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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시

추억과 기억의 저장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이 누군가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후세엔 이 시대를 반영하는 역사적 자료가 될 수 있을까? 때론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기증을 통해 개인들의 기억이 담긴 자료들을 보관하는 기억저장소가 되고 있다. <기억의 공감共感, 2017년도 기증자료전>을 기획한 임진아 학예연구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Q. 이번 기증자료전에 대해 소개해 달라

임진아 학예연구사이하 임진아_ 2016년 한 해 동안 기증 받은 자료를 전부 모아서 전시한 기증자료전입니다. 51명에게 3,013점을 기증 받았으며, 이를 모두 전시할 수는 없어서 기증하신 분들의 대표작 1~2점을 모아서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전시가 어려운 자료는 영상으로 제작하여 상영하고 있습니다.

Q. 이번 기증자료전의 기획 의도는 무엇인가?

임진아_ 전 해에 기증받은 자료를 이듬해에 전시하는 방식의 기증자료전은 2014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난해에도 기증을 받으면서 2017년에 전시를 해드리겠다고 말씀드리고 기증을 받아온 셈이죠. 올해 6월 14일부터 기증자료전이 열렸고 하루 전날 기증자 분들을 초청해서 행사를 가졌습니다. 내년부터는 날씨가 좋은 5월경에 ‘기증자의 날’을 선정하여 기증자료전과 기증자 초청행사를 열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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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경도 놀이판, 오현근 기증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Q. 기증자료전을 기획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임진아_ 기증자분들이 굉장히 다양하게 자료를 기증하시기 때문에 한 자리에 모아 전시하려니 콘셉트를 맞추기 어려웠습니다. 다른 자료들과 안 어울린다고 뺄 수도 없고, 필요하다고 더할 수도 없으니까요.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주제를 정하고 전시의 기승전결을 만들려고 시도하였다가, 결국 자료 한 점 한 점을 돋보이게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자료마다 배경판을 넣고, 뒷면에 LED로 조명을 줘서 각각의 자료가 부각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련한 기억 속에서 추억이 빛을 발하면서 떠오른다는 콘셉트입니다.

Q. 전시회명 ‘기억의 공감’의 의미는 무엇인가?

임진아_ 전시 진열장 양측면으로 전시품의 네임카드가 있습니다. 기증자의 성함과 함께 어떻게 사용했던 물건인지를 소개해 놓았습니다. 가령 ‘조모가 생전에 아끼셨던 재봉틀’이라고 적어놓은 것이죠. 실은 다른 사람이 기증한 재봉틀이고, 다른 사람의 기억이 담겨있지만, 보고 있으면 자신의 기억을 떠올리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할머니가 사용하셨던 재봉틀인데 내 할머니가 쓰셨던 물건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일차적으로 기증은 물건을 공유하는 것이지만, 나아가 거기에 담긴 기억에 공감한다는 취지로 전시회명을 지어보았습니다.

Q. 전시를 준비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임진아_ 기증자 분들이 기증하신 자료들 중에 어떤 것이 대표작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다 중요한 가치를 가진 것이죠. 따라서 여러 가지 모양새를 고려해서 임의대로 대표작을 선정하는 게 어려웠습니다. 자료가 한정되어 있다는 점도 힘든 부분 중 하나입니다.

Q. 이번 전시의 대표적인 전시품을 소개해 달라

임진아_ ‘경희궁 회상전 사진’은 프리실라 웰본 에비Pricilla Welbon Ewy 여사가 기증한 자료입니다. 기증자는 대한제국 말기 활동했던 선교사 아서 G. 웰본의 손녀이자, 1946~1947년 한국에서 미군정청 통역관으로 재직했던 헨리 G. 웰본의 딸로, 2015년부터 3차례에 걸쳐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한국과 굉장히 인연이 깊은 분이시죠. ‘경희궁 회상전 사진’은 친할아버지와 함께 선교사 생활을 했던 친할머니 새디 웰본의 소장품이며, 1930년대 화재로 소실된 회상전의 구한말 모습을 담고 있는 희귀본입니다. 굳이 기증의 의미를 떠나서도 자료 자체가 큰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현근 기증자가 기증한 ‘승경도陞卿圖 놀이판’은 고조부 때부터 전해진 것입니다. 승경도 놀이는 주사위를 던져 종이 말판 위에서 누가 가장 먼저 높은 관직에 올라 퇴관退官하는가를 겨루는 것인데, 한학자였던 고조부와 교육자였던 아버지 덕분에 어렸을 때 형제들과 함께 천자문을 외우고 승경도 놀이를 했던 추억이 깃들어 있습니다. 또한 임미정 기증자의 ‘콩고 수호신상’, ‘카메룬 여인상’, ‘기니 수호신상’ 등은 기증자의 남편인 고 박희문 선생이 생전에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수집한 것입니다. 고 박희문 선생이 수집한 세계민속자료 1,000여점은 2006년 서울특별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지구촌민속교육박물관에 기증되었다가,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에 양여된 바 있는데요. 국립민속박물관이 국내민속자료뿐만 아니라 세계민속자료도 수집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전시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기증품에 담긴 사연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임진아_1762~18361933년생이신 정의춘 기증자가 기증한 재봉틀은 결혼했을 때 시어머니가 물려주신 것으로, 한국전쟁 당시 분해해서 남한으로 가져오셨다고 합니다. 당시 전쟁으로 인해 먹고살기 어려웠지만 이 재봉틀로 생계유지를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 재봉틀을 기증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생사고락을 함께한 재봉틀이였기 때문일 겁니다. 이와 함께 장모님과 사위 분이 동시에 기증을 한 자료가 있습니다. 사위이신 이양호 기증자는 서울대학교 교복상의를 기증하셨는데요. 80학번으로 대학교복의 마지막 세대이셨지요. 장모님 되시는 이준의 기증자는 야생풀로 만든 맷방석을 기증하셨습니다. 1956년에 만드신 것으로 깔고 앉거나 방앗간에서 곡식을 빻을 때 사용하셨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전시를 기획할 때 이 두 분이 장모와 사위 관계이신 것을 몰랐는데요. 전시실에 우연히 대학교복과 맷방석이 나란히 전시되었습니다. 대학교복과 맷방석은 어울리는 자료가 아닌데도 보기 좋게 배치하다보니 비슷한 위치에 자리하게 된 것인데요. 개막식 날 자료가 나란히 전시된 것을 본 두 분께서 무척 좋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Q. 매해 기증되는 유물의 수는 어느 정도인가?

임진아_ 1964년 첫 기증을 시작으로 2016년까지 총 1,090명이 46,466점의 자료를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셨습니다. 매년 일정하지는 않지만 근래에는 한 해 1,000~2,000점은 기본으로 기증되고 있으며, 올해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기증하시는 분들 중에는 보관의 어려움으로 기증을 결정하시기도 하고,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후세가 잘 관리해줄까라는 의문으로 기증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시면 안전하게 보관되고, 전시회 등에서 활용도 되기 때문입니다.

Q. 어떠한 자료들을 기증할 수 있나? 기증절차는?

임진아_ 국내‧국외 자료 모두 가능하며 시대적으로도 특별한 제한은 없습니다. 제일 가치를 두는 것이 실제로 사용이 되었는지, 뚜렷한 히스토리메타데이터, Metadata가 있는지 입니다. 이 두 가지에 일단 가치를 둡니다. 또한 현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유물과 너무 겹치면 무한정 기증을 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비슷한 자료가 있더라도 특별한 부분이나 히스토리가 있으면 기증을 진행합니다. 기증철차는 기증을 위해 직접 전화를 주시거나 직접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일반적으로 자료의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요청 드립니다. 사진을 갖고 1차적으로 내부검토를 한 후 기증이 진행될 만하다고 판단되면 직접 자료를 보기 위해 기증을 원하시는 분의 댁으로 찾아갑니다. 그리고 기증원을 받은 후 자료를 국립민속박물관으로 가져오게 되는데요. 여기서 끝이 아니라 자료가 일정한 양이 되면 기증심의위원회를 열어 최종적으로 심의를 합니다. 심의에서 최종으로 통과되면 기증증서를 보내드리고, 만약 탈락이 되었을 때는 다시 돌려드리고 있습니다.

Q. 관람객들이 전시를 통해 무엇을 느꼈으면 하나?

임진아_ 박물관에 기증한다는 것은 자신이 혼자 갖고 있던 것을 국가에 기증하고 여럿이 공유한다는 숭고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전시회명처럼 박물관을 나의 삶과 기억들을 잘 보관하고 저장할 수 있는 친근한 공간이라고 느끼셨으면 합니다. 실제로 전시실에 가보면 관람객 분들이 “맞아, 우리 집에 이런 거 있었어!”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이처럼 기증자료전을 통해 박물관이 내 기억공간저장소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Q. 마지막으로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임진아_ 기증자료전을 보면서 다른 사람의 기억이지만 내 것과 나의 기억을 떠올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것이 기증으로 이어지면 좋지만, 당장 무언가를 기증하지 않더라도 이 공간을 통해 자신의 추억과 기억을 새롭게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을 자신의 추억이나 역사를 보관할 수 있는 친근한 저장소로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 <기억의 공감共感, 2017년도 기증자료전>은 2017년 6월 14일(수)부터 2018년 6월 11일(월)까지 상설전시3관 기증전시실에서 진행된다.

글_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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