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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존감, 나를 사랑하는 방법

 

지난날을 돌아보면 그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이라는 개념이 나타났는데,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인식한 데서 파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자존감’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자존감 회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이에 대한 강연들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기에, 사람들이 ‘자존감’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신과 전문의이자 책 「자존감 수업」을 펴내기도 한 윤홍균 원장에게 들어보았다.

끊임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삶,
자존감에 주목하게 만든 요인

 

자존감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자존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윤홍균 원장은 자존감의 가장 기본적인 정의를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라고 말한다.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고 만족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 곧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지 또는 낮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레벨을 의미한다. 100점 만점에 70점이라는 숫자로 표현할 수도 있고, 높이로 표현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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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에는 세 가지 기본 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기 효능감’으로 자신이 얼마나 쓸모 있는 사람인지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는 ‘자기 조절감’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본능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는 ‘자기 안전감’으로 자존감의 바탕이 됩니다.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끼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세 가지가 골고루 만족되어야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을 하거나 사람들을 만나거나, 또는 사랑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면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한다. 금방 괜찮아질 때도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또는 어떤 이들은 상처 받은 자존감을 회복하지 못하고 불행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자존감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자존감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 아닐까?

“자존감에 주목하기 시작한 데에는 가치 변화가 큰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비해 삶의 질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어요. 삶의 질을 따지다보면 결국 각자가 무엇을 지향하고, 얼마나 만족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자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대두되는 핵심적인 문제가 자존감입니다. 사회적으로는 IMF를 기점으로 이 변화가 시작됐고,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SNS의 영향도 커지고 있는데요. 과거엔 타인의 삶에 대해 시시콜콜 알 기회가 없었지만 요즘은 눈만 뜨면 남들이 뭘 먹고, 어디서 놀고, 무엇을 하는지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죠.”

그는 SNS가 긍정적인 면도 많지만 타인과 자신을 자꾸 비교하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다고 지적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사는데, 자신만 재미없고 별 볼일 없게 사는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 마음 한구석에 ‘내가 정말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현재 자존감에 대해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된 일종의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자존감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끊임없이 비교하며 열등감을 조장하고, 내 환경을 원망하게 하고, 내 성격이 이상한지 자꾸 점검하게 합니다.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유행하는 것도 이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장과정의 소통능력과 감정조절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환경이 좋지 않을 때는 건강한 마음으로 무장한 자신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자존감이 강해야 상처를 덜 받고 길을 찾을 수 있죠.”

 

‘넌 참 괜찮은 사람이야’
자신에게 위로와 사랑의 말 건네기

자존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그도 사실 한때는 자존감이 무척 낮은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깊은 열등감에 시달리며 ‘뒤처지는 기분’, ‘포기하고 싶은 마음’, ‘중독에 빠져 회망을 놓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어린 시절에는 유약한 아이여서 자신감도 끈기도 없었어요. 나를 믿지 못해서 웬만하면 남들이 하자는 대로 따랐었죠. 또 고등학교 입시, 대학 입시, 재수학원 입시까지 낙방의 연속이었습니다. 의과대학을 다닐 때는 유급을 당해 매일 술과 게임에 빠져 지내기도 했어요. 후배들한테는 멋있는 선배인 척도 했는데 유급이라니 얼마나 부끄러웠겠어요.(웃음) 아침이 되면 친구들은 학교로 가는데 저는 PC방으로 출근하며 방황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돌이켜 보면 자신의 인생은 자존감을 무너뜨렸다 일으키기를 반복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정신과 전문의’라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타이틀을 갖고 있는 그도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문제를 겪었다는 것은 의외의 일로 다가왔다. 사회적인 성공과 자존감을 단순하게 연결시키고 있었기 때문일 터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자존감을 회복했을까? 자존감을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을 타인에게 들으려하지 말고 자신에게 직접 들려주라’는 것입니다. 병원에 찾아오는 많은 분들을 몇 개월 동안 상담하다보면 결국 그분들에게는 ‘괜찮다’, ‘참 힘들었겠다’, ‘넌 괜찮은 사람이다’ 등의 위로와 사랑이 말이 필요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 쉬운 말인데, 그 몇 마디 때문에 오래 아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타인에게 그런 말을 들으려고 기다리지 말고, 자신에게 직접 들려주면 좋겠습니다.”

그는 역사나 심리학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한다.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 혼자만 겪는 게 아니라는 사실만 알아도 불편한 감정이 많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천’을 강조했다. 자존감 훈련을 꾸준히 해야지만 서서히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시대와 나라의 역사‧문화가
개인의 자존감에도 영향 미쳐

 

‘자존감’의 바탕이 되는 ‘자기(Self)’라는 개념은 중세시대에는 드러나지 않았었다. 이 시기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은 부족사회의 사고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정신이나 자기주장을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환경에서는 자존감이 설 자리가 없었다. 자율적이고 자기 결정권을 지닌 ‘개인’이라는 개념, 그리고 ‘자존감’은 15세기 르네상스 시대가 되어서야 나타났고, 이후 계몽주의 시대,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까지 역사적으로​ 몇 단계에 걸쳐 발전했다.

“한 시대,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은 결국 개인의 삶에 결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인간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고,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자기 방식대로 살고 싶어 하고, 안전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이를 발전시키거나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이죠.”

한편으론 나 자신이 아닌 사는 지역,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등에서 자존감을 느끼기도 한다. 오랜 역사를 통해 전해 내려온 문화나 민속이 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과 일치한다면 여기에서도 자존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아있다. ‘자존감을 높이면 정말 삶이 행복해질까?’라는 물음이다. 결국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어 하는 것은, 곧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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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자존감이 높을수록 삶의 만족도도 높아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컨대 지금 힘겨운 연애를 하거나 취업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 중 자존감이 낮은 분들은 그 책임을 모두 자신에게 돌리기 십상입니다. 자책하거나 근거 없는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자존감이 높아지면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상황과 자신을 탓하는 대신 해결책을 찾게 되고, 그 해결책도 조금 더 건강한 방식을 취하게 됩니다. 즉, 자존감은 행복의 결과물이기도 하고, 자존감의 결과가 곧 행복이기도 한 것이죠.”

누구나 인생을 살다보면 적어도 한두 번은 자존감의 위기를 겪을 것이다. 그러나 그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것인지, 위기 속에서 함몰될 것인지는 자신에게 달렸다. 자존감, 이것은 나를 어떻게 지키고 사랑할 것인가의 답이기 때문이다.

정신과 전문의 윤홍균
<윤홍균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원장.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동대학교 의과대학원과 박사 과정을 마쳤다. 주요 관심 분야는 ‘자존감’과 ‘중독’이며, 저서로는 <자존감 수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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