조상들의 묘를 이장하고 파평 윤씨가 이장에 필요한 부지를 제공하기로 합의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때가 무려 2005년. 대략 400년 만에 심지원의 묘를 이장하면서 산송이 해결된 것이다. 21세기까지 이어진 산송은 조선 시대의 명당 열풍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원본청오경<span class='small-top-text'>原本靑烏經</span>』_한<span class='small-top-text'>漢</span>나라 청오선생<span class='small-top-text'>靑烏先生</span>이 지은 풍수지리 경전. 조선시대 음양과<span class='small-top-text'>陰陽科</span>지리학<span class='small-top-text'>地理學</span>수험서였던 『청오경』을 인쇄한 책.
패철<span class='small-top-text'>佩鐵</span>_지관<span class='small-top-text'>地官</span>들이 풍수를 보거나 방향을 확인할 때 사용하는 나침반.
윤도<span class='small-top-text'>輪圖</span>_지관들이 풍수를 보거나 방향을 확인할 때 사용하는 나침반.
수살<span class='small-top-text'>水殺</span>_석남 송석하 선생의 현지조사 사진.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입석은 풍수 지리적으로 허한 곳을 막는다는 비보<span class='small-top-text'>裨補</span> 신앙에 의한 것임.

 

음택 풍수에서 생활 풍수로

요즘의 ‘명당 열풍’은 이전과 다르다. 집터를 잡는 양택 풍수나 묘 자리를 찾는 음택 풍수보다 인테리어 등을 통해 명당을 ‘만들어내는’ 생활 풍수가 인기를 끈다. 이는 전통 풍수 이론 중 하나인 ‘비보풍수’와 연관이 있다. 비보풍수裨補風水란 풍수적으로 부족한 지형이나 산세를 보완하는 방법이다. 흙을 퍼내거나 나무를 심고 심지어 작은 산을 새로 만들기도 한다. 인근에 탑이나 절을 세워 명당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가구 배치를 바꾸거나 화분을 놓고 그림을 달아서 ‘복을 부르는 집과 사무실’을 만든다. 요즘은 화장이 일반화되어 망자들을 묘지 대신 납골당에 모시니 산송이 벌어질 일도 없으나, 명당에 대한 사랑은 면면히 내려오는 셈이다.

 

참고자료
최창조∙김진태, 『명당은 마음 속에 있다』, 고릴라박스, 2015
신정일, 『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1』, 다음생각, 2012
우영식, ‘파평 윤씨-청송 심씨 400년 묘지 다툼 종결’, 연합뉴스, 2007. 12. 23
한국콘텐츠진흥원, ‘2대 천자지지 가야산 남연군묘’, 문화콘텐츠닷컴 www.culturecontent.com
한국학중앙연구원, ‘산송’, 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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