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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시

비움으로 근심을 내려놓다

뒷간, 측간, 변소로 불리는 우리의 전통 화장실을 사찰에서는 근심을 내려놓은 곳이라 하여 ‘해우소解憂所’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왕실사찰이었던 회암사지사적 제128호에서 발견된 거대한 사찰 뒷간 터가 남긴 이야기를 통해 마음을 비우고 근심을 내려놓는 ‘해우’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대가람의 뒷간>을 기획한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최석현 학예연구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이번 공동기획전에 대해 소개해달라

최석현 학예연구사이하 최석현_이번 전시는 국립민속박물관의 ‘K-Museums 지역 순회전’ 사업의 하나로 2016년 전시한 <큰 고을, 양주>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하는 공동기획전입니다. 2005년 회암사지에서 거대한 석실이 발견되었는데 조사 결과 기생충이 발견되면서 이곳이 전통 사찰의 뒷간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현재까지 국내 사찰 터에서 발굴된 것 중에서 최대 규모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뒷간으로써의 의미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당시 회암사가 얼마나 큰 규모의 사찰이었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는 그 석실과 유구遺構를 통해 회암사의 뒷간은 어떤 모습이었고,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지 실제 구조를 추정해볼 수 있는 건축물 일부를 가상 재현해봄으로써, 당시 사찰의 생활문화와 대가람의 뒷간을 상상하고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Q. 이번 공동기획전의 대표적인 전시품을 소개해달라

최석현_이번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뒷간을 발견하다’에서는 공간 자체를 하나의 연출물로 만들어 실제 석실구조 내부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또 회암사지 뒷간 터의 발굴 과정과 기생충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토양 표본에서 발견된 간흡충과 회충을 현미경을 통해 관찰해 볼 수 있습니다. 2부 ‘뒷간을 이해하다’에서는 전통 뒷간문화와 관련해 분뇨를 처리하는 유물로 거름지게, 거름통, 오줌장군, 동이 같은 유물과 사진, 영상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3부 ‘뒷간을 상상하다’에서는 이번 전시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회암사지 뒷간의 모습을 추정한 3D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길이 12.8m의 대규모 석실 위에 자리했던 뒷간은 북향으로 좌우측 두 곳의 출입구가 있고 이 통로를 통해 들어가면 한 줄에 12칸씩 최대 24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큰 규모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선암사, 송광사를 비롯해 현존하는 전통 사찰 뒷간의 VR 영상과 익살스러운 단편 애니메이션 ‘해우소’ 그리고 관람객들이 회암사의 뒷간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Q. 공동기획전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최석현_‘대가람의 뒷간’의 실제 공간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었는지 보여주기 위해 회암사지 뒷간을 추정하여 3D로 변환한 석실 복원작업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현재 석실 윗부분에 초석들이 남아있는데 그 초석들을 기반으로 해서 다른 전통 사찰들의 해우소 특징과 조합해 ‘이런 식으로 생기지 않았을까’ 추정해본 거죠.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습니다.

 

 

Q. 공동기획전을 기획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최석현_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실제로 전통사찰의 뒷간을 가보게 되었습니다. 순천에 있는 선암사와 송광사, 문경의 김룡사, 영월의 보덕사 이렇게 4군데 사찰을 방문했는데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송광사의 경우에는 남녀 칸이 완전히 구분되어 있었지만 김룡사나 보덕사는 문이 따로 있어도 들어가면 하나의 공간이었습니다. 칸 마다 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완전 개방되어 있어서 ‘이런 곳에서 어떻게 볼일을 편안하게 볼 수 있었을까’ 등 다양한 상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Q. 사찰에서 뒷간이 가지는 의미는?

최석현_선암사와 송광사 스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뒷간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내 몸을 비움으로써 해우解憂 즉 근심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하셨거든요. 누구나 뒷간에 앉아 몸 안의 것을 비워내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얼마나 편안해지는지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겁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우고 사느라 급급합니다. 사찰에서 뒷간이 가지는 의미는 결국 비우는 일을 통해 근심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비움의 미학이 아닐까요.

 

Q. 공동기획전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최석현_가장 많은 고민을 하고 힘들었던 부분은 바로 실제 석실 안에서 출토된 유물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석실에서 출토된 것은 기와가 폭삭 주저앉으면서 쌓인 기왓장과 목탄의 흔적 정도이기 때문에 전시물을 마련하려면 많은 상상력이 필요했습니다. 석실이 있는 회암사지의 현장이 아닌 전시장에서 어떤 유물로 그 공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죠.

 

 

Q. 전통사찰의 뒷간문화에 대해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최석현_사찰에서 뒷간을 ‘해우소’로 부르는 이유는 잠시라도 근심을 내려놓고 명상과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사색에 대한 체험 공간을 좀 더 제시해 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더불어 지금까지 사용하던 것들이 버려지거나 현대식으로 바뀌어서, 찾는다고 찾았는데도 전통 사찰의 뒷간에 대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자료가 한정적이라 관람객의 흥미를 더할 수 있는 체험 공간을 더 많이 마련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Q. 회암사지와 관련해 새로 기획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최석현_지난해부터 회암사지라는 콘텐츠를 가지고 스토리를 꺼내 회암사지 왕실축제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회암사가 왕실사찰이었기 때문에 태조 이성계가 회암사에 오는 어가 행렬 모습을 재현한 것인데요, 올해는 오는 10월 첫째 주에 제2회 회암사지 왕실축제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또 전시 쪽으로는 9월에 회암사를 비롯한 왕실 후원 사찰들이 왕실로부터 어떤 후원을 받아 사찰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왕실불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낼 예정입니다.

왼쪽부터 이성곤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최석현 양주회암사지박물관 학예연구사, 최미옥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강진영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원, 노윤경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원

 

Q. 마지막으로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최석현_이번 공동기획전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전시라기보다는 기본적인 정보를 가지고 회암사지의 거대한 뒷간의 규모를 추정·재현함으로써 대가람의 전각들과 그 안에 담긴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상상해 보기 위해 마련된 전시입니다. 스님들의 화장실 이용수칙인 입측오주入厠五呪도 살펴보고 송광사와 선암사에 있었던 재미있는 뒷간 일화 등 이곳에서 잠시나마 쉬면서 해우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는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과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의 공동기획전 <대가람의 뒷간>은 2018년 4월 19일(목)부터 2018년 7월 1일(일)까지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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