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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시

학문으로 대를 잇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해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한국국학진흥원과의 협업을 통해 상설3전시관 ‘가족’의 주제를 개편해 왔다. 이번에는 학문으로 대를 이은 전주류씨 용와 류승현과 양파 류관현 형제의 가족 이야기이다.

 

출세보다 학문에 힘쓰다

고려시대 완산백完山伯으로 봉해진 류습柳濕을 시조로 하는 전주류씨全州柳氏 집안은 조선 중기에 류성柳城, 1533~1560이 의성김씨 김진金璡, 1500~1580의 사위로서 경상북도 안동 무실水谷로 처음 들어왔다. 그의 아들 기봉岐峰 류복기柳復起, 1555~ 1617와 손자 도헌陶軒 류우잠柳友潛, 1575~1635이 정유재란 때 의병으로 참여했고, 학문 탐구의 가르침을 강조하였는데, 그 후손들은 류복기와 류우잠 부자가 남긴 ‘기도유업岐陶遺業’ 정신을 실천하며 살아왔다.

 

5대손 류봉시柳奉時는 아들의 공부를 위해 삼가정三檟亭을 세워서 아들 교육에 힘썼고, 두 아들 용와慵窩 류승현柳升鉉, 1680~1746과 양파陽坡 류관현柳觀鉉, 1692~1764 형제는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학문과 벼슬로 그 명성을 떨쳤다. 이들은 박실朴谷과 한들大坪에 터를 잡았는데, 선조의 뜻을 따르기 위해 류관현의 셋째 아들 동암東巖 류장원柳長源, 1724~1796은 기양서당 향사 때 학문에 힘쓰고 행동을 삼가며〔勤學飭行〕, 친족 간에 화목을 돈독하게 해서〔敦親睦族〕한 가지 일이나 한마디 말을 하더라도 반드시 조상을 욕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불의를 행한 후손은 사당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문중 종친과 약속했다. 이에 전주류씨 집안에서는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하기보다는 대대로 친족 간에 화목하며 학문에 힘쓰는 것을 가업으로 삼았다.

 

용와 현판 慵窩 懸板
18세기 한국국학진흥원 소장(전주류씨 용와종택 기탁)

용와종택慵窩宗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8호의 사랑채 당호 편액으로,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썼다.

용와 류승현의 가계 계승과 가학

아버지 류봉시의 가르침을 받은 류승현은 1719년(숙종 45)에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참의 등을 역임했는데, 무신난戊申亂 : 이인좌의 난에 공이 있다는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건의로 1788년(정조 12)에 가선대부(종2품) 이조참판으로 추증되었다. 청렴한 관료로도 알려진 류승현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가계를 계승하면서 침간정枕澗亭을 짓고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 삼촌과 조카 등 가족 간에 스승과 제자가 되어 집안의 학문을 형성하고 전승하였다. 이에 그의 아들 노애 류도원柳道源, 1721~1791, 손자 호곡 류범휴柳範休, 1744~1823, 증손자 수정재 류정문柳鼎文, 1782~1839은 3대에 걸쳐 학문과 덕행으로 경상도에서 천거되었고, 세대마다『용와집』,『노애집』,『호곡집』,『수정재집』등 문집을 발간하였다.

 

상설3전시관 가족 코너 도입부
「용와 류승현의 가계 계승과 가학」과 「양파 류관현의 가학 전승과 정재 류치명」 전시 장면
「전주류씨 수곡파의 세계와 족보」와  「용와 류승현의 가계 계승과 가학」 전시 장면
「문중 서당과 호고와 류휘문」 전시 장면

 

또한 류승현의 5대손인 수재 류정호柳廷鎬, 1837~1907는 어려서부터 ‘가학종자家學種子’로 지목될 정도로, 후손들이 선조의 가르침을 따라 학문에 힘쓰도록 선대의 행적 및 언행을 정리한『완산가훈完山家訓』을 편찬하여 전주류씨 대대로 집안의 학문과 퇴계학의 전통을 계승하게 했다.

 

양파 류관현의 가학 전승과 정재 류치명

류승현의 동생인 양파 류관현은 12살 터울의 형에게 주로 가르침을 받아 집안의 학문을 계승하였다. 그는 1735년(영조 11)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이때 안동 출신인 류관현, 류정원, 이상정, 김성탁, 김경필 등 5명이 동시에 급제를 하자, 영조가 ‘안동의 비바람에 다섯 용이 날았다〔花山風雨五龍飛〕’고 시를 짓기도 했다. 그는 사도세자의 스승이 되어『주역』을 강론하기도 했는데, 특히 외직으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서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 수록되었다.

 

 

류관현은 큰 아들 류통원柳通源, 1715~1778, 손자 류성휴柳星休, 1738~1819, 증손자 류회문柳晦文, 1758~1818으로 가계를 이으면서, 형 류승현과 종제 류신적의 후사가 없자, 둘째 아들 류도원과 셋째 아들 류장원으로 가계를 잇게 하여, 문중의 삼촌과 조카, 형과 동생 간에 집안의 학문을 계승하게 했다. 특히 고손자 류치명은 집안의 학문을 계승하면서도, 외증조부인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의 학통을 이어서 퇴계학을 계승하는 일가를 이루어 만우정晩愚亭에서 많은 후학을 양성하였다. 한편으로는 집안 대대로 전해지는 선조들의 행적과 유훈을 ‘가세영언家世零言’으로 정리해서 후손들이 선조의 가르침을 받아서 가학을 계승하게 했다.

 

정재 현판 定齋 懸板
19세기 한국국학진흥원 소장(전주류씨 정재종택 기탁)
정재종택의 사랑채 당호로, 탄와坦窩 김진화金鎭華, 1793~1850가 썼다.
김진화는 서산西山 김흥락金興洛의 아버지이다.

 

 

마을마다 문중 훈장을 두다

전주류씨의 집안은 마을마다 문중 훈장을 두어 집안의 학문과 퇴계학을 서로 계승하고 세대별로 문집을 발간하는 한편, 성리학 · 예학 · 천문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문을 연구하여 퇴계학의 일가를 이루었다. 특히 동암 류장원은 영남의 예학을 집대성한『상변통고常變通攷』를 편찬했으며, 호고와 류휘문柳徽文, 1772~1832은 집안의 류범휴, 류정문, 류치명 등과 10여 년간 교정을 해서 이를 간행하였고, 천문지리를 연구하여 ‘혼천의’와 ‘천문도’ 등을 남겼다. 그리고 이들은 집안 학문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문중의 대표 서당인 기양서당岐陽書堂에서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문중 자제를 교육하는『삭망강안朔望講案』을 마련하는 등 학문에 힘씀으로써 류봉시 이후 6~7대 동안 30여 명이 문집을 발간하는 등 당대에 학자 집안으로 널리 알려졌다.

 

『삭망강안<span class='small-top-text'>朔望講案</span>』 1831년 40.4×25㎝ 한국국학진흥원 소장(수재후손 소장본). 정재 류치명이 1831년에 문중 자녀의 학문을 장려하기 위해 기양서당에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학생들을 가르쳤던 강안<span class='small-top-text'>講案</span>으로, 기양서당에 류건휴<span class='small-top-text'>柳健休</span> ․ 류휘문<span class='small-top-text'>柳徽文</span>․ 류치명<span class='small-top-text'>柳致明</span> 등 3명의 훈장 및 각 지역별로 별도로 훈장을 두고서 학칙 등을 마련하였다.
혼천의 <span class='small-top-text'>渾天儀</span> 19세기 한국국학진흥원 소장(전주류씨 호고와종택 기탁). 호고와 류휘문이 1825년(순조 25)에 『서경<span class='small-top-text'>書經</span>』의  천체<span class='small-top-text'>天體</span> 운행을 교육하기 위해 만든  선기옥형<span class='small-top-text'>璿璣玉衡</span>으로,  처음에 기양서당 서재<span class='small-top-text'>西齋</span>에 보관했으나,  뒤에 류치명의 명으로 사당 안에 옮겨 보관했다고 한다.
가세영언<span class='small-top-text'>家世零言</span> 20세기, 전주류씨 정재종택 소장 전주류씨 시조 류습부터 수곡파와 아울러 양파 류관현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이야기를 한글로 적은 두루마리이다. 집안의 부녀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만들었다
정재종택 전경,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용와종택
용와종택 불천위제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문화재마을 전경

 

하지만 안동 무실의 전주류씨 집안은 누대로 살아온 마을들이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고향을 떠나게 되었다. 대종가인 무실종택을 비롯해 기양서당, 정재종택 등은 원래의 터 인근으로 이건하였지만, 삼가정, 용와종택, 동암종택 등은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 일대로 이건하여 새로운 집성촌을 이루었다. 출세보다는 학문에 힘쓰라는 선조의 가르침에 따라 가정교육에 힘쓴 전주류씨 집안에는 그 전통이 계속 이어져, 현재도 인문학은 물론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많은 학자를 배출하고 있다. 가정 교육의 본보기를 보여주는 전주류씨 집안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가족을 있게 해준 선조를 생각해보면서 가족 간의 소중한 사랑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글_최순권│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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