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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민속

천자문은 왜 하늘천 따지로
시작할까?

 

천자문은 ‘백수문白首文’혹은
‘백두문白頭文’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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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문> 30.5×21㎝, 필사본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오늘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천자문》은 중국 위진남북조시대魏晉南北朝時代나라의 황제였던 무제武帝가 신하인 주흥사周興嗣(470?〜521년)를 시켜 만든 서책이다.
무제는 양나라의 초대 황제로서 시문詩文에 아주 뛰어났다. 어느 날 무제는 주흥사에게, 동진東晉 때의 유명한 서예가이자 학자인 왕희지王羲之의 행서行書 중 1,000개의 한자를 중복되지 않도록 가려내게 한 뒤, 4글자씩을 한 구절로 묶어 모두 125개의 문장을 완성하도록 명령했다.
그 당시 주흥사는 무제의 노여움을 사 감옥에 갇혀 죽음의 형벌을 기다리는 신세였다고 한다. 그러나 주흥사의 학문을 아까워한 무제가 만약 하룻밤 동안에 ‘천자문’을 완성하면 죄를 용서해주겠다고 하자, 주흥사는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도록 죽을힘을 다해 문장을 지었다. 이 일화 때문에 후세 사람들은《천자문》을 ‘백수문白首文’ 혹은 ‘백두문白頭文’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천자문은 1,000개의 한자, 250개의 구절,
125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개 천자문하면 첫 번째 한자인 ‘하늘 천(天)’으로 시작해 마지막 천 번째 한자인 ‘어조사 야’로 끝나는 1,000개의 한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천자문은 그냥 1,000개의 한자가 아닌 네 글자를 한 구절句節로 하고 다시 여덟 글자 두 구절이 한 문장을 완성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쉽게 예를 들어 말하면, 천자문의 첫 네 글자인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은 ‘천지현황天地玄黃(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이라는 한 구절을 만들고, 다시 다음에 나오는 네 글자인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은 ‘우주홍황宇宙洪荒(우주는 넓고도 거칠다)’이라는 한 구절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천지현황’과 ‘우주홍황’의 두 구절이 합쳐져 비로소 ‘하늘은 검고 누러며, 우주는 넓고도 거칠다’는 뜻을 가진 ‘천지현황天地玄黃하고 우주홍황宇宙洪荒이라’는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각각의 뜻과 의미를 담고 있는 250개의 구절과 125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천자문이 1,000개의 한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자 오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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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천자문》을 구성하고 있는 125개 문장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들 문장이 각각 중국의 신화와 역사 그리고 동아시아 문명의 탄생과 발전 과정은 물론이고 《논어論語》,《맹자孟子》,《시경詩經》,《대학大學》,《중용中庸》,《서경書經》,《주역周易》,《예기禮記》,《사기史記》등과 같은 고전의 정수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천자문》은 1,000개의 한자를 배우고 익히는 한자 학습서가 아니라 동양의 인문과 고전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자 서적으로 배우고 익혀야 마땅하다.

천자문은 왜 하늘천 따지로 시작할까?

 

《천자문》이 ‘하늘천 따지’로 시작하는 이유를 보면, 앞서 말한 천자문을 단순한 한자 학습서가 아니라 동양의 인문과 고전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으로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다.
인간이 창조해낸 신화와 역사의 세계에는 일정한 법칙이 존재한다. 그중 제1법칙은, 모든 신화와 역사는 반드시 ‘창세기創世記’ 곧 천지창조天地創造, 다시 말하자면 우주와 세계의 창조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세계에 대한 고민을 하는 순간부터 우주의 시작, 즉 생명의 시작에 대한 연구는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천자문》역시 이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천자문》의 첫 여덟 글자인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는, ‘하늘과 땅 그리고 우주는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이 여덟 글자가 구성하는《천자문》의 첫 문장인 ‘천지현황天地玄黃하고 우주홍황宇宙洪荒이라’에서 이야기하는 하늘과 땅에 대한 느낌은 검고 누렇다. 파란 하늘을 보면서 왜 검고 어둡다고 했을까? 그것은 인간의 시선이 닿는 하늘은 파랗지만 그 시선 너머의 하늘은 알 수 없는 미지未知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암흑의 세계이고, 그래서 하늘은 검다고 했다. 그러면 땅은 왜 누런가? 그것은 중국 대륙의 특징 때문에 그렇다. 중국 문명은 곧 황하黃河 문명이다. 황하가 실어 나르는 흙은 누런 땅을 이루었고, 누런 땅은 생명이자 공포와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중국의 세계관에서 누런색, 즉 황색黃色은 언제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중심인 중국을 상징하는 색은 황색이고, 또 중국을 지배하는 천자天子의 색 역시 황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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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풍속도첩》 김홍도의 그림 ‘서당’.
당시 천자문 등을 가르치던 서당에서 엄격한
훈장님에게 혼나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_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여기에서 말하는 우주宇宙는 요즈음 우리가 말하는 지구 밖의 세계(우주)와는 다른 뜻을 갖고 있다. 우는 위아래와 동서남북을 뜻하고, 주는 과거와 미래를 나타낸다. 우주宇宙는 ‘시간과 공간’을 뜻하며, 천지天地를 비유하는 말이다. 따라서 ‘우가 넓다〔洪〕’는 것은 천지의 공간이 끝도 없이 넓다는 뜻이고, ‘주가 거칠다〔荒〕’는 것은 지나간 시간과 다가올 시간은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친 상태로 남는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천자문의 첫 여덟 글자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집 우, 집 주, 넓을 홍, 거칠 황’은, 세계와 우주는 인간의 탄생 이전에 존재했으며, 또한 인간의 힘이 닿지 않는 무한한 미지의 영역임을 보여준다. 이렇듯《천자문》은 천지창조와 광활한 우주의 이야기로 시작하기 때문에, ‘하늘천 따지’가 1,000개의 한자 가운데 가장 첫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글_한정주 | 역사 평론가 겸 고전 연구가
역사와 고전을 현대적 가치와 의미로 다시 발견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것을 글쓰기의 목표로 삼고 있는 역사 평론가 겸 고전 연구가다. 역사와 고전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집필하고 강의하는 소박한 모임 ‘고전ㆍ역사 연구회 뇌룡재(雷龍齋)’를 운영하고 있다. 『천자문 인문학』, 『호(號), 조선 선비의 자존심』,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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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1. 박미숙 댓글:

    이 글을 읽고 천자문에 대해서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었네요. 다시금, 천자문의 구절을 배워보고 싶어지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차득규 댓글:

    아련한 추억. 할아버지의 가르침도 현대교육에 밀려 버렸는데
    토직후 한자를 배우며 궁금한 사항을 잘 가르쳐 주어서 감사 합니다
    .좋은 강의 자료로 활용 하겠읍니다,

  3. 장수용 댓글:

    우리 전통문화의 근간을 차지하고 있는 천자문 4언 한구절 두구절로 표현된 중국고전의 핵심들을 잘표현한 대서사시
    새로운 천자문 해설에 감사드립니다.

  4. 장기수 댓글:

    참 절묘하네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천자문”이 인문학의 기본서일 것 같고
    어린이들에게 천자문의 뜻을 제대로 가르치면 윤리.도덕은 물론 우주와 세상의 이치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게 되겠고
    그로부터 지식의 지평을 넓혀간다면 세상은 조금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검색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선생님의 글을 접하게 되었네요.
    그러나 제가 어렸을 적에 시골에서 천자문을 가르치는 서당을 몇 차례 엿보았는데, 훈장들이 글자를 가르칠 뿐 4자와 8자에 의한
    그 중요한 의미를 가르치는 서당은 본 적이 없는데, 생각해보자니 훈장 자신도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제 어설픈 짐작이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헛된 생각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쁘네요.
    근대 이전의 교육관이 문화권에 따라 다양한 가치 중심의 교육이었던 데 반해
    근대부터의 교육은 결과 중심의 과학적 교육관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천자문의 내용을 알고 보니 제가 정중와였군요.
    좋은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5. 김수영 댓글:

    일찌기 다산 정약용선생은 (“천자문은 어린아이가 배울책이 아니다!”)라고 갈파 하셨읍니다!125절구를 들여다 보면 그야말로 사람으로서 배워야할 모든것이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것이다! 지금까지 수십년을 공부하고 생각한 결과는 참으로 이 책이야말로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너무나도 무궁무진하다는 것이였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들어서며 인간성이 파괴되고 하물며 사람의 뇌속에 생각을 컨트롤할수있는 칩같은것을 집어넣어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간본성을 바꿀수 있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더욱더 충격적인 것이다!

    사람으로서 알아야하는 모든것을 담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닌 “천자문”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하나 그 기가막힌 구조를 알수있는데 그것은 그 글자와 내용의
    배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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