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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민속보고서

개인이 열망하는 삶의 정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엽전’(놋쇠로 만든 돈)은 형태가 있는 거푸집에 뜨거운 쇳물을 부어 모양을 만든 후 장인의 섬세한 손에 의해 다듬어지는 과정을 거쳐 제작된다. 별전은 상평통보(조선시대)를 주조할 때 사용되는 금속 재료의 품질과 무게 등을 시험하기 위한 일종의 시주화로, 왕실의 경축을 담은 내용이나 나라의 특별한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제조된 기념주화이기도 하다. 최초로 만들어진 때는 고구려시대로 추정되지만, 별전이 본격적으로 제작진 시기는 조선 숙종 4년(1678)에 상평통보가 주조되면서부터다. 조선시대 시장경제의 질서를 위해 유통된 상평통보가 법화로서의 가치를 지녔다면, 별전은 이와 구분하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상평통보는 조선시대의 모든 백성이 공통으로 사용해야 함으로 규격화된 디자인을 사용하였다면, 별전은 제조 기법, 디자인 소재, 형태에서 차별성을 가지고 있으며 적은 양을 제조하였다.

 

수복강녕부귀다남壽福康寧富貴多男,
행복한 삶을 기원하며 별전에 새기다

 

별전에는 행복한 삶을 꿈꾸던 선조들의 마음이 잘 표현되어 있다. 별전은 다양한 문양과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디자인적 요소, 조형적인 요소가 담겨 있어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즉, 선조들의 감성과 기원을 담은 하나의 예술품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별전은 오복五福을 기원하는 문자나 동물문, 식물문, 길상문, 인물문 등으로 만들어졌다. 이는 현실 속에서 교훈적인 의미를 담고, 오복을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으로 종교적으로는 유·불·선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별전에는 ‘수복강녕부귀다남壽福康寧富貴多男’이라는 문자를 넣어 만든 것이 있는데, 작은 공간 속에 세상의 모든 상서로운 의미를 함축하여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장수를 바라는 뜻으로 ‘수’, 복을 많이 받으라는 의미에서 ‘복’, 건강하고 편안한 삶을 바라는 의미의 ‘강녕康寧’,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귀富貴’, 아들을 많이 낳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다남多男’을 새겨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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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문양에는 서수문(용, 봉황, 거북, 기린), 사슴, 박쥐, 물고기, 새, 거북, 학 등이 사용되었다. 서수문의 용은 왕과 농경사회에서 중요한 물을 상징하며 나라와 백성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식물문양에는 장식성이 강한 보상화문과 당초문, 다산과 득남을 상징하는 포도문과 복숭아문, 장수를 상징하는 소나무문과 불로초문, 선비의 기상을 나타내는 매화문과 대나무문이 대표적이다. 길상문양에는 십장생문과 팔보문八寶文을, 인물문양에는 귀한 아들을 얻고자 하는 바람에서 여인의 모습과 쌍동자의 형태를 별전에 담았다.

 

별전의 문양은 의식의 반영이자
상징성을 강조한 장식품

 

별전의 형태는 주화형 별전, 변형식 별전, 열쇠패 등으로 구분된다. 주화형 별전은 상평통보의 외형을 가공하거나 형태 속의 문자나 문양을 달리하여 만든 것을 말한다. 문자는 각종 길상어吉祥語와 오복문자五福文字 등이 새겨져 있으며 문자의 내용과 관련되는 상징 도안들이 함께 새겨져있는 경우가 많다.
변형식 별전은 공예품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며, 문양이 다양하고 디자인적인 요소가 강조된 형태로 만들어져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이 많다. 거북이, 나비, 박쥐, 물고기, 꽃, 실패 형태 등의 별전에 오복의 문자를 병행하여 만든 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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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패. 110×92mm, 전체길이 390mm, 당초문양으로 투공된 판에 스물세개의 고리를 만들어 달고
색색의 천으로 다양한 모양의 별전 쉰두 점을 엮었다. 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여러 개의 별전을 꾸러미로 연결한 열쇠패는 크기나 형태로 볼 때 일반적으로 지니고 다니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며, 상징성을 강조한 장식품으로 활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의하면 열쇠패는 해방 전까지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는 열쇠패가 신부의 혼수품으로 관습화되면서 지체 높은 사대부가의 주문으로 주전소에서 공식 또는 비공식으로 제작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처럼 노리개, 열쇠 등을 매달아 행운을 기원하기도 했던 별전은 실용성보다는 길상을 뜻하는 문자와 형태를 가진 장식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즉, 단순한 소장품이 아니라 개인이 열망하는 삶의 정표라고 할 수 있다.

기념주화와 메달 제작으로
별전의 맥 이어나가

 

십년 전에 회사에서 별전을 활용한 문화상품을 개발하면서 별전이 가지고 있는 조형미와 예술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은 감명을 받았다. 자그마한 공간 속에 전달하고자 하는 시각 언어가 모두 담겨있으며, 다양한 형태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는 제조기법과 장인의 손길이 담긴 정교한 표현력을 보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조폐디자이너는 미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의 정신적 가치를 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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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화유산 지정 기념주화(상단)와 인물 및 양의해 기념메달(하단) _한국조폐공사 제작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술은 날로 발전하고, 주화를 제작하는 환경이 변화하면서 과거의 주물방식이 아닌 압인방식(무늬가 있는 틀에 금속을 넣고 눌러서 형태를 만드는 기술)으로 동전을 만든다. 동전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10원, 50원, 100원, 500원 등의 주화가 여기에 해당된다. 이외로는 기념주화와 메달이 있는데, 국가적인 행사를 기념해야 할 때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 역사, 자연 등 함축적인 메시지를 담아 제조하고 있다. 금속에 표현된 모양과 형태는 조선시대의 별전과는 다르지만, 그 의미와 진정한 가치의 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도서출판 다, 한영달 저, 「한국의 별전 열쇠패」
| 유물자료집 <별전別錢 : 기원을 담은 돈> PDF
글_ 김종희 화폐디자이너 | 한국조폐공사
한남대학교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광고회사에서 일하다 1998년 한국조폐공사에 입사했다. 2006년에 새로 발행된 오천 원 권부터 2009년 오만 원 권까지 현재 사용되고 있는 모든 한국은행권 지폐 제작에 모두 관여했다. 현재 디자인연구센터 신제품연구팀 팀장으로서 신권 화폐 및 주민등록증을 도안하고, 국내 화폐연구 개발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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