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통의상인 한복의 명맥을 이어가려는 시도는 다양해지고 있다. 한복디자이너가 세계로 진출하기도 하고, 일상에서 편하게 입는 개량한복, 경복궁이나 한옥마을 나들이를 위해 이벤트 형식으로 빌려 입는 화려한 한복까지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꼭 한복을 입어야만 전통을 잇는 것일까? 구체관절인형에 한복을 입히는 일,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전통에 숨결을 불어넣는 일일 테다. 구체관절인형용 한복을 만드는 도다리본명 도예린 디자이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구체관절인형용 한복 제작하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과 목조형가구를 전공한 도다리 디자이너가 졸업 후 선택한 일은 바로 구체관절인형용 한복을 만드는 일이다. 어릴 적부터 구체관절인형과 전통적인 아름다움, 판타지 영화, 드라마, 게임 등을 좋아하던 그녀는 대학을 다니며 구체관절인형 옷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고, 2년 전 디자이너 메이커 브랜드 ‘도깨비 주단’을 런칭했다. 전통 복식을 바탕으로 신화적 상상력과 이야기를 더한 한국적인 환상의 세계를 키 40cm~75cm급의 구체관절인형용 의상에 투영시키고 있다.
“‘도깨비 주단’은 유명한 동요가사에 나오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나라)의 느낌이 제가 추구하는 한국적 환상의 세계와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 짓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명주 주紬, 비단 단緞을 써서 ‘도깨비 한복집’이라는 의미를 만들었습니다. 흔히 오래된 한복집들이 〇〇주단이라는 상호명을 많이 쓰는데, 그 어감이 주는 복고적인 느낌이 좋았습니다. 대학생 때는 당시 인기가 더 많고 비교적 패턴이 쉬운 편인 기모노류 의상부터 만들기 시작했다면, 출토복식 재현품이 소개된 책자들을 사다 공부하며 원래부터 만들고 싶었던 한복으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도다리 디자이너가 한복에 본격적으로 매료되었던 것은 중학교 때 시립도서관에서 권오창 선생의 ‘인물화로 보는 조선시대 우리 옷’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면서부터다. 동양화 기법의 전통 초상화 방식으로 궁중의 옷부터 민중들, 무당의 옷까지 다양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만화캐릭터에 한복풍의 의상을 입힌 스케치들을 연습장에 빼곡히 그리곤 했다. 이러한 작업들은 현재에도 영향을 주어 판타지적 요소들을 조선시대 전통복식에 가미하는 방식으로 디자인을 진행하고 있다.
“베이스가 되는 형태의 한복을 놓고, 거기서 조금씩 판타지적인 변형을 시도하는 형식으로 작업합니다. 따라서 전체적인 느낌은 한복인데, 디테일한 부분들은 전통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제작방식의 경우 한복을 전문적인 교육기관에서 배운 적이 없고 순전히 독학으로 책 등을 참고해서 만들기 때문에 거의 창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 지키되 아름답게 변형
두루마기와 반수답호 구성의 선비의상에 바지와 신발, 버선, 술띠까지 함께 제작하는 데는 꼬박 이틀이 걸린다. 사람의 1/3 정도 크기의 인형 옷이지만 사람이 입는 옷을 만드는 것과 같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인형한복이라는 우리의 전통 옷을 만들고 있는 만큼 고증도 필요할 터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보다는 서적이나 사료 등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5~6년 전만 해도 한복 관련 서적이 별로 없었는데, 최근에는 다양한 자료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단국대 석주선 기념박물관에서 나온 책 중에 ‘조선시대 우리 옷의 멋과 유행’, ‘한국전통 어린이 복식’ 등이나 출토복직 재현품들이 실린 자료들을 많이 참고합니다. 무형문화재 선생님들께서 한복 만드는 법을 세세하게 교재 형식으로 쓰신 책들도 구입해서 보고 있습니다. 고증을 하면서 놀랐던 점 중 하나는 조선시대에 남자한복이 여자한복보다 더욱 다양했다는 점입니다. 양반가 여인들은 대체로 집안에 있었고, 남자들이 외출을 많이 했기 때문이었죠.”
도다리 디자이너는 고증을 해서 옛날 한복을 그대로 만드는 것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전통만 답습해서는 현대인들의 눈높이에 차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큰 틀이나, 한복이 기모노나 치파오 같은 다른 동아시아 전통의복과 구분지어지는 특징들은 크게 변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조선시대 한복은 700년 세월 동안 핏도 비례감도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저는 17~18세기의 한복들의 비례감을 좋아해서 패턴을 그릴 때 많이 참고하는 편입니다. 원단의 경우 실제 한복에서 사용되는 본견 실크와 고급 면 등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한복원단을 다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최대한 발이 가늘고 뻣뻣하지 않으면서 촘촘한 원단 위주로 고르고 골라서 쓰고 있습니다. 노리개는 옥, 진주, 산호, 수정 등 전통적인 것과 이질적이지 않은 재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 등 해외에서도 인기
_출처 도깨비 주단
그렇다면 구체관절인형 옷 시장에서 한복의 인기는 어느 정도일까?
“사극의 영향으로 군관이나 무사의 옷이 인기가 많고, 한류 덕분인지 중국이나 미국 등 해외시장에서도 조금씩 주문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올해 4월에 일본에서 열린 돌페어IDolls Tokyo에 참여했었는데, 이후 방문하셨던 해외 인형오너 분께서 인형한복을 대량 주문하시기도 했습니다. 주문하면서 한복이 너무 예쁘다고 말씀하시는데,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인형시장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서브컬처Subculture 미디어에서도 한복이 유행처럼 떠오르고 있다. 대형 만화행사에서는 한복을 주제로 하는 자료용 해설책자나 한복을 입는 창작캐릭터를 그린 일러스트북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사극이나 영화에서 한복을 변형하여 더욱 아름답게 디자인하고, 화려한 액세서리들을 착용하는 것은 이제 새로운 일이 아니다. 이렇듯 한복을 콘텐츠화하는 시도들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무늬나 색이 화려한 기모노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았다면, 요즘은 한복으로 많이 대체되어가는 느낌입니다. 남자한복의 경우 기모노보다 신분과 직업군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고, 아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정하면서도 기품이 있어 현대의 모던한 미감美感과도 잘 맞습니다. 한복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선도 많고, 만들기는 조금 더 까다롭지만 확실히 입었을 때 태가 많이 납니다. 넘치지 않는 적정선의 화려함과 좋은 비례감이 한복을 고급스럽고 아름답게 해주는 디자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콘텐츠로 재생산하는 것도 전통 잇는 것
마지막으로 도다리 디자이너에게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구체관절인형용 한복을 주제로 전시회를 연다면 어떻게 기획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전통과 환상’을 주제로, 완전히 출토복식 재현품처럼 고증을 정확하게 지켜서 인형사이즈로 만든 한복과 그 의상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해서 변형한 한복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함께 전시하고 싶습니다. 디자인 스케치와 한복제작 과정의 이야기들을 같이 보여주면 좋을 듯합니다. 무수한 유‧무형의 전통문화들이 있고, 이를 현대에 살리는 방법으로 개량해서 만들고 생활에서 사용하는 방식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미디어와 콘텐츠들 안에서 전통문화를 표현하고, 영감의 원천으로 사용하는 것도 전통을 살아있게 하는 한 가지의 유효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관절인형용 한복의상은 마니아들이 즐기는 서브컬처다. 하지만 전통을 잇고, 새로운 콘텐츠로 재생산하는 일은 그 형태와 방식이 어떻든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생활사박물관인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언젠가 이러한 문화를 소개하는 일이 그리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목조형가구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에서 제품디자인Design Product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디자인 컨설턴시 SWBKSeoul, TNA Design StudioLondon에서 인턴을 했으며, 가구회사 Kaare Klint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구체관절인형용 한복을 디자인‧제작하는 도깨비 주단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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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복식이 세계속으로 전파될수있는 멋진 일을 하시는 디자이너님!
작품하나하나 너무 고급지고 아름다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