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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일지

역사의 땅 강화도에서 포구를 조사하다

한 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부는 포구는 스산한 기운이 감돌고, 회색빛 바다와 갯벌은 오랜만에 바닷바람을 맞는 들뜬 마음을 여지없이 가라앉게 했다. 차에서 내려 포구에 정박한 어선과 어판장을 확인하고, 주민들과 몇 마디 나눈 후 다른 마을로 출발하기를 4일째. 수십 개의 어촌을 돌며 ‘참 크기도 하군’이라며 연신 혼잣말을 되뇌었다. 해안선 둘레가 99km에 이르는 다섯 번째로 큰 섬인데 어련하겠는가. 5일째 되는 날, 부속섬인 교동도와 석모도의 어촌까지 모두 답사한 후에 2018년에 조사할 강화도 포구의 윤곽을 그렸다. 그렇게 잡은 강화도 포구조사 계획은 5개월간 휴무에 들어갔다. 2017년에 10개월간 상주하며 조사한 연평도 민속지 3권 외에 인천지역 전문가와 동료 학예사가 조사한 민속지까지 포함하여 10권을 발간하느라 강화도 출장은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계절은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뀌었고, 한낮의 태양을 마주하기 부담스러워서 우산을 들고 다니며 조사를 하고 있다. 사람 그림자조차 보기 어려웠던 겨울의 포구는 온데간데없고, 어획한 생선을 손질하는 어민들과 횟감, 젓갈, 좌판의 생선을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온통 회색빛이던 갯벌과 바다는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서 빛난다. 포구를 이리저리 다니며 촬영하고 기록하느라 여념 없는 나날. 어느새 옷은 땀으로 축축해진다. 차 안에 준비해둔 여벌의 티셔츠로 갈아 있고 다음 마을로 향한다.

 

 

강화도는 역사의 땅이다. 한강의 관문 역할을 했고, 서울·경기지역에 다양한 해산물을 공급했으며, 역사의 고비 때마다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군사 요충지 역할을 했다. 평시에는 강화도의 부속섬인 동검도와 서검도에서 한강을 드나들던 선박을 검문했다. 동검도는 삼남지방에서 올라온 세곡선과 일본, 서양배를 주로 검문했고, 서검도는 중국배를 검문했다. 세곡선이 통과하던 염하수로는 강화와 김포 사이의 좁은 바닷길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합쳐져서 서해로 흐르는 물길로 폭은 200~300m, 넓은 곳은 1km 정도 된다. 길이는 20km이다. 밀물 때면 염하수로를 따라 올라온 바닷물이 한강으로 밀려들어간다. 예전의 풍선은 이 물살을 타고 한양의 마포나루와 서강나루로 올라갔다. 반대로 하역을 마친 배는 썰물을 기다렸다가 다시 염하수로를 따라서 서해로 빠져나간다. 물때에 따라 수백 척의 세곡선과 어선이 줄을 이어 오르내리던 염하수로였다. 지금은 운송로의 기능은 완전히 사라졌다. 강화대교 아래에 7~8척, 초지대교와 황산도 사이에 9~10척의 안강망 어선이 어로활동을 하는 소규모 어장의 기능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한강의 관문 역할과 함께 강화도는 지정학적 위치로 군사요충지였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입에 대항한 임시도성의 역할을 했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당시 마지막 보루이자 방파제 역할을 한 곳이 강화도이다. 운요호와 교전, 정족산성 전투, 강화도 조약 등 강화도는 큼지막한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강화산성, 고려궁지, 17세기부터 해안선을 따라 쌓은 53개의 돈대 등 강화도 곳곳에 역사의 증거물과 흔적이 산재해 있다.

 

 

이뿐이랴. 강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선사시대 고인돌, 낙가산洛伽山 기슭에 자리한 한국 3대 관음성지인 보문사普門事가 있고, 강화도 남단의 갯벌은 여의도의 53배에 이르는데 천연기념물 제419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화 갯벌의 풍부한 플랑크톤은 강화어장을 풍요롭게 만든다. 젓새우, 반지, 장어, 황복, 숭어, 깨나리, 꽃게 등 다양한 어족자원이 서식하는 어장이다. 이 어장은 강화 본섬과 석모도, 교동도 등 강화군의 10개 유인도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고 있다. 염하수로의 더리미와 황산도, 석모수로의 창후·외포·후포, 강화 남단의 선두4·5리와 분오리 그리고 석모도의 어류정항과 교동도의 남산포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 동검도와 서검도, 지금은 사라진 산이포구 등을 조사하여 강화도 포구의 현재와 과거 모습을 함께 살피는 중이다.

 

강화는 우리 역사의 집약체로서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는 곳이다. 한발 한발 내딛고 서는 곳마다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는 땅이다. 이러한 강화도 곳곳을 누비며 포구를 조사하는 일은 참으로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기록하는 일 역시 역사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글_김창일│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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