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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저장소

뒤죽박죽 별장으로의 여행

몇 년 전 가까이에 사는 사진작가 한 분과 저녁 시간을 함께 보낼 때의 일이다. 가족이 모두 여행 중이라 시간이 여유로우니 저녁 식사 후에 노래방에 가서 딱 한 곡씩만 노래를 부르자는 그의 제안으로 우리는 노래방으로 향했다. 들어가자마자 그가 먼저 부른 노래는 윤종신의 「오래전 그날」이었다.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 그때가 너도 가끔 생각나니/ 뭐가 그렇게도 좋았었는지 우리들만 있으면(이하 생략)”

 

이 노래가 그에게 어떤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지만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 지으며 노래하는 그의 표정만으로도 그의 추억을 엿보기에는 충분했다.

 

들국화 1집 음반, 비틀즈 음반 자켓_국립민속박물관

 

특정한 노래를 들을 때 우린 특정한 시대, 풍경, 사람, 감정 등을 떠올린다. 웜홀을 통해 시공간을 가로질러 가듯 그렇게 3~4분간의 짧은 여행을 경험한다. 나만이 간직하고 있을 법한 추억, 미처 남에게 말해보지 못한 기억, 그런 것들이 사방에 가득 쌓여 있지만 한 번도 제대로 정리해보지 못한 뒤죽박죽 별장 속으로의 짧은 여행 말이다. 그 별장 속은 따뜻하고, 먹먹하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때로는 가슴 저리다. 물론 노래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웜홀의 반대 세계로 바로 돌아와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경험, 상상, 감정 등 무형의 이미지를 가능한 한 다양한 형식과 방법으로 가공·저장하고자 애쓴다. 한데 이 무형의 이미지는 총체적 경험이어서 한두 가지 형식으로 온전히 기록되지도 않거니와 가공·저장 과정에서 불가피한 손실이 발생한다. 다행히도 우리의 뒤죽박죽 별장 속에는 다양한 형식과 방법조차 담아내지 못했던, 불가피하게 손실되었던 이미지의 파편들이 추억·기억·감정·상상 등의 여러 이름으로 보관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노래를 듣거나 부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노래는 지극히 감성적이고 간편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짧은 여행을 선사한다.

 

 

뒤죽박죽 별장 속 이미지는 엄밀히 말해 노래 자체에 담긴 무엇은 아니다. 개인들이 제각기 노래에 붙인 의미이며 이 의미가 재생산한 잉여이다. 또한 이 안에는 개인적인 것들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어서 우리가 특정 시대의 노래를 부르거나 들을 때 동시대 사람들이 공유했던 감성과 의미를 확인하기도 한다. 시대적 혹은 역사적 기억과 같은 거창한 단어를 동원하지 않아도 좋다. 아이돌 그룹 컴백 공연에서 16년 전으로 돌아간 30대 소녀들과 기쁨·슬픔 혹은 추억·기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그들의 가슴 벅찬 표정들 속에서 말이다.

 

오늘, 아직은 쌀쌀한 출근길 내내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을 수십 번 반복해서 들었다. 노래를 들으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혼자 히죽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뒤죽박죽 별장 속에 보관된 나의 봄날과 의미를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글_위철|국립민속박물관 섭외교육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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