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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도감

한복과 조선옷 사이

프롤로그: 너의 이름은

고민이 시작됐다. 대체 뭐라고 써야 하나! 일단 우리는 ‘한복’이라 부른다. 그런데 그들은 ‘조선옷’이라 한다. 근대로 접어들던 시기, 서양에서 들어온 옷을 ‘양복’이라 했다. 그러니 그와 대비해 우리 옷을 통틀어 가리킬 이름이 필요했다. 그래서 ‘조선옷’ 혹은 ‘한복’이라 불렀다. 그 시절, 두 개의 이름은 공존했다. 신문에도 잡지에도 심지어 우리조차도 그렇게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남과 북이 갈라지면서 어느새 이름마저 나뉘고 말았다. 그리하여 여기서는 ‘한복’, 저기서는 ‘조선옷’.

 

「우리 할머니 회혼례(2009)」,
할머니 회혼례에 참석하는 예복으로 입은 가족한복

「한국복식문화 2000년(2001)」
특별전, 검정치마와 저고리, 통일교육원 소장

 

2005: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

교과서에 나온 3·1운동 삽화는 대략 이랬다. 태극기를 손에 들고 흔드는 남녀노소, 그리고 그 속에 잔 다르크처럼 우뚝 선 한 여성. 그녀는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는 어쩐지 3·1운동 때 태극기 들고 씩씩하게 나섰던 소녀들의 상징처럼, 그렇게 각인되었다.

 

그 기억을 강렬한 느낌으로 소환한 건 2005년 인천아시아육상경기대회를 찾은 북한 응원단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 묶거나 단발한 머리, 개성이라고는 도무지 허용할 수 없다는 듯 똑같은 흰 저고리에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검정 치마를 입은 모습이라니!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려주는 건 치마저고리가 아니라 가슴에 단 붉은 배지였다. 북한식 순수함의 표현인지 아니면 조선의 정통성이 그들에게 있다는 자긍심인지 그 의도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시선 끌기에는 확실히 성공했다. 삽시간에 일제강점기, 그 뼈아픈 시대를 함께 이겨낸 동포애를 떠올리게 했고 어린 소녀들의 모습만은 옛날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으니까.

 

 

2005년 인천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참여한 북한 응원단은
똑같은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었다.

 

2018: 여전히 흰 저고리 그러나 분홍 치마

2018년 벽두, 평창올림픽 개막 직전 성사된 북한 예술단 공연이 화제가 되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관람권을 추첨할 만큼 관심이 꽤 높았다. 곧이어 나온 뉴스를 보니「반갑습니다」라는 노래로 첫무대를 열었다고 했다. 흥미롭게도 첫 곡을 부른 가수들이 모두 흰 저고리에 분홍치마를 입고 있었다. 커다란 꽃무늬가 가득한 치마저고리는 화려하고 화사했다. 2005년에 왔던 응원단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옆선이 거의 없는 짧은 저고리, 둥글게 붕어 배처럼 늘어진 소매 밑단(배래), 치맛단까지 닿을 만큼 길고 폭이 넓은 고름, 긴 역삼각형으로 파내려간 깃과 그 위의 얇고 좁은 동정까지. 가만, 어디서 보았던가. 옛날 사진!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그랬다. 그들의 ‘조선옷’은 1970~80년대 우리 ‘한복’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외신이나 국내 언론을 통해 소개된 그들의 ‘조선옷’은 원색에서 형광색에 이르기까지, 색이 화려하고 무늬도 다양했다. 마치 30년을 거슬러 올라간 듯 그때 우리가 사용했던 합성섬유에 크고 알록달록한 꽃무늬, 직조한 색동에 여기저기 들어간 금빛 선까지, 어쩜 저리도 닮았을까. 다르다 볼 만한 것이라야 치마 길이를 줄인 것쯤이었다.

 

신기하다 여겨야 하나, 아니면 수십 년 세월 갈라진 변화에도 민족의 동질성이라는 것이 깃들어 있다고 위안 삼아야 하나. 대략 3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일어난 이 절묘한 오버랩이라니!

 

 

2018년 강릉에서 공연한 삼지연 관현악단 단원은
1970~80년대 우리 ‘한복’과 흡사한 ‘조선옷’을 입고 나와 민족의 동질성을 느끼게 했다.

 

에필로그: 다시, 너의 이름은

전쟁 중단을 선언한 지 꼭 65년이 되었다. 10년은 고사하고 한 순간만 눈을 돌려도 세상이 LTE급으로 바뀐다는 시대다. 하물며 65년 동안 서로 다른 사상과 문화를 지향하며 살았으니 달라진 것이 어디 한 둘일까. 그래도 우리는 주구장창 노래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통일한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들 수는 없을 텐데 그때 우리 옷을 부르는 이름은 무엇이려나. 우리 식으로 한복? 아니면 그들 식으로 조선옷? 혹은 모두 두루뭉술하게 얹어서 민족옷? 다시 궁금해졌다. 뭐, 아무려면 어떤가. 적어도 그때가 되면 우리 옷의 이름뿐만 아니라 세월 따라 달라질 모습까지도, 벌어진 시차를 줄여갈 수 있지 않을까. 이름 따위 그때 가서 다시 고민하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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