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보기 PDF 박물관 바로가기

인터뷰

책, 삶이 맞닿은 곳에서의 즐거움

책에 대한 선호도와 취향, 습관은 사람마다 제각각이지만 좋든 싫든, 자주 읽든 멀리하든 책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 어쩌면 많이 촌스럽고 식상한 문구이긴 하지만, ‘독서의 계절’이라는 가을을 맞아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인문분야 박태근 MD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책을 통해 독자와 소통,
독자의 상황과 기대를 기준으로 책 추천

 

알라딘 박태근 MD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온라인 서점인 알라딘으로 자리를 옮긴 후 책을 매개체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그가 담당하는 분야는 인문, 사회, 역사, 과학으로, 조금은 어렵고 지루할 수 있는 책들을 그만의 시선으로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을 한다. 진흙 속에 묻힐 뻔한 진주 같은 책들이 그로 인해 조명을 받기도 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온라인 서점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곳에서 독자들이 활발하게 소통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생긴 책의 세계에서 편집자로서 해볼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품게 되었는데요. 마침 알라딘에서 MD를 채용하면서 편집자에서 MD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한 해에도 수만 종의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선호하는 장르나 작가, 흥미나 필요에 의해 책을 고를 수 있겠지만, 독자들은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어려워한다. 책 뒤표지 또는 인터넷 서점 책 소개에 적힌 단편적인 줄거리나 짧은 추천사만으로는 부족하고, 제목이나 표지에 이끌려 책을 선택했다가 실망한 경험도 있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 중에 시간을 쪼개 독서를 하는 것도 힘들지만, 책을 고르는 것부터가 고역인 것이다. 그렇다면 박태근 MD는 책을 어떻게 선택할까?

exhibit_img15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알라딘 박태근 MD

 

“저도 책을 추천하는 데 별다른 원칙은 없습니다. 늘 독자의 상황과 기대를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MD로서 일반 독자 다수에게 책을 권할 때는 시장에서 어느 정도 반응이 예상되거나 저와 독자가 속한 공동체에 필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가를 고려합니다. 주로 모두를 만족시키기보다는 일정 수요에게 확실하게 가 닿을 수 있는 책을 고르는 편이죠. 그래야 확산을 위한 시작점이 마련될 수 있으니까요.”

그는 평소 담당인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의 책을 자주 접하지만, 책을 소개하는 매체에 따라 어린이와 청소년, 에세이, 경제‧경영 분야도 자주 둘러본다. MD로서 많은 책을 읽어야 할 것 같지만, 의외로 완독해야 하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한다. 대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독서하거나 판단을 위해 적절한 부분만을 찾아서 읽고 있다.

“최선을 다해 읽는 데까지 읽고,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판단을 하는 셈이죠. 책 외에도 출판사의 소개글과 판매통계 등 보조자료의 도움을 받고 있으니 뜬구름 잡는 식은 아니라고 변명을 해봅니다.(웃음) 그 외로 방송이나 원고 준비를 위해 읽는 책들이 일주일에 두세 권 정도 되고, 개인적으로 읽는 책은 일주일에 한 권이 채 되지 않는 듯합니다. 사실 직장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일주일에 책 한 권을 읽으면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웃음)”

 

가장 많은 시도를 하는 문화콘텐츠,
독자들의 활동도 활발

 

이미 오래 전부터 늘 책, 그리고 출판업계는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을 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움직임, 새로운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몇 해 전에는 작가나 유명인사 등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와 나누는 북콘서트가 인기를 끌었고, 작가의 강연회나 독자와의 대화 등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책 판매량 증가를 위해 인터넷 서점마다 소장가치 있는 사은품들을 앞 다투어 내놓고 있기도 하다.

“아마 문화콘텐츠 가운데 가장 많은 시도를 하는 영역이 책일 겁니다. 한두 마디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채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죠. 출판업계가 주도하는 다양한 강연이나 이벤트도 있고, 각 온‧오프라인에서 진행하는 행사도 있고요. 독자들 역시 이러한 시도에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고 있습니다. 꽤 오래 전부터 독서소모임들이 운영되었는데, 최근에는 다시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어쨌든 책이 책으로, 각자의 독서가 각자의 독서에서 끝나지 않고 다른 경험과 새로운 만남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방식의 시도가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는 최근 도서시장에서 일어난 변화로는 페미니즘 도서시장의 성장을 꼽는다. 종수와 판매량뿐 아니라 내용이 다양성도 함께 늘었고, 무엇보다 책과 사회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고 말한다. 출판사 편집자로서, 온라인 서점 도서MD로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책과 함께해온 그이기에 책시장과 문화의 변화를 직접 체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그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책을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면 어떤 내용을 담고 싶을까?

inter_sl01_170926
inter_sl02_170926

“조선시대 학자나 장서가의 서가를 복원해보고 싶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책이 있었는지, 그 책들로 어느 정도의 세계를 경험하고 지식을 넓혔는지, 그들의 개성을 담은 서가가 어떤 모습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책은 세상만사 가운데 일부분,
편하고 즐겁게 경험하길

 

책을 읽고 고르고 추천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그가 지금까지 읽은 책만 해도 양이 상당할 터다. 그렇다면 그가 꼽는 인생 최고의 책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늘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 N.K. 샌다즈 저》를 꼽습니다.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이야기, 그러니까 즉 최초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인 인류의 유한함이라는 게 참 매력적이고, 그 유한함을 다시 확인할 때마다 마음의 위안을 얻습니다. 할 수 없는 일은 늘 있기 마련이니 그에 실망하고 좌절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 속에서 할 수 있는 재미와 의미를 찾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는 책을 읽을 때 늘 기억해둘 만한 부분의 페이지 귀퉁이를 접어둔다. 밑줄을 긋거나 별표를 그려 넣는 흔적도 남기는 편이다. 다만 노트에 정리하거나 메모를 해두는 것처럼 더 적극적인 행위는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책을 다 읽은 후에는 귀찮을 일을 마쳤다는 듯 바로 책을 덮어두고 다른 일에 빠져드는 편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다시 책장을 넘기면서 책에서 받은 인상과 기억을 머릿속에 정리하죠. 저라고 특별하지는 않아요.(웃음) 그리고 모든 사람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책을 읽고 나면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기억하는지 묻고 대답하는 일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책은 많고 많은 세상만사 가운데 일부분일 뿐이고, 책의 세계는 한없이 넓어서 학습하는 태도로는 감당이 되지 않을 게 분명하니까요.”

책이 각자의 삶과 맞닿은 부분에서 편하고 즐겁게 경험하는 무언가가 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하는 박태근 MD.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책 한 권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세계적인 독서가 알베르토 망구엘이 쓴 《은유가 된 독자》를 꼽는다.

“이 책은 여러 작품 속에서 독자의 모습을 찾아서 그간 독자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졌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독자는 책 안이 아니라 책 밖에 있는 외부인이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여행가, 은둔자, 책벌레로 이야기되던 독자가 오늘날에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는지를 자신에게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박태근 도서MD | 알라딘
인터넷 서점 알라딘 인문 MD로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고 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살고 있다.
더 알아보기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등록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