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강화도 선두포 마을
『The Koreans and their culture 한국인과 한국문화』, 1951년
정족산의 남쪽에 위치한 선두포는 광복 직후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28채의 초가집이 있었고 거주민은 169명 정도였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쌀, 보리, 밀, 수수, 옥수수, 감자, 고구마 등의 작물을 재배했다. 오스굿은 당시 선두포의 가옥분포와 구조를 유형별로 살피고, 식생활과 조리 방법 등에 대해서도 상세히 조사했다.
70년 간 변화상 포착
국립민속박물관은 오스굿의 조사 기록을 바탕으로 2017년 3월 3일 사전조사를 실시하고, 선두포가 속한 강화군 길상면 선두2리까지 공간적 범위를 확대하여 민속조사를 진행 중이다. 강화 남부에 위치한 선두2리는 선두포, 무초내, 동들머리 3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선두2리의 인구는 2016년 기준 139세대로 남성 150명, 여성 150명 총 300명이다. 이 중 2세대 이상을 거주한 원주민의 비율은 40%정도이다. 조사팀은 오스굿이 조사한 1947년부터의 변화상을 살피기 위해 원주민을 중심으로 하여 생활문화 변화양상을 조사하고 있다.
선두2리는 70년 동안 한국전쟁, 간척사업 등 급격한 외부적인 변화를 겪었으며, 기독교의 유입과 최근 새로운 주택단지 조성으로 인한 외지인의 이주로 내부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래서 조사팀은 오스굿의 기록과 유사한 방향으로 마을의 역사, 생업, 일생의례, 식생활, 주생활, 종교 생활 등의 생활문화 변화상을 참여관찰을 통한 조사·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300여점의 수집유물
오스굿은 3개월간 강화도에 머물면서 민속조사와 더불어 각지의 여러 가지 생활유물을 수집했다. 그 결과 342점의 유물이 수집되었으며, 이 자료는 현재 예일대학교 피바디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342점의 유물 가운데 강화도에서 수집한 유물은 228점이며, 선두포에서 수집한 유물은 156점이다. 강화도에서 수집한 유물은 선두포가 속한 길상면, 강화읍, 양도면, 화도면, 전등사에서 수집한 것이며, 강화도 이외에는 전남, 강진, 경주, 고령, 공주, 서울, 성주 등에서 수집했다.
조사팀은 수집유물을 확인하기 위해 2017년 4월 22일부터 4월 28일까지 예일대학교 피바디자연사박물관을 방문하여 유물의 입수경위와 현재 상태, 향후 활용 여부 등을 살폈다. 오스굿이 수집한 유물의 용도는 대부분 의·식·주에 관련된 것이다. 그 가운데 강화도에서 수집한 228점의 유물은 도자기 파편을 제외하고 221점이다. 아카이브 분류표를 기준으로 하여 용도를 살폈을 때 생업, 의식주와 관련된 유물이 주를 이룬다. 농기구, 바구니, 어업도구 등 생업에 해당하는 유물이 33%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바지저고리, 짚신, 갓, 버선 등 의생활에 해당하는 유물이 28%로 나타난다. 이것 이외에도 소반, 수저, 똬리, 이엉, 등잔, 인장, 병풍, 사주단자, 터주가리, 수질, 요질, 제기, 화투, 축구공 등 식생활, 주생활, 종교, 의례, 놀이 등 생활문화 전반에 걸쳐 유물이 수집되었다. 1947년 오스굿이 수집한 유물은 일부를 제외하고 실제 생활에 사용하던 살림살이이다.
따라서, 조사팀은 오스굿이 수집한 유물을 바탕으로 현재 선두2리의 살림살이 조사도 진행한다. 이번 살림살이 조사는 우리 관에서 기존에 진행하던 살림살이 조사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오스굿이 수집한 유물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마을에서 다수의 살림살이를 소장하고 있는 가정을 선택하여 1947년 당시에 수집된 유물 중 현재 사용 여부와 대체용품의 여부, 용도, 입수형태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70년이 지난 세월 속에서 살림살이의 변화양상을 추적하고자 한다. 이와 더불어 오스굿이 관심을 가졌던 살림살이인 수수 빗자루, 가리, 지게는 마을 주민이 직접 제작하고 그 과정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했다.
‘코 큰 외국인학자’ 오스굿이 강화도 길상면 선두포 마을을 조사한 지 올해로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본격적인 마을조사에 앞서 조사단은 오스굿 책자에 등장하는 사진을 들고 마을회관의 노인들을 찾아뵈었다. 사진 속의 인물과 공간, 농기구와 어구 등에 노인마다 한 마디씩 하면서 조사단은 어느덧 어르신들과 교감을 하게 되었다. “‘코 큰 학자’가 우리 집 사랑채에 들러서 어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어.”라며 80대 중반의 노인은 과거를 회상하고, 사진 속에 등장하는 어린 아이는 어느덧 80세에 가까이 이르렀다. 또한 책 속의 수수 빗자루는 여전히 안마당을 쓰는 도구로 사용되고, 마을공동 우물은 여전히 물이 흐르고, 과거에 사용했던 연자매는 한쪽 공간에 벌렁 드러누워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번에 이루어지는 70년만의 생활문화 변화상 조사는 현재의 기록이지만 그 이후 또 70년의 세월이 흐르면 누군가가 이곳을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