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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단상

행복이 가득한 식탁

 

행복이란 무엇일까? 사회적으로 성공해 돈 많이 벌고 명예를 얻는 걸까? 이고(以古)갤러리 백정림 대표는 행복은 따뜻한 가정에서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가족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행복의 정점이죠. 하지만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 흐름에 묻혀 가정 문화가 사라지고 있어 아쉽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아름다운 그릇에 맛있는 음식을 담아 먹는 순간만큼 행복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답니다.”

그의 수집 활동은 앤티크 테이블웨어tablewear를 모아 혼자 감상하고 즐기는 데 머물지 않는다. 행복한 가정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 사람들을 모아 테이블 세팅 클라스를 연다. 그리고 힘들게 수집한 앤티크 테이블웨어를 아낌없이 사용해 가족과 지인들을 대접한다.

 

백대표가 처음 관심을 가진 아이템은 우리나라 앤티크였다. 예술적 감성이 풍부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우리나라 고가구의 멋에 매료되었다. 이후 그녀가 국내 최고의 앤티크 테이블웨어 수집가로 자리 잡게 된 것은 20여 년 전에 깨달은 ‘지루함’ 때문이었다. 다른 가정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서양의 값비싼 테이블웨어를 사용하다가 집집마다 모두 같은 디자인의 식기와 커트러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백화점에서 고가의 명품 테이블웨어를 세트로 구입하기보다 세월의 흔적을 담은 앤티크 식기를 모아 우리 집만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어졌다.

 

이고갤러리는 백정림 대표가 수집한 다양한 앤티크 테이블웨어와 가구 등으로 가득하다.

 

앤티크 테이블웨어와 함께 하는 시간 여행

“미국은 아르데코 이후 가장 번성했던 곳이라 유럽 앤티크가 많고 다채롭습니다. 영국은 도자기가 특히 아름답고, 프랑스는 아르누보의 성지이지요. 가우디, 갈레, 마조렐, 돔과 같은 브랜드의 제품이 훌륭하고 유리 제품이 근사합니다.”

백대표는 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벨기에 앤티크 딜러에게 물건을 구입한다. 직접 현지로 가서 앤티크 테이블웨어를 수집하거나 이메일을 통해 친한 딜러들과 논의해 구입하고 있다. 앤티크는 이미 만들어진지 백 년도 넘었기 때문에 똑같은 제품을 세트로 구입하기가 어렵다. 하나가 있다는 것은 세계 어딘가에 또 다른 하나가 있다는 뜻. 우연히 나머지 물건을 구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고갤러리에서는 가끔 해외 딜러를 대신해 앤티크 제품을 판매한다. 하지만 그는 갤러리에서 이익을 창출하기보다 문화를 만들고 공부하는 데 중점을 둔다.

 

 

서양 테이블웨어 수집가로 알려졌지만 ‘첫사랑’이었던 우리나라 앤티크에 대한 백정림 대표의 관심은 여전하다. “동양과 서양, 근대와 현대의 융합을 즐깁니다. 조선시대 목가구 위에 아르누보 시대의 화병을 올리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요. 귀한 그릇과 가구를 직접 사용하면 세월을 넘나드는 시간 여행을 하게 되지요.”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는 집에 있는 도자기, 유리 그릇 등을 믹스, 매치해보라고 제안한다. 도자기 한 세트만으로 테이블을 꾸미는 것보다는 레이스 달린 식탁보에 도자기와 유리잔을 올려서 섞으면 훨씬 아름답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옷을 잘 겹쳐 입으면 훨씬 멋진 것처럼 테이블웨어도 여러 요소의 조화가 중요하답니다. 여름이니까 블루, 화이트 등 색깔을 2가지 정도로 정해서 냅킨까지 세팅하면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지요. 매번 식탁을 이렇게 꾸밀 순 없으니까 한 달에 한번 정도 가족, 친구와 재미있는 시간을 만들어보세요.”

 

 

수집에 깊이가 생기려면 공부를 해서 안목을 키워야하죠

앤티크 테이블웨어를 수집하면서 빅토리안, 바로크, 로코코, 아르누보, 아르데코 등 테이블웨어가 만들어진 시대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은 백정림 대표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빅토리안 시대 커트러리의 종류, 베르사이유 궁전의 차와 찻잔, 아르누보 시대의 테이블웨어 브랜드인 갈레, 아르데코 시대의 릴리끄 등 식탁 위의 예술품을 수집하고 스토리를 찾으면서 백 대표의 수집 활동은 더 깊어졌고, 그것은 강의로 이어졌다. “앤티크 수집 덕분에 동서양의 문화와 역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여러 사람과 정보를 나누고 싶어서 강의를 하게 되었고요. 새로운 인연을 맺으면서 소통하는 게 즐겁습니다.”

 

그는 5년 전부터 강의를 시작했는데, 모든 강의에 참석한 이도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요즘 같은 SNS 시대에도 그녀는 아날로그적으로 수강생을 한 명 한 명 모집한다. 따뜻한 가정 문화를 만드는 데 진심으로 관심을 가진 이들을 모으기 위한 작은 배려다. “저와 인연을 맺은 분들이 몇년 지나서 ‘결’이 달라지는 걸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특히 부유한 분들이 골프와 쇼핑 중독에서 벗어나 가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모습을 보면 참 기쁘지요. 꼭 화려한 만찬을 할 필요는 없어요. 가족, 친구와 정성스럽게 티타임을 갖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가족과 지인에게 예쁜 그릇에 담긴 맛있는 음식을 선물하는 건 백대표의 큰 즐거움이다.

 

백정림 대표의 수집 활동이 더욱 행복한 이유는 모든 수집품을 일상에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강의가 이뤄지는 갤러리뿐 아니라 집에서도 백 년 넘은 소파와 쿠션, 식기와 스푼 등을 쓰고 있다. “사람들이 값비싼 식기가 깨지는 걸 염려해서 잘 사용하지 못하는데, 사계절 내내 많은 손님을 초대하는 저도 식기를 깨뜨린 적이 아주 드물어요. 앤티크 크리스탈 접시와 글라스가 생각보다 연약하지 않아요.”

 

문화 융합의 아름다움을 알린다

어제의 첨단 기술이 오늘의 옛날 기술이 되는 21세기. 앤티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백대표는 서양 것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앤티크의 가치도 나날이 오를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상류층만 앤티크를 알아보고 즐겼는데, 이제는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모든 사람이 충분히 앤티크의 멋을 일상에서 음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소수만이 즐긴다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인 것이다. “언젠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시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문화 융합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삼고 싶어요. 예를 들어 선이 고운 아르데코 시대의 랄리크는 직선적인 조선 고가구와 매치하면 기가 막히게 어울리지요. 소반 위에 아르누보 시대의 크리스털 글라스를 올리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소반 위 새파란 유리 물병. 백대표가 생각하는 ‘융합’을 느낄 수 있다.

 

조선 목가구 안에 충무 누빔을 깔고 티파니의 실버 커트러리를 올린 문화 융합 아이디어를 갤러리 곳곳에 실현해놓은 그녀의 안목은 현대미술 수집과 보석 디자인으로도 이어진다. 그는 앤티크 컬렉터이자, 앤티크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아트 디렉터다. 가을에 출간될 그의 첫 번째 저서에는 앤티크 수집과 테이블 웨어 세팅의 묘미가 담길 예정. 책과 강의를 통해 그의 ‘수집단상’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글_편집팀
사진_김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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