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좋아지거나 혹은 더 나빠질 때면 항상 조명되는 곳이 있다. 우리나라의 유일한 실향민 집단정착촌인 속초 아바이마을이다. 이곳에는 1950년 한국전쟁으로 피난 내려온 함경도 실향민들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정착하여 살아온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국립민속박물관과 속초시립박물관 공동기획전 <실향을 딛고 세운 도시, 속초>를 기획한 김만중 학예연구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김만중 학예연구사이하 김만중_ 우수한 지역문화를 발굴해 소개함으로써 지역 발전활로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하는 ‘K-Museums 사업’에 선정되어 국립민속박물관과 함께 개최한 공동기획전입니다. 6·25전쟁이라는 민족사의 커다란 아픔을 딛고 실향민들과 함께 일군 속초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속초를 일군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창이배’, ‘명태낚시’, ‘물지게와 물통’ 등 유물과 사진, 동영상 등 140여 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김만중_ 속초는 실향민의 도시라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실향민들은 속초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속초리’는 어업의 활황과 실향민의 유입으로 활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또한 속초는 설악산 개발과 함께 발전하게 된 관광산업으로 인해 새로운 성장방향을 찾았습니다. 따라서 실향민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또 속초가 실향민의 삶과 더불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중심으로 기획했습니다.
김만중_ 전시품 중 개인유물이 몇 점 소개되었는데, 이 중 ‘도민증’도 있었습니다. 2013년에 속초 청호동에서 여창석이라는 실향민 분을 조사했었는데요. 그때 이분이 아버지인 여봉훈 님의 도민증을 보여주셨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위해 다시 한 번 여창석 씨를 찾아갔는데, 그 사이 세상을 떠나셨더라고요. 다행히 가족들이 도민증을 잘 보관하고 계셔서, 기증을 요청 드렸는데 유품이다 보니 고민을 많이 하셨었습니다. 그러다가 전시를 3일 남겨놓고 기증을 해주셨습니다. 워낙 전시가 얼마 남지 않아서 유물촬영도 하지 못했고, 같은 강원도이긴 하지만 다른 지역 도민증을 전시했었는데 급하게 교체를 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걱정이 되는 것이 실향민 분들이 연세가 많으시기 때문에 이분들이 돌아가시면 소지품들도 함께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후손들은 실향민 분들의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유물을 통해서라도 그 당시 삶을 엿볼 수 있을 텐데, 그분들의 소중한 유물들이 사라질까봐 안타깝습니다.
김만중_ 속초시립박물관은 2005년 개관하면서 매년 조금씩 전시 개편을 진행했지만, 전체 틀은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번 공동기획전을 국립민속박물관에 요청하여 상설전시로 진행하면서 12년 만에 전체적인 개편을 한 것과 다름없는데요. 공동기획전을 준비하다보니 우리 박물관의 자료들이 정리 안 된 부분들이 많았습니다. 주제에 맞는 자료가 준비되어 있지 못한 것이었죠. 상설전시는 몇 년 정도 길게 기간을 잡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더 다양한 부분들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김만중_ 프롤로그 ‘창이배, 고깃배에서 생명의 배’에서는 창이배의 변신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6·25전쟁을 기점으로 한 변화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창이배帆船’는 큰 돛과 작은 돛을 앞뒤로 배치한 범선돛단배으로, 동력선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까지 함경도와 강원도 지역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요. 배의 크기에 따라 5명~10명가량의 선원이 탔는데, 피난선으로 사용될 때에는 수십 명에서 100명이 넘게 탔다고 합니다. 많은 실향민들이 창이배를 타고 속초로 유입된 것이죠. 또한 ‘갯배’는 속초 시내와 청호동 아바이마을 사이를 오가며 사람과 물자를 나르던 배입니다. 아바이마을 사람들은 잡은 고기를 시장에 내다 팔거나 마실 물을 얻고, 학교에 가기 위해 물길을 건너야 했습니다. 따라서 ‘갯배’는 속초 원주민과 실향민, 남한과 북한을 잇는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북에서 몰려든 실향민의 정착을 돕기 위한 지침서인 ‘난민등록실시요령’과 ‘양민증’, ‘전시학생증’ 등 각종 증명서들, 실향민의 살림살이들을 재현한 단칸방 판잣집의 의복, 화로, 등잔 등도 당시 실향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전시품들입니다.
김만중_ 함경도 실향민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해서 아바이마을로 불리는데요. 1950년 한국전쟁으로 피난 내려온 함경도 실향민들이 잠시 기다리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속초 청호동 모래사장에 임시로 정착하면서 만든 마을입니다. 모래사장 땅이라 집을 짓기도 쉽지 않고 식수 확보도 어려운 곳이었지만, 실향민들은 같은 고향 출신사람들끼리 모여 살면서 신포마을, 정평마을, 홍원마을, 단천마을, 앵고치마을, 짜고치마을, 신창마을, 이원마을 등 집단촌을 이뤘습니다. 며칠이면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이곳에 정착한 실향민들은 반세기도 훨씬 넘는 긴 세월을 지내오고 있는 것이죠. 아바이마을은 분단과 통일염원의 상징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만중_ 더 많은 분들은 인터뷰하고 싶었는데, 한사코 거절하셔서 다섯 분 정도만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고향으로 가고 싶으세요?”라고 여쭤봤더니 “나는 필요 없다. 내 자식들이 가보겠지.”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현재 우리나라 정치상황 상 통일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이분들에게 고향을 방문할 기회를 주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저도 다른 지역에 한동안 가 있으면 고향이 그리워지는데, 이분들은 오죽하실까 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매년 남북대화가 좋아지거나 또는 나빠질 때면 많은 언론에서 속초를 찾는데요. 이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원하는 걸 하실 수 있도록 여론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실향민 분들이 70~90세로 연로하시기 때문에 인터뷰를 하는 내내 생전에 고향을 한 번이라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김만중_ 그동안 속초시립박물관에서는 실향민 문화, 지역문화, 어로문화 등을 주기적으로 다뤄왔습니다. 이번 공동기획전을 계기로 지역이 갖고 있는 문화들을 소개하기 위해 내년에는 어로문화를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뤄보려고 합니다. ‘K-museums 사업’은 지역박물관에 새로운 활력은 주고 있습니다. 지역이 가진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주고, 지역주민들에게도 굳이 서울에 가지 않고 전시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앞으로 실향민 문화 등 지역문화를 알릴 수 있는 더욱 다양한 전시들을 기획할 예정입니다.
김만중_ 속초만의 문화가 무엇인지 물으면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느 지역의 작은 마을이라도 저마다의 특징과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공동기획전도 속초가 갖고 있는 문화, 실향민들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속초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이자, 우리나라 근현대의 변화도 함께 볼 수 있는 전시이기 때문에 꼭 한 번 관람하러 오시길 바랍니다.
국립민속박물관과 속초시립박물관의 공동기획전 <실향을 딛고 세운 도시, 속초>는 2017년 9월 13일(수)부터 2017년 10월 29일(일)까지 속초시립박물관 제2전시실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