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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도감

어른과 아이의 경계 : 댕기와 비녀

댕기: 소년과 소녀, 머리를 땋아 내리다

조선 사람들의 흰옷과 느리고 우아한 움직임은 잠시나마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에는 그들이 정말 인간인가 하는 생각이 들고 다음에는 성별을 의심하게 된다. 해안에 도착하면 갑자기 존경심을 나타내는, 그러나 한편으로는 호기심에 가득 찬 군중에 둘러싸인다. 군중 속에는 젊고 앳된 얼굴들도 보이는데 그들은 소년들이다. 남자 어른과 비슷한 옷을 입었지만 갓을 쓰지 않고 소녀들처럼 긴 머리를 땋아내려 댕기로 끝을 묶었다. 그 때문에 처음 보는 이방인은 대부분 그들을 소녀로 착각하기 쉽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방인을 바라보는 소년들은 우리 관심이 그들의 머리 모양에 있다는 사실을 안 뒤에는 실망하고 만다. 그 머리 모양은 그들이 미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그들이 아직 어린아이라는 징표이고 때에 따라 여자로 오해받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ercival Lowell, 1885, 『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조선을 다녀간 이방인들은 종종 꽤나 당혹스러운 장면과 마주했다. 그 중 하나가 머리카락을 길게 땋아 댕기를 늘어뜨린 소년들의 모습이었다. 댕기라고 하면 으레 여자 아이의 땋은 머리채를 돋보이게 하는, 끝이 뾰족한 빨간색 옷감 조각을 떠올리지만 그건 그저 단편적인 모습일 뿐. 댕기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남녀 공용이었다.

 

제비부리 댕기

댕기

 

소녀는 물론 소년까지도 관례성인식를 치르고 혼인하기 전까지는 땋아 내린 머리에 댕기를 드려야 했다. 땋은 머리끝을 고정하는 끈에 불과한 듯 보여도 댕기는 혼인하지 않았다는, 다시 말해 그 사회에서 한낱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또렷한 표식이었다. 댕기를 풀 수 있는 조건은 나이가 아니라 오로지 ‘혼인’이었다. 서른이 가까워도 혼인하지 않으면 댕기 꼬리 펄럭이는 떠꺼머리 총각으로 남을 수밖에.

 

신윤복, 「대쾌도」 부분_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신윤복, 「사시장춘」 부분_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비녀: 그와 그녀, 머리를 틀어 올리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등 뒤로 머리를 땋아 내리지 않아도 된다. 약간의 머리카락을 솎아낸 후에 나머지를 모두 모아 정수리에 틀어 올리면 그는 이제 아무개 씨가 되어 대접을 받는다. 조선 여자들은 머리 가운데에 가르마를 타고 머리카락을 목 뒤쪽으로 모아 그리스 스타일처럼 꼰 다음 그 사이에 비녀를 꽂아 고정한다. 비녀는 둥글고 둘레가 ¼인치, 길이는 5인치 쯤 된다. 거북 껍질이나 금속으로 만드는데 조선 여자들은 이 비녀를 간절히 갖고 싶어 한다.”

G. W. Gilmore, 1892, 『Korea from it’s Capital』

 

 

마침내 댕기를 풀고 정수리에 머리를 틀어 올린 남자, 그는 이제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다. 풋풋하게 댕기를 휘날리던 소녀 역시 혼인과 동시에 길게 땋은 머리를 틀어 쪽쪘다. 혼인한 남녀임을 세상에 분명하게 드러내는 머리 모양, 그걸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비녀였다. 비녀는 꼬아 비튼 머리카락의 절묘한 균형감을 이용해 머리채를 고정하는 도구다. 여자의 장신구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상투 틀어야 하는 남자도 ‘동곳’이라는 비녀를 썼다. 손가락 두어 마디 밖에 안 되는 크기에다 남자라면 응당 갓을 써야 하니 동곳은 쓰개에 가려 밖으로 드러날 일이 거의 없었다. 고정을 위한 목적에만 충실했던 탓이다.

 

동곳

쪽과 비녀

 

땋은 머리 풀리지 않게 매는 끈, 머리채 틀어 올려 고정하는 도구에 불과했으나 댕기와 비녀를 통해 드러나는 시각적 차이는 크고도 확실했다. 그 옛날 작고 가벼운 댕기 하나, 단순하기 그지없는 비녀에 어린 아이와 어른을 나누는 묵직한 역할이 숨어 있었던 셈이다. 오로지 혼인해야 머리를 틀어 올릴 수 있고, 그래서 아이와 어른이 머리 모양만으로 분명하게 구분되는 시절이 있었다니! 생각해보면 꽤나 아득한 일이다.

 

참고문헌
G. W. Gilmore, 1892, 『Korea from it’s Capital』, Presbyterian Board of Publication and Sabbath-School Work.
Percival Lowell, 1885, 『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Harvard University Press.

조희진, 『선비와 피어싱』, 동아시아,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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