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멀리 동이 트는 것을 닭의 우렁찬 외침으로 깨달으며 살아왔다. 꽤 가파른 고비를 넘고 있는 요즘의 우리들에게 닭이 주는 희망은 각별하기도 하다. 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2017 닭띠해 특별전 <정유년 새해를 맞다> 전시를 총괄한 장장식 학예연구관에게 들어보았다.
십이지 중 ‘닭’은 어떤 동물인가.
장장식 학예연구관이하 장장식_닭은 어떤 동물의 성격과 특징을 통해 하나의 ‘상징’이 부여되는 과정을 잘 살펴볼 수 있는 동물입니다. 열두 띠의 동물은 상상의 동물과 실존하는 동물로 나뉩니다. 그리고 그 동물들은 각각의 상징을 갖고 있지요. 닭은 실생활에서 늘 보는 동물인데 그 동물을 모델로 유의미한 상징성을 찾아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닭은 시계가 없던 시절에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상징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육사 선생은 <광야>에서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라고, 닭 울음 소리를 시화했지요. 선생이 ‘닭이 울었다’고 표현한 것은 시간의 탄생, 어두웠던 세상이 밝아지는 시점, 그러니까 마침내 혼돈에서 질서가 찾아올 시간임을 닭 울음 소리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감히 짐작해 봅니다.
사실 오늘날의 사람들이 닭을 바라보는 시선과는 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닭을 어떤 동물로 여겼나.
장장식_닭에게 부여된 ‘오덕五德’에는 사실 닭의 생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머리에 볏이 있으니 벼슬길로 나아갈 거라는 문文, 날카로운 발톱에서 무武, 상대가 나타나면 용감히 싸운다는 용勇, 먹을 것이 생기면 일행을 불러 함께 먹는다는 데서 인仁, 때맞춰 어김없이 울어주니 신信. 닭의 생태를 바탕으로 긍정적으로 상징화 했죠.
용이나 호랑이 등의 동물은 사람들의 상상력에서 시작되거나 상상이 보태져서 부가된 상징을 갖게 됐지만 열심히 일하는 소나 새끼를 많이 낳는 돼지 등은 사람들이 곁에서 지켜본 생태가 반영되어 있어요. 그 관념이 형성되고 재상징화 되는 거죠. 닭도 마찬가지죠. 닭은 병아리들을 잘 건사하고, 서로 사이가 좋습니다. 사납지 않고 알까지 잘 낳아서 모두가 가까이 하는 동물입니다. 거기서 단란성을 일궈내었죠. 그래서 많은 문사들이 닭 그림을 그렸고, 또 선물하곤 했습니다.
매년 준비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올해는 지난 띠 전과 무엇이 다를까.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처음 마주하게 되는 ‘닭 그림 문’은 작년 봄 <삼국지연의도> 조사를 위해 강화 관제묘를 찾았을 때 발견한 유물입니다. 이 문이 헛간에 쓰러져 있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문의 윗부분에는 까치가, 아랫부분에 수탉이 그려져 있었어요. 또 좌측 상단에는 “時時長鳴福自來때때로 길게 우니 복이 저절로 오네”라는 글귀가 적혀 있죠. 20세기 초에 그려졌을 그림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단 한번도 공개된 적 없는 허름한 문짝일 뿐이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된 거죠.
그리고 옛날 농이 없는 민가에서는 옷을 두는 곳에 천을 횃대에 걸어서 가려두었는데요. 그걸 ‘횃댓보’라고 합니다. 하얀 천만 두는 것이 밋밋하니 횃댓보에 수를 놓기도 했습니다. 혼인을 앞두고 자신이 꿈꾸는 세계, 행복한 결혼 생활 등을 바라며 수를 놓았죠. 강화도에서 한 어르신이 혼인을 앞두고 직접 수놓아 만드신 횃댓보를 발견했어요. 그분께 직접 건네 받은 횃댓보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문의 윗부분에는 까치가, 아랫부분에는 닭이 그려져 있다.
장장식_모든 유물이 중요하지만, <금계도>를 설명 드릴게요. 닭을 주인공으로 하는 그림은 볏, 부리, 발톱, 꼬리가 생명입니다. 행여 대충 그렸다 할지라도 이 부분들만큼은 신경 써서 그리죠. <금계도> 속의 닭은 황금색 털을 가진 위풍당당한 황금닭입니다. 이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온양민속박물관에서는 이 작품이 19세기 중엽에 그려진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안료나 재료, 그림의 양식 등의 분석에서 나온 결과일 텐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그림이 1848년 작이라고 감히 유추해봅니다. 저의 추론의 근거는 이렇습니다.
10간과 12지가 결합되어 육십갑자가 만들어지죠. 이 두 개의 나열 중 한 글자씩 짝지어 각 해의 이름이 정해지는데, 모든 글자가 한번씩 만나면 총 60개의 이름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60번을 도는 동안 12지 동물들은 총 5번 배정되고요. 이 중 10간은 각각 고유의 색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유년의 정丁에는 붉은 색이 담겨 있고, 거기에 닭을 상징하는 유酉가 만나 올해가 붉은 닭의 해인 거죠.
그런 시선으로 보면 <금계도>의 황금 닭은 노란색을 담고 있는 기유년己酉年을 기념하면서 그린 그림이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띠’ 그림은 그 해가 오기 전에 그려지니까 1848년 작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습니다. 19세기 중반이라면 1849년이 기유년이었으니 시기적으로도 딱 들어맞지요.
이런 것을 예측하면서 유물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 관람 방법이 됩니다.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답을 찾아보는 겁니다.
무엇을 안고 돌아갔으면 하는지.
장장식_전시실에 주병덕 작가가 찍은 가족사진이 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손주들이 한데 모여 찍은 사진인데 그 식구들 밑에 수많은 닭들이 모여있습니다. 사진의 주인공들만큼이나 단란한 가족이 그 집 마당에도 있었던 거죠.
요즘 시대가 참 어렵죠. 이런 때에 닭의 해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바깥은 어수선하고 상처받을지언정 닭처럼 서로 위하고 챙기면서 가족끼리라도 사랑하고, 행복했으면 합니다. 이렇게 산다면 닭 울음 소리처럼 힘찬 아침이 올 겁니다.
2017 닭띠해 특별전 <정유년 새해를 맞다>은 12월 21일부터 2017년 2월 20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Ⅱ에서 열린다.
댓글 등록
장박사님의 연대 유추가 정확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배웠습니다.