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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일지

‘얼라’는 무슨 뜻인가요?

 

첫 걸음, 첫 사랑, 첫 눈, 살아가며 어떤 일을 하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맨 처음 한 일일지도 모른다. 마을을 연구하는 민속학자가 거쳐 가는 많은 마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마을은 아마도 자기가 맨 처음에 도달했던 마을일 것이다. 2009년 6월 18일부터 2009년 10월 6일까지, 3개월이 약간 넘는 짧은 시간 동안이었고 그 이후로 다른 여러 마을을 거쳐 지나갔지만 여전히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마을은 월하성리다.

2010년 충남 민속문화의 해를 맞아 국립민속박물관에서는 서천군 서면 월하성리에서 마을조사를 진행했었다. 달빛 아래 신선이 논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은 월하성 마을은 산과 달을 닮아 원만한 호선을 그리는 앞 바다를 낀 아담한 마을이다. 썰물 때에는 앞 바다의 띠섬과 쌍도에 갈 수 있을 정도로 너른 갯벌이 드러나고, 물이 차면 검고 짙은 푸른색과 옅은 하늘빛의 물이 서로 섞이어 아름다운 무늬를 볼 수 있고, 전설도 많다.

이토록 아름다운 마을이라 하더라도 조사가 마냥 쉬울 수 만은 없고,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언어였다. 한반도 안에 한국인이 옹기종기 모여 살며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며 살아간다지만, 월하성리에 다다른 순간, 약 10퍼센트의 거짓말을 보태어서,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아부지, 돌 굴러가유~’를 너무 느리게 말하는 바람에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는 옛날 유머처럼 충청도 지역의 말이라면 끝을 길게 빼며 늘어지는, 그래서 천천히 말하게 되는 유형일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마을 사람들은 인터뷰를 하면서 받아 적기를 포기할 정도로 빨랐다. 거의 단 30분 인터뷰에 다른 지역 1시간 인터뷰 한 것만큼의 녹취량이었다! 게다가 생전 처음 듣는 ‘얼라!’까지! 부모님이 경상남도 사천(삼천포 아님) 사람인 나에게 ‘얼라’는 어린아이라는 뜻이었는데, 월하성리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도처에서 ‘얼라!’를 외치니 매우 생소하기 짝이 없었다. 얼라’는 감탄사였다.

‘얼라’는 시작이었다. 풍향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데, 정보가 맞지가 않았다. 일반적으로 동풍을 샛바람, 서풍을 하늬바람, 남풍을 마파람, 북풍을 높바람이라고 하는데, 조사지에서 마을 주민들이 말해주는 ‘하늬바람’을 서풍으로 보면 이야기가 맞지 않았다. 지도를 그리고 풍향을 나타내는 화살표 여러 개를 그리고 나서야 이 곳의 바람명칭이 일반명칭과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곳에서는 북풍이 ‘하늬바람’이고 동풍이 ‘높새바람’이다. 그리고 서풍과 남풍 사이에 ‘늦바람’이 있고, 동풍과 남풍 사이에 ‘산바람’과 ‘내바람’이 있다. 명칭은 같지만 서로 뜻하는 방향이 달라 생긴 오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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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이름만 다른 것은 아니었다. 바다 속에 사는 생물의 이름과 구분법도 서로 달라, 생물을 조사할 때면 지역명칭과 동시에 정식 명칭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아야 했다. 홍합과 담빛의 구분도 그러하였다. 월하성 마을에서는 조개의 끝이 붉으면 홍합이고 전부 검은 빛이면 담빛으로 구분하였다. 겉이 붉은 것은 속이 꽉 차 있고, 검은 것은 속이 비어서 먹을 수 없다고 설명해 주었다.

사실 담빛과 홍합은 색으로도 구분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모양으로 구분하는데 조개 끝의 모양이 갑자기 떨어지면 홍합, 평평하면 담빛으로 구분한다. 핏불고둥이라고 부르는 고둥을 이 지역에서는 ‘삐뚜리’라 부르기도 하고, 조개치레게는 ‘소금장사’ 또는 ‘나뭇꾼’이라고 불렀다. 고둥은 ‘고남박구’, 도둑게는 ‘뱀게’, 눈알고둥은 ‘눈머룩대’라 불렀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지만 이렇게 뜻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니! 머리를 싸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조사를 나가는 것은 그 지역의 문화를 습득하는 것이다. 그 문화를 습득하는 것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그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조사지에서 그들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은 결국 그들이 어떻게 말하고 생각하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얼마나 그것에 성공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최소한 ‘얼라’가 어색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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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이인혜 | 국립민속박물관 섭외교육과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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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조희주 댓글:

    부모님이 경상도 분이신 저 역시 ‘얼라’가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기에, 웹진 제목만 보고 서울사람들은 잘 모르겠구나… 얼라는 아이를 말하는 건데… 하고 생각했지요.
    세상에나~ 그런데, 그런 아름다운 뜻이 숨어있었군요. ‘얼라’가 감탄사라니… 그 많은 바람의 이름에 “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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