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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발견

안경 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

난 평생 안경에 포박되어 살았다. 언제부터 썼는지 떠올리기도 싫다. 아주 오래 전 어릴 적 일이니까. 몸에 무얼 하나 더하는 일은 부담이다. 무게가 됐건 크기가 됐건 거추장스럽고 불편함이 더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홀딱 벗고 잤을 때 제일 홀가분하지 않던가. 렌즈와 이를 얽어매는 틀이 전부인 안경을 우습게보면 안 된다. 별것 아닌듯한 무게가 콧잔등을 눌러대는 중압감은 지구 전체를 짊어지고 다니는 것만큼 크다.

 

안경잡이의 불편이 어디 하나 둘인가. 겨울이면 서리는 김에 혼미해지기 일쑤고 여름이면 땀으로 흘러내리는 걸 추켜올리느라 정신이 없다. 나이가 들면 손에 닿는 곳곳에 안경을 두어야 안심이다. 이래저래 안경 쓰는 이는 멀쩡해 보이는 장애를 달고 산다. 슬그머니 눈 속에 집어넣는 콘택트렌즈로 갈아타고 싶었다. 아니다! 작은 불편 때문에 안경 순혈주의자의 지조를 저버리는 건 불경스러움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덜 괴롭다. 안경을 사랑하기로 했다. 타고 난 팔자는 바꾸지 못해도 제 얼굴의 인상은 바꿀 수 있다. 내겐 안경이란 든든한 ‘빽’이 있다. 이래저래 모으게 된 안경의 숫자가 열다섯 개를 넘겼다. 처박아 두고 쓰지 않는 안경은 없다. 그날의 기분과 입은 옷에 따라 바꿔 끼는 변신의 즐거움을 즐겨야 하니까. 안경은 이제 내 삶의 방식을 드러내는 강력한 아이콘이 되었다.

 

병풍 앞에 앉아 있는 노인의 인물화. 작은 상에는 책과 필통, 안경 등이 놓여 있음_국립민속박물관
안경을 쓰고 있는 석남 송석하 유영

 

우리나라 안경 역사는 유럽에 바탕을 둔 변형의 과정

뒤늦게 안경의 유래와 종류가 궁금해졌다. 안경을 아이 웨어eye ware로 취급하는 유럽이다. 미술과 디자인 같은 독립된 장르로 여겨 관련 전시와 책의 발간이 활발하다. 안경연감이나 디자인을 다룬 콘텐츠로 관심이 옮아갔다. 독일의 예나는 광학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좋은 렌즈 만들기로 유명한 ’칼 자이스‘사도 이곳에 있다. 예나의 광학박물관을 들러보는 건 순서다. 전시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광학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안경이었기 때문이다. 시력 보완 목적으로 출발한 초기 안경이 감성 충족을 위한 패션으로 진화하는 과정은 신선했다. 내가 쓰고 다니는 안경의 계보가 어디서 갈라져 나왔는지도 알았다. 상상 초월의 안경 디자인은 다채롭고 풍요로웠다. 우리나라 안경의 역사는 결국 유럽에 바탕을 둔 변형의 과정이라 이해했다. 예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보았던 안경의 형태는 이미 유럽에 있었던 것들이니까. 원조를 확인하지 못했다면 엉뚱한 상상만 펼칠 뻔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안경 쓴 이를 찾아보았다. 생각보다 빠르다. 임진왜란 무렵의 이항복이라는 설과 16세기 후반 조선통신사로 파견된 김성일로 나누어진다. 국내에서 만들었다는 김성일의 안경은 실물로 남아있다. 놋쇠 프레임에 볼록렌즈를 끼워 끈으로 귀에 건다. 조선의 임금 가운데 정조가 처음 안경을 쓴 기록이 남아있다. 외침의 여파로 바깥 세계의 문물을 받아들인 사회적 분위기가 다가온다. 이후 실학의 영향으로 실사구시實事求是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안경의 보급도 늘어나게 된다. 빈약한 자료를 근거로 한 추측이긴 하지만 안경은 대략 15세기 이후 꽤 폭넓게 사용되었다. 유럽에 비해 시차도 크게 벌어지지 않는다. 하긴 눈 침침하고 보이지 않는 증상이 동서양이라고 다를 게 없긴 하다.

 

 

안경은 신분과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구한말까지 일본이나 중국이 수입 안경의 루트 역할을 했다. 국산 안경의 제작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18세기의 인물인 강세황은 안경 만드는 법을 문집에 남겼다. 다양한 형태의 안경들이 남아있는 이유를 여기서 찾아볼 수도 있겠다. 직접 만들었건 수입품이던 안경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19세기 우리나라에 머물렀던 미국 선교사는 경주 남석으로 만든 안경을 15달러 에 샀다는 기록을 남겼다. 지금의 돈 가치로 환산하면 백만 원 정도 되지 않을까. 안경이 사대부의 신분과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젊은이들은 안경 쓰기를 꺼렸고 어른 앞에선 일부러 벗는 예를 갖췄다. 안경을 쓴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불편한 건 마찬가지였다.

 

박물관에 진열된 안경을 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다. 수입품과 국산품은 재질과 정교함이 다르다. 날렵한 철사나 거북 껍질로 만든 안경은 유럽이나 일본에서 만들었기 십상이다. 정교하고 얇은 프레임은 좋은 재료와 높은 기술 수준의 증거다. 당시 조선의 실력으론 따라갈 수 없는 지점이기도 했다. 국산품은 얇은 금속제가 보이지 않는다. 테의 두께가 두껍고 투박하며 양 안을 연결하는 브리지 부분이 거칠고 각이 졌다. 안경만큼 중요한 안경집의 호화스러움도 떨어진다. 작은 알맹이가 펼쳐져 있는듯한 상어피나 가죽으로 만든 것이 보이지 않는다. 안경 쓴 슈베르트 초상을 보신 적 있으신지? 콤플렉스 덩어리에다 못 생긴 슈베르트는 고독한 지식인의 인상으로 바뀌어져 있다. 인상이 날카로워 보이는 얇고 둥근 금속 안경테를 쓴 효과다. 인상을 바꾸는 데 안경만큼 극적인 변화를 주는 물건이 있을까. 1920~30년대 동경 유학생들의 사진을 유심히 보라. 많은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가는 금속 안경테를 쓰고 있을 것이다. 제 삶 속에 그렇게도 끌어들이고 싶었던 서구 동경의 몸부림이 느껴진다.

 

 

얼굴에 쓰는 안경은 이래서 재미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는 변화의 내용을 흥미롭게 지켜봐야한다. 과거의 안경을 딛고서야 오늘의 세련됨이 납득된다. 들여다보면 변치 않는 아름다움이 담겨있다. 클래식이란 이런 것이다. 낡아도 추하지 않은 물건에 보내는 애정은 식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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