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당시를 경험한 사람들에 의해 기록된다. 옛 조선, 서양인들에 의해 기록된 우리의 터전과 삶은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우리의 역사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또는 다양하게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의 <서양인이 그린 우리 땅, 우리 삶>를 기획한 이진형 학예연구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진형 학예연구사이하 이진형_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의 K-museums 공동기획전으로, 서양인의 기록에 나타난 옛 조선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서양인의 기록에서 우리나라가 등장하기 시작한 13세기경으로, 그들에게 옛 조선은 솔랑기Solangi라 이름 붙은 미지의 장소였습니다. 이후로 우리나라에 대한 직접적인 탐사가 시작되면서 좀 더 상세한 자료들이 수집되었는데요. 이들은 수집된 정보로 지형을 그리고, 조선의 주변국 정세를 살펴 기록했으며, 개항 후에는 여행, 선교, 외교, 학술연구 등 여러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와 활동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되었는데, 서양인들이 남긴 옛 조선의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CORÉE’라고 표기되어 있음 _출처 혜정박물관
이진형_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은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에 소속된 박물관으로 가치 있고 다양한 지도地圖 관련 유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도 외에도 많은 유물들이 있지만, 그동안 지도에만 집중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다른 지도로 교체해도 관람객 분들은 바뀌었는지 모르시는 경우도 많았고, 지도를 어려워하고 재미없게 느끼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박물관을 설립할 때 추구했던 부분은 그대로 가져가되, 지도와 관련된 문화, 디자인 요소, 색감, 지리적 정보, 탐사한 사람의 이야기 등까지 확대하고자 했습니다. 저희만의 생각을 담기 보다는 서양인들이 우리를 봤던 시선 그대로를 전달하고자 기획했습니다.
이진형_ 쉽게 기획하고자 했습니다. 지도는 낯설고 어렵고, 뭔가 공부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학교에 있는 박물관이다 보니 더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데요. 사실 누구나 보는 게 지도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네비게이션, 지하철 노선도, 지도앱 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물관에 소장된 지도라고 하면 왠지 어려운 느낌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조금 더 다양한 전시물을 통해 편하고 쉽고 재미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이진형_ 공동기획전을 처음 하다 보니까 서로 이해하는 것이 다른 부분이 있었습니다. 지식, 기억, 경험 등에서 저희의 틀을 깨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소통을 할수록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고, 전시내용이 한층 풍부해질 수 있었습니다. 이번 공동기획전을 통해 조율하는 방법도 알게 되고, 국립민속박물관은 어떻게 업무처리를 하고 전시 구성에 대해 고민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진형_ 대학 박물관에서 큰 전시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혜정박물관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관련자 분들을 설득했습니다. 개인적인 욕심과 열망도 컸고요. 그런데 전시준비를 시작하면서 다치는 바람에 많이 참여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몫까지 다른 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좋은 전시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전시에 소개된 유물 중 60~70%는 혜정박물관 소장품입니다. 그동안 2~3차례 기증과 후원을 받고, 구입을 하면서 상당히 많은 수의 지도와 민속품, 고서, 근대시기 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외로 전시를 위해 필요한 유물들은 타 기관에 요청 드려서 전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진형_ ‘조선과 일본지도’는 1595년, 조선과 일본만을 표현한 최초의 서양지도로 테이세이라Teixeira, L.와 오르텔리우스Ortelius, A.가 제작했습니다. 조선을 ‘Corea Insvla’라는 명칭의 길쭉한 섬으로 표현했는데, 해상을 통해 우리나라를 관측했기 때문에 남쪽지역만 보고 섬이라고 인식했던 듯합니다. 이 지도로 인해 세계에 우리나라가 더 자세히 알려졌습니다. 또한 ‘조선왕국전도’는 당빌D’Anville이 1737년 제작한 지도입니다. 서양에서 발간된 첫 조선의 전도로 우리나라는 ‘CORÉE’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청나라 황제 강희제康熙帝의 명령으로 진행된 예수회 선교사들의 측량1709~1716 자료가 프랑스에 전해짐으로써 나오게 된 이 지도는 이후 서양에서 발간되는 우리나라 지도의 모본이 됩니다. 이밖에도 헤르만 산더Sander, Hermann Gustav Theodor의 『러일전쟁보고서露日戰爭報告書』와 일기, 그가 찍은 사진들도 꼭 봐야할 전시품입니다. 이 사람은 왜 우리나라를 기록했는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는지 등을 확인해보면 좋을 듯합니다. 열강의 시각도 없진 않지만,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본 시각들도 많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밖에도 폴 자쿨레Paul Jacoulet, 엘리자베스 키스Elizabeth Keith가 제작한 당시 조선의 생활문화를 표현한 목판화 작품을 통해 그들이 우리나라에 갖고 있던 감정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이진형_ 조선에 입국한 서양인들은 조선 현지의 문화, 언어, 복식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만들어 자국에 보고했습니다. 그들의 눈에 담긴 우리 모습은 때로는 생경한 것으로, 때로는 매력적인 것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처음에는 불결하고 미개하다는 인식이 컸지만, 나중에는 조선인들이 중국이나 일본인들보다 기골이 장대하고 잘생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기록들을 읽다보면 서양들의 감정기복이 느껴집니다. 선교사로 온 맥켄지F.A Mckenzie는 일본에 우호적인 성향이었지만, 조선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적으면서 일본이 잘못했다는 기록을 남깁니다. 그러면서 일본을 비난하지는 않는다고 써놓죠. 이러한 서양인들의 시각을 통해 당시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적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진형_ 맥켄지는 러일전쟁, 청일전쟁, 독립운동까지의 우리나라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역사서에서 봤던 것과 조금 다른 시각을 볼 수 있습니다. 전시관에 번역서를 비치해두었으니 시간이 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역사를 쭉 이어서 기록한 게 아니라 단락별로 써놓았기에 관심 있는 부분만 골라서 볼 수 있습니다.
이진형_ 이번 전시를 계기로 조금 딱딱했던 상설전이 부드럽고 다가가기 쉬운 전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이 2005년 개관하였으니 이제는 변화해야 할 시점입니다. 앞으로 지도뿐만 아니라 관련된 문화, 기록 등 다양한 유물들을 통해 새로운 전시로 찾아뵙고 싶습니다.
이진형_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많고, 방문하셔도 지도라서 어려워하시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공동기획전에서는 지도 외에도 다양한 전시품들을 통해 과거 우리 땅과 우리 주변에 대한 정보들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많이 방문해 주셨으면 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과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의 공동기획전 <서양인이 그린 우리 땅, 우리 삶>는 2017년 10월 27일(금)부터 2018년 2월 28일(수)까지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 제2전시실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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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