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PDF 박물관 바로가기

그땐 그랬지

여기가 공포의 도가니

“심야 극장의 관객들은 모두 짚단을 묶어놓은 것처럼 서로 엉긴 채 비명을 지르고 웃음을 웃고 박수를 치고 있었다.”

1982년 9월 10일 동아일보에 실린 「헬나이트」 영화평의 서두다. 필자는 그때 『인간시장』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소설가 김홍신. 아마도 그에겐 영화 자체보다 극장 안 젊은 관객들의 관람 행태가 인상적으로 먼저 와 닿았던 모양이다.

 

한글 명칭은 ‘공포영화’이겠고, 요즘 극장가에선 일반적으로 ‘호러’로 불리지만 그 시절, 특히 여름이면 ‘납량물’ 혹은 ‘괴기물’ 같은 일본식 용어로 불리며 개봉하던 영화들. 그 영화들이 관객과 만나던 풍경은 일반 영화의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특히 20세기, 즉 멀티플렉스보다는 ‘단관 극장’이 중심을 이루던 시기 공포영화 상영관의 분위기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무엇이 있었다.

 

그때 ‘방화’라고 불리던 한국영화도 꾸준히 공포영화를 생산하고 있었지만, 내 기억 속에 그 독특한 아우라를 새겨놓은 건 ‘외화’의 추억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충격의 강도 차이랄까? 한국의 공포영화들이 ‘한’의 정서를 토대로 ‘복수’를 거쳐 결국 억울한 사연이 풀리는 ‘해원’으로 이어진다면, ‘미국산 공포’는 진절머리 칠 악령의 잔치였다. 1970년대는 ‘호러 파티’의 시작이었고, 한국에선 ‘무당’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던 「엑소시스트」는 한 차례 수입 금지를 겪은 후에 비로소 한국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다. 이후 「오멘」이 오컬트 무비의 계보를 이으며 개봉되었고, 스필버그의 「죠스」나 브라이언 드 팔머의 「캐리」처럼 당시 미국의 ‘뉴 시네마’를 이끌던 신성들의 새롭고 감각적인 호러도 선을 보였다.

 

이탈리아 공포영화 「써스페리아」, 「써스페리아 2」 포스터

 

자국 영화보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선호도가 훨씬 더 셌던 시절, 이 영화들이 상영되는 극장은 말 그대로 ‘공포의 도가니’였다. 이런 풍경은 1980년대 들어 보편적 광경으로 자리잡는다. 특히 1982년에 시작된 심야 상영은 기름을 부었다. 처음엔 「애마부인」 같은 ‘성인용’ 영화가 그 흐름을 주도했지만, 이내 자정의 상영관은 호러가 차지하기 시작했고, 서두의 인용구처럼 청춘 남녀가 들끓는 심야의 사교장이 되었다.

 

시내 개봉관 사정이 이랬다면, 다른 리그도 있었다. 변두리 재개봉 동시상영관이 넘쳐났던 그 시기, 공포의 기운은 골목 담벼락마다 붙어 있었던 시뻘건 포스터부터 시작되었다. 1980년대는 난도질로 충만한 슬래셔 무비들이 극장가에 호환 마마처럼 번지던 시절. 「헬레이저」 「헬나이트」 「프라이트 나이트」 「나이트메어」 「버닝」 「지옥의 카니발」 「홀로코스트」 등 강렬한 비주얼을 뽐내던 포스터들의 위력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날 정도로 대단했다. 물론 ‘관람불가’였지만 매표소 누나가 주민등록증 따위를 요구한 적은 없었다. 그렇게 들어간 영화관의 분위기는 영화만큼이나 을씨년스러웠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건 필름의 질감이었다. 이미 개봉관에서 수없이 상영되어 낡아져 버린 필름은 ‘화면에 비 온다’는 표현에 어울리게 수많은 흠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대사도 기괴하게 뭉그러지곤 했다. 오래 된 스피커에서 지직거리며 울려 나오는 사운드도 공포 효과를 올려놓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재개봉관의 영화는 툭툭 튀면서 점프 컷으로 영사되곤 했는데, 이런 우연조차 영화를 한껏 무섭게 만들었다. 요즘도 그런 관객들이 있지만 난데없이 홀로 비명 지르는 관객들은 안 그래도 꽉꽉 들어 차 비좁은 극장 안을 더욱 심란하게 만들며 집단 패닉을 불러오기도 했다. 때론 낡은 에어컨조차 없어 대형 선풍기로 냉방을 하곤 했지만 그 찜통 속에서도 그 시절 ‘공포 영화관’은 영화 못지않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어쩌면 이 시절 진짜 공포의 산실은 ‘안방극장’일지도 모른다. 특히 「전설의 고향」은 1970~80년대 각 가정의 저녁 시간대를 섬뜩한 기운으로 물들였던 장수 프로그램이었다. “내 다리 내놔!”로 상징되는, 미국의 「환상 특급」에 비견할 만한 한국 최고의 TV 판타지 시리즈인 「전설의 고향」이 전국 각지의 전설을 토대로 한다면, 이와는 별개로 각 방송사는 여름마다 ‘납량 특집’이라는 이름으로 공포 단막극을 방영했다.

 

그러나 그 시절, 유신과 독재의 ‘공포 정치’가 살아 숨 쉬던 한 세대 전의 극장에서 가장 무서운 풍경은 영화 시작 전에 모두 일어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했던 그 모습 아니었을까? 현실 도피의 공간인 영화관까지 침투한 국가 권력….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후략).” 그런 의미에서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아마도 가장 인상적인 ‘극장 풍경 묘사’일 듯하다.

 

 

 

 

더 알아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